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은 세상과의 대화 “몸 말고 제 이야기를 봐주세요”
연골무형성증 앓는 김소망군, 티셔츠 펀딩 어릴 적부터 말과 글 대신 그림으로 자기표현 수술비 2500만원 마련 펀딩, 1116만원 모금 “몸은 다르지만 감정은 다르지 않아요”
[고양신문] “어릴 때는 동네에서 스스로 장애가 있다는 걸 별로 인식하지 못했어요. 친구들 사이에서 제가 리드를 하기도 했고, 아무도 제게 장애가 있다는 걸 말하지 않았으니까요. 어느 날 서울 가는 지하철에서 초등학생이 저보고 ‘형은 왜 나보다 작아?’라고 했어요. 그러자 옆의 할머니들이 ‘멸치랑 우유를 안 먹어서 키가 작다’고 하더라고요. 남자는 키가 작으면 안 된다는 말까지요. 그때부터 지하철 탈 때 이어폰을 끼고 눈을 피하게 됐고, 제가 장애가 있다는 걸 인식하게 됐어요.”
연골무형성증. 이름도 생소한 희귀병을 앓고 있는 김소망군. 고3인 그의 키는 약 130㎝. 머리와 몸통은 평균적인 크기지만 팔다리 뼈가 자라지 않는다. 그는 정발산동에서 태어나 대곡초, 고양발도르프학교를 거쳐 지금은 강화도 산마을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대안학교 교사인 엄마, 형과 함께 덕양구 내곡동 ‘작은마을 공동체’ 사람들과 사이좋게 살아가고 있다.
김군은 공동체와 대안학교에서 자신을 표현하는 법을 배웠다. 어릴 적부터 그림을 언어로 여겼다. 난독증이 있어 말이나 글로 표현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림은 말하지 않아도 전달된다”고 믿었다. 초등학교 3~4학년 때 DMZ 인근 생물들을 그려, 중학생 때 ‘사닿곳’이라는 제목으로 일주일간 전시를 한 적도 있다. 순수미술을 좋아했고, 특히 화가 에곤 실레의 선과 형태에 매료돼 발을 집중적으로 그렸다.
이런 작업은 결국 하나의 프로젝트로 이어졌다. 올 가을, 김군은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텀블벅’에서 ‘All Eyes On Me’를 시작했다. 자신의 이야기와 그림, 직접 만든 티셔츠를 통해 수술비 2500만원을 모으는 시도다.
연골무형성증은 수술을 하지 않으면 더 이상 키가 크지 않고, 심하면 생명에 위협이 될 수도 있다고 한다. 김군은 올해 9월, 600만원가량을 들여 허리 수술을 했고, 앞으로 사지확장수술을 여러 차례 받아야 한다. 희귀병이라 건강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비용도 꽤 된다. 물론 이 프로젝트는 단순한 수술비 마련 수단만은 아니다. “그림은 감정이 움직이는 방식이에요. 이건 돈을 넘어서, 제가 저를 드러내고, 세상과 이야기한 첫 경험이에요.”
텀블벅은 창작자가 자신의 프로젝트를 소개하고 후원자에게 리워드를 제공하는 방식의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이다. 김군의 프로젝트에는 지금까지 약 1116만6000원, 135명의 후원자가 참여했다. 아직은 조금 더 관심이 필요하다.
티셔츠엔 그가 그린 그림이 담겼다. 줄에 매달린 아이, 주위를 감도는 수많은 시선들. “그 아이는 저예요. 몸도 불편하고, 시선도 불편해요. 아무 말 없이 쳐다보는 것도 저에겐 말보다 더 크게 들려요. 그걸 말하고 싶었어요.”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그림 속 저는 무섭지도, 화내지도 않아요. 도망치지도 않죠. 그냥 정면을 봐요. 그게 제가 하고 싶은 말이에요. ‘이게 나예요. 뭐, 불만 있어요?’라고요.”
그의 어머니 김주연씨는 내곡동에서 대안교육과 마을공동체 활동을 오랫동안 해왔다. “이 아이가 사회에서 설 자리를 찾으려면 ‘왜’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해요. 그림은 소망이가 세상과 연결되는 방법이에요.”
졸업을 앞둔 김군은 제주도에서 해녀를 주제로 작업도 하고 있다. “해녀는 숨을 참고, 버티고, 고개를 드는 존재잖아요. 저 같았어요. 다음에는 이 이야기를 전시로 보여주고 싶어요.”
“학교에서 옷 만들고 목공하고, 그 과정에서 제 몸, 저의 불편함을 디자인할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예컨대 나무 상자를 만들어 텃밭으로 쓰기도 했고, 장애인들이 쓰기 편한 키오스크도 설계해봤어요. 순수미술과 산업디자인, 둘 다 좋아요. 독일 유학을 준비하는 이유예요.”
난독증으로 글을 읽기 어려워 그림으로 소통하고,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티셔츠를 제작하고. 자신의 몸을 사랑하는 의미에서 그린 그림이 벌써 500점이 넘는다고 한다. 도대체 어디서 그런 에너지와 용기, 아이디어가 나오는 걸까.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내 몸이 다르다는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내 감정은 누구와도 다르지 않아요. 몸에만 집중하지 말고, 제가 하는 말에 귀 기울여줬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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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망 ‘All Eyes On Me’ 프로젝트
기간 : 2025년 10월 20일 ~ 11월 30일
플랫폼 : 텀블벅(tumblbug.com)
후원자수 : 약 400명
목표 및 실현 금액: 2500만원
링크 : https://tumblbug.com/all_eyes_on_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