강감찬의 승리는 칼끝이 아니라 신념의 결과였다

박황희의 노변정담 (2) 오래 묵은 숙제-강감찬 초등 교과서에 실린 장군의 글씨 정성스레 필사하고 번역해보니 기개 넘치는 필체에 담긴 내용은 충정 아닌 현실정치 비판과 고뇌 "평화는 지혜와 인내로 얻는 것" 귀주대첩의 승리 교훈 새겨

2025-11-03     박황희 고려대 겸임교수
강감찬 장군의 필적.

[고양신문] 내 기억이 맞는다면 아마 초등학교 5학년 때쯤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당시 국사 교과서에 강감찬 장군의 글씨가 실렸었는데, 처음 보는 한문 초서 글씨라 너무나 생경하였다. 선생님께 글의 뜻이 무엇인지를 물으니 매우 의아한 표정으로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은 네가 처음’이라고 하시면서 무슨 뜻인지는 말하지 않고 그냥 얼버무리셨다. 그 뒤로 여러 사람에게 질문을 했지만, 주변의 누구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었다. 훗날 박사 과정에서 초서를 배우게 되면서 간간이 소싯적 의문이 생각나기는 했지만, 바쁜 일상 중이라 나 역시 곧바로 잊고 말았다. 

수개월 전 우연히 초등학교 때 보았던 강감찬 장군의 글씨를 접하게 되었다. 가슴에 쓰나미급 감동이 밀려왔다.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고 의미도 모르는 글씨를 어째서 천하의 명필이라며 교과서에 실어 놨을까 하는 의문이 한순간에 날아가 버렸다. 활달하고 기개 넘치는 장군의 필획은 가히 신필의 경지였다. 그동안 숱한 선인들의 간찰(簡札)을 읽어 왔지만, 이런 필체는 일찍이 본 적이 없었다. 보는 내내 존경과 자긍심이 충천하였다. 그러나 이 문서 한 장만이 강감찬 장군의 유일한 필적이라는 점이 못내 아쉬웠다. 

강감찬은 고려 현종 때 거란의 침입에 맞서 누란의 위기에서 나라를 지켜낸 전쟁 영웅이다. 거란의 침입 시 소배압이 10만 대군을 거느리고 고려를 침공하였을 때 이를 맞상대한 장수로서 귀주대첩의 신화를 이룬 구국의 영웅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실상 그는 대과에 장원급제한 문관 출신이다. 나는 장군의 글씨를 대하고 쥬라기공원의 공룡 유전자를 대하듯 경건하고 숙연한 마음으로 한 자 한 자 정성스럽게 필사하고 탈초와 번역을 하였다. 비록 노졸한 솜씨나마 그것이 소싯적 의문을 풀어내지 못하였던 나의 한을 달래는 길인 것만 같았다.

강감찬 장군 초상화.

 
​고학총위헌 - ​孤鶴寵衛軒
쌍원입모론 - 双鴛入毛論
추풍무한한 - 秋風無限恨
불능공일준 - 不能共一尊

외로운 학은 위나라 수레 위에서 사랑을 받고
한 쌍의 원앙은 모론(毛論)에 빠져 있네.
가을바람에 시름은 끝이 없는데
함께 술 한잔 나눌 사람 없구나.

한시는 압운과 축약으로 운율을 즐기는 언어유희이기 때문에 고사와 전거를 인용하는 경우가 빈번해서 문자대로만 번역하면 문맥의 의미를 잘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반드시 고사와 전거를 깊이 이해해야만 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1연에서 ‘위나라 수레 위의 총애’라는 ‘총위헌(寵衛軒)’이란 말은 무능한 자가 걸맞지 않은 총애를 입어 조정의 높은 벼슬을 차지하고 있음을 말할 때 쓰는 비유이다. 문자적으로는 위나라 수레 위에서 사랑받는다는 뜻이지만 이 말의 전거는 수레를 탄 학이라는 ‘승헌지학(乘軒之鶴)’의 고사에서 나온 것이다. 

춘추 시대 위(衛)나라 의공(懿公)이 학을 기르기 좋아하여 대부(大夫)의 수레에 태우고 다니며 학을 편애하였다. 어느 날 외적의 침공을 받게 되어 군대를 동원하여 방어를 명하였으나 군대가 반발하며, “학을 전쟁터로 보내시오. 학은 국록을 받았지만, 우리는 아무것도 받은 일이 없소”라고 징병을 거부하여 나라가 망하고 말았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춘추좌씨전』 민공(閔公) 2년 조에 보인다. ‘의공희학(懿公喜鶴)’이라고도 한다. 여기에서 ‘학(鶴)’은 총애하는 신하를 비유하는데 전쟁에 나가거나 일은 하지도 않고 녹만 받아먹는 신하를 말한다.

