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시 사전연명 7년새 7배 증가... 존엄한 죽음 뒷받침 준비됐나
창간36주년 기획_ 나로 존중받으며 살다가고 싶다④
사전연명의료의향서와 재택의료, 존엄사의 출발
고양시 사전연명 2018년 568명, 2024년 4403명
7년 새 7배 증가, 호스피스·재택의료는 아직 걸음마
통합돌봄 시대, ‘지역형 존엄사 정책’이 주요 과제로
[고양신문] “사전연명, 전부터 하려고 했어요. 당연하죠. 제가 준비하고 가야죠.”(대화노인복지관 사전연명 교육 참여 어르신)
“자연스러운 죽음은 출생처럼 누구나의 권리죠. 준비되지 않은, 의도하지 않은 죽음은 사고입니다. 존엄사에 대한 실천, 고민은 연명의료의향서가 가장 좋은 출발점입니다.”(노태진 서화한의원 원장)
“오늘날 개인의 죽음은 경찰이나 국가기관에 신고를 해야 하는 사건이자 장례와 매장을 위해서 의사가 작성한 사망진단서가 필요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 죽음이 사건으로 다뤄지면서 그것이 치안과 보건의 차원에서 안전한 것인지를 증명받아야 한다.”(박중철 저 『나는 친절한 죽음을 원한다』)
대화노인종합복지관은 지난 11월 24일 복지관 회원들을 대상으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교육과 현장 등록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이날 교육은 만화책 형식의 안내 책자를 활용해 제도 취지와 절차를 설명한 뒤 일대일 개별 등록으로 이어졌다. 복지관은 이번 프로그램을 위해 11월 6일부터 20일까지 사전 신청을 받았으며, 기존 신청자를 제외한 신규 회원을 우선 선발했다. 교육 담당자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혼자 고민하기보다, 교육을 통해 충분히 이해하고 상담사와 함께 작성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말했다.
어떤 계기로 참여하게 됐느냐는 질문에 대부분의 참여자들은 ‘당연한 걸 왜 묻느냐’는 표정이었다. 부모의 기다림과 축복 속 자연스러운 탄생처럼, 이제는 죽음도 당연히 준비하고 맞이하겠다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벽제 시립승화원에서 거의 매일 치러지고 있는 무연고 장례, 턱없이 부족한 호스피스 병상, 그리고 그 사이에서 ‘존엄한 죽음’을 붙들고 애쓰는 사람들. 고양신문 창간 36주년 기획 ①~③편이 보여준 풍경 뒤에는 한 가지 공통된 질문이 남는다. “내 마지막을, 나는 어디까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을까.”
고양시 사전연명 등록 7배 증가
고양시 보건소 자료에 따르면 사전연명의료의향서(이하 사전연명제) 등록이 시작된 2018년 등록자는 568명에 불과했다. 2019년 2778명으로 급증한 뒤, 코로나19 초기였던 2020년 1151명으로 잠시 꺾였지만 2021년 2043명, 2022년 2484명, 2023년 3752명으로 다시 꾸준히 늘었다. 2024년에는 한 해에만 4403명이 등록해 7년 사이 7배 넘게 증가했다. 2025년에는 8월 말 기준 2876명이 등록을 마쳐, 올해 역시 높은 증가세가 예상된다. 상담과 등록을 위해 고양시는 2020년 이후 매년 8억원가량의 예산을 편성하고 있다.
사전연명제는 말기환자나 임종과정에 이를 때 받게 될 연명의료와 호스피스 치료에 대해 건강할 때 미리 자신의 의사를 남기는 문서다.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항암제 투여처럼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처치의 시행 여부와 호스피스 이용 의향 등을 본인이 직접 선택한다. 만 19세 이상 성인이면 누구나 지정된 등록기관에서 설명을 듣고 작성할 수 있고, 이후 언제든지 변경·철회도 가능하다.
