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섞지 않는 사회
[높빛시론]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고양신문] 지난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 우리는 자랑거리를 하나 더 만들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방역 대책’이다. 초기 대응에 실패해서 수많은 사망자가 났던 서유럽 국가와 달리 우리는 상대적으로 낮은 사망자 수가 나왔다. 정책의 성공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하나 더 보자면, 서로 말을 섞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 특히 노인과 청년이 사적ㆍ공적 영역에서 서로를 외면하는 분위기도 한몫 하지 않았나 싶다. 감염되면 사망률이 높은 노인들과 감기 정도로 지나갈 수 있는 청년들이 함께 어울리는 사회적 분위기와 초기 대응 실패가 서유럽 국가들의 사망자 수를 늘렸다면, 우리 특유의 말 섞지 않는 분위기가 노인을 바이러스로부터 보호해준(?) 묘한 상황 덕도 있었다.
이제 고령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다 보니 노인 1인가구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이 지자체별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러나 노인 세대의 외로움, 고립 해결과 예방을 넘어 '세대 간 단절'에 대한 성찰적 접근은 찾아보기 어렵다. 노인끼리 네트워크 형성 지원도 중요하지만, 누가 됐든 함께 말을 섞고 살 수 있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아지도록 하는 시도는 찾아보기 어렵다.
청년기본법, 중장년 지원을 이유로 쏟아져 나오고 있는 조례들, 노인복지법이나 관련 조례 등 나이를 기준으로 법적 토대를 만들고 예산을 가르는 현금성 급여와 주거 지원, 각종 현물급여가 오히려 세대 간 소통과 교류 기회를 감소시키는 문제에 대한 성찰적 접근이 필요한 시간이다.
자원이 부족하고 복지 관련 사업의 양적 규모가 보잘 것 없고 질적 수준이 낮았던 과거에는 누군가에게 뭐라도 필요한 욕구를 충족시켜야 하는 다급성 때문에 사업 자체를 일단 해야 한다는 절박성만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지자체별로 많은 예산과 자원을 동원할 수 있게 됐다. 그래서 한 단위의 자원을 다양한 연령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활용할 수 있는 접근이 필요하다. 정책의 효율성이 중요해진다.
이러한 변화의 전제 조건이 사람들이 서로 말을 섞고 사는 사회적 분위기 조성이다. 같은 아파트 엘리베이터 공간에서 서로가 자연스럽게 “안녕하세요?” 말 한마디 건넬 수 있어야 한다. 키오스크 기계 앞에서 쩔쩔매는 사람에게 말을 걸고 도와주는 풍경이 더 이상 예외적인 미담이 되지 말아야 한다. 거창하게 사회통합을 외칠 필요도 없다. 말 한마디 서로 섞는 실천이 중요하다. 그런데 이게 어렵다.
노인복지, 청소년복지, 청년복지 따로따로 나눠서 진행하는 사업도 필요하다. 세대별로 다른 경험과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도 정도 문제다. “우리의 복지사업이 세대 간 자연스러운 만남과 교류의 장을 원천적으로 봉쇄하지 않는가?”라는 성찰이 필요하다. 세대 간 고정관념을 강화하고, 서로의 문제를 이해하지 못하게 만드는, 아니면 적어도 그런 문제에 대해 무관심한 사업과 프로그램이 서로 다른 목표 지점을 향해 나아가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비판적 분석이 필요하다. 노인의 지혜와 삶의 경험이 청년의 새로운 지식ㆍ역량과 만날 때 나오는 시너지 효과에 눈을 돌려야 한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어린아이처럼 될 수도 있구나”라는 경험을 우리 어린이들이 하면서 성장할 수 있어야 한다.
연령대별로 복지서비스를 계속 쪼개가면서 세대 간 단절을 한탄하는 위선적 태도를 버릴 때다. 모든 세대가 함께 만나고,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연결의 장'을 마련하는 데 정책의 초점을 맞춰야 할 때다. 어린이집과 노인요양원, 주간보호센터가 함께 하는 프로그램이 가능한 사회를 상상해 본다. 노인복지관에서 청년들이 함께 모여 만드는 사업의 확대를 기대해 본다.
따로따로 청년주택, 노인주택이 아니라, 1인가구라면 청년과 중장년, 노인이 함께 입주해서 살아가는 공공임대주택이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 되기를 희망한다. 법과 조례의 개정, 사업 예산의 재분배, 우리 인식의 변화 등이 필요할 때 가능한 변화다. 먼저 말부터 섞어 가면서 시작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