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일한 킥보드 대응, 또 사고 부른다
호수공원 사망 사고, 시민 불안 ‘고조’ 무면허 10대 44%, 사고 5년 새 5배↑ 최규진 의원 “운행 금지구역 지정 시급” 10대들 “차도 무섭고 인도는 눈치 보여”
[고양신문] 최근 개인형 이동장치(PM, 일명 ‘공유 킥보드’)로 인한 사고가 잇따르면서 킥보드 규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달 인천에선 ‘무면허 킥보드’에 치여 아이와 인도를 걷던 30대 엄마가 중태에 빠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작년 6월에는 일산호수공원에서 산책하던 60대 여성이 전동킥보드에 치여 사망하는 비극적인 사고도 있었다. 이러한 가운데 고양시의회에서 킥보드 안전에 대한 시의 대응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5년 새 5배 사고 폭증, 15세이하 무면허 20%
지난 21일 열린 고양시의회 시정질문에서 최규진 의원(행주·대덕·행신1·2·3·4, 더불어민주당)은 구체적인 통계 자료를 제시하며 이동환 시장을 상대로 고양시의 안일한 대응을 강하게 질타했다.
최 의원에 따르면 국내 개인형 이동장치 사고는 2019년 447건에서 2023년 2389건으로 5배 이상 폭증했다. 특히 2022년부터 2024년까지 발생한 7007건의 사고 중 절반에 가까운 3442건이 무면허 사고였다. 더욱 심각한 것은 전체 사고 운전자의 44%가 19세 이하 청소년이며, 면허 취득 자체가 불가능한 만 15세 이하 운전자가 전체의 20%에 달한다는 점이다.
최 의원은 “현행 시스템상 부모의 신분증을 이용하거나 ‘추후 인증’ 같은 편법으로 아이들이 무방비로 도로에 내몰리고 있다”며 “단순한 계도를 넘어선 강력한 행정적 개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서울시는 QR코드 스캔 한 번으로 끝나는 원스톱 신고 시스템을 갖춘 반면, 고양시는 여전히 단체 대화방에 5개 항목을 일일이 입력해야 하는 후진적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며 고양시 행정 시스템의 난맥상을 꼬집었다.
이날 제시된 서울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9.2%는 "보행 환경이 개선됐다"고 답했으며, 77.2%가 "충돌 위험이 감소했다"고 답변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향후 보행 밀집 지역이나 안전 취약 지역으로 '킥보드 없는 거리'를 확대하는 방안에 대해 무려 98.4%의 시민이 찬성했다는 점이다. 킥보드 규제와 관련된 지자체의 적극적 개입을 요구하는 여론이 그만큼 높다는 방증이다.
"우리도 규제 찬성, 하지만 도로는 무서워"
이와 관련 거리에서 만난 고양시 청소년들은 의외로 “규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냈다. 아울러 ‘탈 곳 없는 현실’에 대한 항변도 했다.
김아현 학생은 “면허 없이 타는 친구들이 많다. 앱상에서 속도 제한이 있다고 해도 실제로는 내리막길 등에서 제한 없이 질주가 가능하다”며 기기 제어의 허점을 지적했다. 그는 “일산호수공원처럼 노약자가 많은 곳은 당연히 금지되어야 한다”며 규제 필요성에 공감했다.
송예원 학생 역시 “산책로에서 타는 건 보행자에게 위협적이고, 차도는 킥보드 이용자에게 위험하다”며 운행 제한 장치 도입을 주장했다.
문제는 공유 킥보드를 안전하게 탈 수 있는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는 점이다. 정민영 학생은 "도로교통법상 차도로 다녀야 하지만, 차들은 쌩쌩 달리고 킥보드는 최고 시속 25㎞라 목숨을 걸어야 한다"고 토로했다. 그는 "인도로 가면 행인을 칠까 겁나고, 차도로 가면 차에 치일까 겁난다. 일산에는 호수공원 외에 자전거 전용도로가 턱없이 부족하다"고 꼬집었다.
최승원 학생은 "이미 킥보드는 보편화된 이동수단"이라며 "무조건 금지하기보다 자전거 도로처럼 안전하게 탈 수 있는 구간을 확보해 주거나, 면허가 없으면 아예 작동하지 않게 하는 시스템적 차단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제도 개선 칼 빼든 인천 연수구... 고양시는?
취재과정에서 만난 이용자와 행정 모두 '현재 상태로는 안 된다'는 데 동의하고 있다. 하지만 고양시의 대응 속도는 타 지자체에 비해 더딘 상태다.
최규진 의원은 인천 연수구의 사례를 들며 고양시의 분발을 촉구했다. 연수구는 지난 10월 킥보드 사고로 30대 여성이 중태에 빠지자, 즉각 경찰과 협의해 안전 조례 개정을 추진하고 나섰다. 반면 고양시는 일산호수공원 사망 사고 이후 공원 내 운행 금지 조치를 취했을 뿐, 도심 전반에 대한 대책은 여전히 ‘검토 중’이다.
전문가들은 “학교 앞 스쿨존이나 보행 밀집 구역을 과감하게 ‘PM 프리존(운행 금지 구역)’으로 지정해 보행권을 확보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동시에 "학생들의 목소리처럼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는 ‘PM 및 자전거 전용 인프라’ 확충도 병행돼야만 사고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