그럼에도 현장에서는 “한번 쓰면 되돌릴 수 없다”, “죽음을 재촉하는 동의서”라는 오해가 여전하다. 제도 취지와 내용을 시민 눈높이에 맞게 설명하고, 실제 임종 현장에서 어떻게 활용되는지까지 알려주는 교육이 필요한 이유다. 문제는 이 ‘마지막 서류’가 종이 한 장에 머물지 않고 실제 삶의 현장에서 작동할 수 있느냐다. 사전연명제를 썼다고 해서 곧바로 존엄한 죽음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고양시에서 두 번째 재택의료기관으로 선정된 서화한의원 노태진 원장은 이렇게 말한다. “연명의료를 안 하겠다고 체크하는 걸로 존엄이 담보되지는 않습니다. 그 선택이 존중되려면, 그 이전 단계부터 누가, 어떤 방식으로 이 사람 곁을 지킬 것인지에 대한 시스템이 같이 있어야 합니다. 지금은 사전연명의료, 재택의료, 요양, 호스피스, 통합돌봄이 따로 움직이고 있어요. 이걸 지역에서 하나의 흐름으로 묶어내지 못하면, 법과 서류는 있는데 현장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평가가 계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노태진 원장은 사전연명제가 존엄한 죽음을 준비하는 첫발이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아직 한계가 많다는 점을 지적한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써도 결국 효력을 내려면 담당 의사와 전문의가 ‘지금이 임종 과정’이라고 판단해야 한다. 또 가족들의 동의가 필요한데, 현실에서는 실제 돌봄의 책임을 지고 있는 가족과 그렇지 않은 이들 사이에 갈등이 자주 빚어진다.
말기암 중심 호스피스, 아직 좁은 문
말기환자와 가족을 위한 호스피스 병동과 재택의료 지원도 한정돼 있다. 2025년 11월 기준 고양시에는 국립암센터, 국민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 동국대학교 일산병원, 로하스일산병원, 연세메디람내과의원, 인제대학교 일산백병원 등 6개 의료기관이 호스피스·완화의료 제공기관으로 지정돼 있다.
국립암센터와 일산병원을 포함한 전국 대부분의 호스피스 병동은 사실상 ‘말기 암 병동’이다. 연명의료결정법상 말기 암 환자는 “적극적 치료에도 근원적 회복 가능성이 없고, 수개월 이내 사망이 예상되는 진단을 받은 환자”로 한정된다. 법상으로는 말기 만성호흡부전·만성 간경변·후천성면역결핍증 환자도 호스피스 대상이 될 수 있지만, 실제로 암 이외 질환을 가진 말기 환자는 가정형이나 자문형 호스피스 서비스를 통해서만 지원받는 구조다.
이때 말하는 호스피스·완화의료는 단순히 ‘죽기 직전 요양’이 아니다. 생명을 위협하는 질환을 가진 환자를 대상으로, 통증과 호흡곤란 같은 신체적 증상을 적극적으로 조절하고, 환자와 가족이 겪는 심리‧사회적 어려움과 영적 고통까지 함께 돌보는 의료 서비스다.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등으로 이루어진 전문 팀이 환자와 가족의 고통을 덜고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2020년 「고양시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웰다잉 문화조성에 관한 조례」를 발의했던 고양시의회 이해림 의원은 “누구나 죽음을 맞이합니다. 공공은 그 마지막을 준비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며 “사전연명제 작성 문화 확산, 호스피스·완화의료 지원·협력체계 구축, 웰다잉 교육·홍보와 인식 개선 사업 등을 고양시가 적극적으로 추진해 나가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고양시는 조례 제정 이후 이를 뒷받침할 구체적인 행정계획과 예산, 부서 간 협력 구조를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게 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살던 곳에서 죽고 싶다”는 소망을 위해
“병원의 원래 목표는 질병을 치료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치료 기간이 지난 환자에게도 계속 치료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이미 임종기에 가까워졌는데도, 병원에서 잘할 수 있는 일을 넘어선 지점에서 같은 일을 반복하는 거죠.”