2연의 ‘모론(毛論)’은 모형(毛亨)이란 사람이 전한 「시전(詩傳)」을 가리킨다. 시전은 시경(詩經)에 주석을 달아 편집한 책이다. 한 쌍의 원앙을 이르는 ‘쌍원(双鴛)’은 『시경』 「소아(小雅) 원앙(鴛鴦)」 편의 모전(毛傳)에 나온 구절로서 짝을 지은 새라는 뜻이지만 여기서는 쌍을 이루어 노닌다는 뜻이다. 조정의 벼슬아치들이 두 패로 나뉘어 현실의 위기를 직시하지 않고 관념적 모론(毛論)으로 탁상공론이나 하는 논쟁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또한 1연의 ‘고학(孤鶴)’은 한 마리 학이므로 숫자 1의 의미를 담고 있으며, 2연의 ‘쌍원(双鴛)’은 원앙 한 쌍을 말하므로 숫자 2이고, 3연의 ‘추풍(秋風)’은 가을의 절기가 세 번째이니 숫자 3이고, 4연의 불능(不能)은 불(不)이 획수가 4획이므로 숫자 4를 의미한다. 압운은 1, 2, 4연의 ‘헌(軒)’, ‘논(論)’, ‘준(尊)’으로 운율을 맞추었다. 압운과 수열의 배합까지 고려한 절묘한 언어유희에 격절탄상의 감탄이 절로 나온다. 다만 4연의 마지막 자 ‘존(尊)’은 높다는 의미가 아닌 술 단지 ‘준(樽)’과 통용하였으므로 발음을 ‘준’으로 읽어야 한다.

대체로 무인들의 시가 천편일률적으로 군주에 대한 충정이나 기개를 노래하고 있는데 반하여 강감찬 장군의 시는 조정 관료들의 시국 인식에 대한 비판적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주목할 만하다. 1, 2연에서는 현실정치의 암울한 현실을 토로하고 있으며 3, 4연에서는 국가적 누란의 위기와 자신의 인간적 고뇌를 절절하게 드러내고 있다.

거란군을 크게 무찌른 귀주대첩.

감히 장군의 의미심장한 심중을 다 헤아릴 수 없지만 현대에 맞게 의역해서 쉬운 말로 재구성해 보았다. 한글 번역을 하면 한자 속에 감추어진 운율과 리듬을 살릴 수 없는 한계가 있지만 장군의 국가 안위를 염려하는 충정과 인간적 고뇌를 다소나마 가까이 엿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내 방식대로 의역하였다. 

무능한 신하는 군주의 총애 속에 빠져 있고
조정 대신은 두 패로 나뉘어 논쟁을 일삼네.
가을바람 부는 변방에서 시름은 끝이 없는데
뉘라서 함께, 술 한잔 나눌 사람조차 없구나.

귀주대첩의 승리 후 당시 임금이었던 현종(顯宗)은 강감찬의 공로를 치하하는 자리에서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다. 최자(崔滋)의 『보한집(補閑集)』과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등에 전한다.

경술년중유로진 ​- 庚戌年中有虜塵
간과심입한강빈 - 干戈深入漢江濱
당시불용강군책 - 當時不用姜君策
거국개위좌임인 ​- 擧國皆爲左衽人

경술년에 오랑캐의 난리가 있어서,​ 
적군이 한강 변에 깊이 들어왔었네.​
그때 강공(姜公)의 책략을 쓰지 않았더라면, 
온 나라가 모두 오랑캐가 되었겠지.

귀주성.

평화는 바람이 멈춘 정적이 아니다. 진정한 평화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고요가 아니다. 폭풍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중심이 있어야 하며 대립하는 힘들이 서로를 소멸시키지 않고 균형을 이루어서 서로 다른 바람들이 한 방향으로 흐르도록 이끄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강한 힘과 부드러운 힘이 서로를 견제하며 조화를 이룰 때 그곳에 비로소 평화가 깃든다.

윈스턴 처칠은 말하기를 “평화는 힘의 균형 위에 세워진다. 약자가 강자의 자비를 바라며 얻을 수 있는 것은, 결코 평화가 아니다”라고 하였다. 평화는 힘의 공백이 아니라 힘의 균형에서 비롯된다. 힘이 없는 평화는 구걸에 지나지 않고 자주 없는 번영은 오래가지 않는다. 칼을 버린 자가 아니라 칼을 쥔 채 베지 않는 자가 평화를 지킬 수 있다. 

귀주대첩은 한 장수의 용맹보다 한 나라의 정신이 살아 있음을 보여준 사건이다. 강감찬은 힘으로 맞서기보다 이성으로 대비하고 인내로써 싸웠다. 그의 승리는 칼끝의 힘이 아니라 스스로의 신념이 낳은 결과였다. 지혜는 힘을 이기며 신념을 잃지 않는 자만이 진정한 평화를 얻는다는 교훈을 남겼다. 오늘의 우리에게도 필요한 것은 새로운 무기가 아니라 다시금 서로가 스스로를 믿는 단결된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