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친 그대 품어주는 일산호수공원
조창현의 물따라 가보는 고양 (5) 고양의 호수 호수공원, 한강 자양취수장 물 공급 쉼, 치유 명품 친수공간 자리매김 행주산성 부근 잔잔한 한강은 옛 사람 ‘행호’ 칭하며 풍류 즐겨
[고양신문] 고양시에 사는 나는 지인들로부터 가볼 만한 곳이 어디인지 가끔 질문을 받으면 주저 없이 호수공원을 추천한다. 1995년 12월 말에 준공되어 30년 역사를 지닌 고양시 호수공원은 연간 약 630만 명이 다녀가는 최고의 친수 공간이 되었고 타 신도시에 만들어진 호수공원들의 롤모델이 되었다. 물 관련 일을 하는 내가 자주 받는 질문이 또 하나 있다. 호수공원의 물은 어디서 오냐는 질문이다. 고양시 호수공원의 물은 약 35km 떨어진 잠실대교 옆 한강 자양취수장에서 온다. 일산상수도 건설 당시 자양취수장에서 보내주는 한강물을 원수로 수돗물을 만들었고(현재는 팔당댐 물이 원수로 사용된다), 그 중 일부를 호수공원에 보내주는 것이다.
나도 호수공원 조성 직후인 96년 초에 신입사원으로 고양시에 왔으니 호수공원의 나무들은 나와 전입 동기라고 할 수 있다. 초창기의 호수공원은 지금과는 많이 달랐다. 옮겨 심은 지 얼마 안 된 나무들은 스스로의 생존이 당면 과제인 것처럼 보였고, 가지와 잎이 빈약했으며 호수 주변도 사람들을 품기에 다소 삭막했다.
지금은 울창한 나무들이 호수 풍광과 어우러진 명품 친수공간이 되었다. 30년 전 새롭고 척박한 곳에 뿌리를 내려 이제는 사람들에게 편안한 그늘을 내어주는 나무들 덕분이다. 살아남고 버텨내고 성장하여 남들에게 베풀 수 있는 존재가 되는 나무들의 성장사가 마음에 와닿는다.
고양시에 호수공원 외에는 호수가 없을까? 최근에 나는 고양문화원에서 발간한 한 책자를 읽으며 엄청나게 큰 호수를 하나 발견했다. 예전부터 우리 곁에 있었지만 잘 인식을 하지 못하고 있었던 큰 호수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행호(杏湖)였다. 행호는 행주산성 앞으로 흐르는 한강의 하류 구간을 일컫는 것이다. 한강이 행주산성이 자리한 덕양산에 이르러 창릉천과 합류되는 구간은 강폭이 넓고 유속이 느려 마치 큰 호수처럼 보이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이 행호 주변은 풍광이 아름다워서 예부터 선비들이 많은 누각과 정자를 지어 시를 짓고 그림을 그리던 풍류와 예술의 공간이었다. 겸재 정선의 그림 <행호관어(杏湖觀魚)>에서는 초여름 행주산성 부근에서 웅어 낚시를 하는 어부들의 모습 뒤편으로 누각과 정자가 곳곳에 자리잡은 덕양산의 모습이 그려졌다. 여유 있고 평화로운 이 풍경을 보면 왜 이곳을 호수라고 불렀는지 알게 된다.
최근 행주동에서 나고 자란 분으로부터 웅어에 얽힌 이야기를 들었다. 그분의 어린 시절, 바다에 사는 웅어들이 산란하러 그들이 태어난 행호로 돌아오는 4,5월이 되면 아버지가 웅어를 잡아 친가와 처가 식구들을 불러 대접했다고 한다. 모내기를 앞두고 기력을 보충하는 보양식이 웅어회였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은 날 나는 능곡역 앞에 있는 오래된 웅어회집을 가족들과 찾았다. 이야기가 있는 웅어회는 더 특별하게 느껴져서 나는 혼자 막걸리 한 병을 다 비웠다.
물은 때로는 배를 뒤집고 둑을 무너뜨리는 무서운 존재이기도 하지만 편안한 쉼을 주어 사람들은 호숫가, 강가, 바닷가 같은 물가에서 쉬며 여가를 보내기 좋아한다. 앞서 말한 고양시 행호의 누각과 정자들, 서울의 압구정, 파주 임진강 화석정의 예처럼 예부터 선비들이 즐겨 물 좋은 곳에 정자를 지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이는 모두 물이 주는 편안하고 여유로운 쉼의 정서와 치유의 기능 때문이다.
환경심리학을 기반으로 등장한 개념인 ‘치유환경’은 환자의 스트레스를 감소시켜 회복을 지원하는 환경을 말하는데 이에 대한 문헌들을 보면, 햇빛, 환기, 온도와 함께 물이 있는 공간, 즉 친수공간이 중요한 요소로 등장한다. 울리치(R. S. Ulrich)라는 연구자는 혈액 속의 스트레스와 관련된 호르몬의 양을 측정한 결과, 물을 자주 오랫동안 바라보았을 때 면역기능이 향상될 수 있다는 결과를 보고했다. 휴식 기능에 더하여 물의 심리적 치유 기능이 일정 부분 과학적으로 증명된 셈이다.
여러 물 가운데에서도 호수는 본질적으로 잔잔하기에 더 좋은 쉼터가 될 수 있다. 금강산 부근에서 발원한 북한강과 강원도 태백에서 발원한 남한강이 급하게 흐르다 경기도 양평 두물머리에서 만나 팔당댐에 모이고 한강으로 굽이쳐 흐르다 행주산성 부근에 이르러 잔잔한 행호가 되어 편안함을 준다. 사람도 마음이 잔잔해야 편안한 쉼이 가능하다. 욕심이 파도를 치면 편안해질 수 없다. 내 마음을 한 번 들여다본다. 터럭이 희끗해진 나이가 되었지만 아직도 마음은 잔잔한 호수가 되기 어렵다. 폭이 넓어져 잔잔해진 행호의 물처럼 편안해지고 호수공원의 나무들처럼 울창해져서 다른 이들에게 넉넉한 그늘을 내어줄 수 있는 때는 과연 언제 올 것인가. 주말에 가면 내 전입 동기, 호수공원의 나무들에게 물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