노태진 원장은 현재 의료체계가 ‘낫지 않는 병을 가진 노인’에게는 더 이상 최선이 아닐 수 있다고 지적한다. 노인의학에서 중요한 것은 단지 병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이 사람에게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 일인데, 이 질문이 빠져 있다는 것이다.
노 원장은 “임종기가 가깝거나 고령인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질병 치료가 아닐 수 있다”며, 이때 등장하는 개념이 바로 ‘존엄’이라고 말한다. 그는 존엄의 핵심을 자기결정권에서 찾는다. “내가 치료 이외에 더 중요한 게 무엇인지는 나만 알고 있는데, 의사는 그걸 모릅니다. 그러니 내가 연명의료 의향, 장례 의향, 돌봄 의향을 미리 밝히는 일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도와줄 수 있습니다.” 사전연명제는 그 시작에 해당한다.
자기결정이 부재한 상태에서 이별을 맞이하는 가족의 상처도 크다. 노 원장은 “자녀가 셋, 넷 있어도 부담은 유독 한 명에게 몰린다”며, 특히 가까이에서 돌보는 딸에게 상처가 집중된다고 말한다. 가족 중 한 사람은 “조금이라도 더 해보자”고 말하고, 다른 한 사람은 “이제 그만해도 되지 않겠느냐”고 말하는 사이, 연명의료 중단에 대한 합의는 끝까지 미뤄진다. 그 시간 동안 환자와 주 돌봄자의 고통은 겹겹이 쌓여간다. 사전연명제가 가족 간 갈등과 죄책감을 줄이는 장치가 될 수 있는 이유다.
그렇다면 ‘집에서의 죽음’은 어떻게 가능한가. 노 원장은 재택의료를 “치료 목적만이 아닌, 몸이 쇠약해지는 과정 전반을 함께 걷는 의료”라고 정의한다. 단순히 집으로 왕진을 나가 약과 주사를 놓는 역할이 아니라, “환자에게 필요한 것이 복지자원 연계라면 그게 처방이 될 수 있고, 집 구조를 바꾸는 것(손잡이 설치 등)이 해결책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시행될 ‘통합돌봄지원법’ 역시 중요한 변수다. 법은 지자체에 통합돌봄협의체 구성을 요구하고, 의료·요양·복지·주거 자원을 한데 묶어 운영하도록 한다. 그러나 고양시는 아직 통합돌봄에 대한 적극적인 정책 방향을 충분히 세우지 못하고 있다.
“살던 곳에서 노후를 보내고, 내 집에서 죽고 싶다”는 소망은 존엄한 돌봄의 기본이지만 재택임종이 늘어날수록, 제도와 현장의 연결 과제도 드러난다. 준비되지 않은 채 집에서 사람이 죽으면 ‘사고사’로 분류돼 경찰 수사가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노 원장은 “방문진료 기록과 자연스러운 노쇠 과정이 의료적으로 확인된다면, 경찰도 불필요한 수사를 줄일 수 있다”며 “시와 경찰, 재택의료기관이 미리 소통하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존엄한 죽음은 병실 안에서만 결정되지 않는다. 집과 경찰서, 시청과 협의체까지, 도시의 구조 전반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
창간 36주년 기획은 무연고 장례, 요양·호스피스 현장, 마지막을 지키는 사람들의 얼굴을 따라가며 ‘존중받지 못한 죽음’의 현실을 짚어왔다. 이제 질문은 여기로 모인다. 고양시가 시민이 미리 써 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끝까지 책임지는 도시, 삶의 마지막도 존엄하게 준비할 수 있는 ‘웰다잉 도시’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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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마지막도 존엄하게”
고양시 호스피스·웰다잉 조례 만든 이해림 의원
“누구나 죽음을 맞이합니다. 공공은 그 마지막을 준비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야 합니다.”
고양시의회 이해림 의원이 고양시 호스피스 정책에 천착하게 된 출발점이다. 그가 대표발의한 「고양시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웰다잉 문화조성에 관한 조례」는, 고령사회에 진입한 고양시에서 ‘삶의 마무리’를 어떻게 공적 과제로 다룰 것인가에 대한 첫 답변이다.
이해림 의원은 “병원은 많지만, 죽음을 준비하는 병동은 없다”고 지적한다. 벽제 길병원 폐부지를 직접 둘러보며 공공 호스피스 요양원 후보지로 제안해 온 것도 같은 문제의식에서다. “공공의료원까지는 어렵더라도, 요양과 호스피스를 결합한 공공요양원 하나쯤은 고양시에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조례 제정에는 가족 경험도 영향을 미쳤다. 부모가 암 진단을 받은 뒤 일산 일대 병원을 수소문했지만, “두세 달 대기가 기본”이라는 답을 듣고 현실의 가혹함을 체감했다. 그는 “죽을 때는 내 존엄성을 가지고 떠났으면 좋겠다”며, 사전연명제 확대와 호스피스 인프라 확충을 함께 추진해야 한다고 말한다.
조례 이후 관련 업무는 덕양구에서 일산동·서구 보건소로 확장됐고, 전문 간호 인력도 늘었다. 그러나 이 의원은 “인지조사부터 서명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는 구조라 인력 부족이 여전하다”고 짚는다.
“호스피스 요양은 단순 돌봄이 아닙니다. 전문 인력, 교육 체계, 종교계 참여가 모두 필요한 사회적 장치입니다.”
이해림 의원은 요양보호사 중심 구조만으로는 존엄한 죽음을 보장할 수 없다며, 종교인·전문 간호 인력·시민 대상 웰다잉 교육이 결합된 체계를 제안한다. 장기적으로는 공공형 호스피스 요양원과 커뮤니티 빌리지 모델을 통해 “누가 곁에 있느냐에 따라 죽음의 질이 달라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고양시의 과제가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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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죽음을 준비하는 데 우리 모두 서툽니다”
고양시 두 번째 재택의료기관 서화한의원 노태진 원장
“병원의 목표는 질병 치료입니다. 그래서 이미 임종기에 가까운 노인도 계속 병원에 가서 ‘더 해보자’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낫는 병이 아닌데도요.”
고양시에서 두 번째로 재택의료기관으로 지정된 서화한의원 노태진 원장은, 지금의 의료체계가 ‘좋은 죽음’을 준비하는 데는 서툴다고 말한다. 노인의학에서 중요한 것은 “이 사람에게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 일인데, 이 질문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그는 존엄의 핵심을 자기결정권에서 찾는다. “내가 치료 이외에 더 중요한 게 무엇인지는 나만 알고 있습니다. 의사는 모릅니다. 그러니 연명의료 의향, 장례 의향, 돌봄 의향을 미리 밝히라는 겁니다. 알아야 도와줄 수 있으니까요.” 사전연명제는 그 출발점이고, 재택의료는 그 결정을 현실로 옮기는 과정이다.
노 원장은 재택의료를 “약과 주사를 덜 쓰는 의료”라고 설명한다. 무릎이 아픈 노인에게 주사를 놓는 대신, 집 안에 손잡이를 설치하도록 돕고, 주민센터나 복지관과 연결해 생활을 바꾸는 처방을 내리는 식이다. 2년 반 동안 200건의 방문진료를 하며 그는 노노케어 가정과 오피스텔에서 부모를 돌보는 딸들, 재택임종을 준비하는 가족들을 만났다.
“연명의료를 안 하겠다고 결정했다면, 그 전에 몸이 쇠약해지는 과정부터 함께 봐 줄 의료진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자연스러운 죽음을 준비할 수 있습니다.”
노태진 원장은 곧 시행될 통합돌봄지원법을 계기로, 고양시가 재택의료·요양·호스피스·복지기관을 한자리에 모으는 통합돌봄협의체를 제대로 운영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열심히 하는 팀과 ‘반칙하는’ 팀이 드러나도록 사례를 공유하고, 공공이 마당을 깔아야 한다는 것이다.
“누가 돌보느냐에 따라 돌봄의 질이 달라지지 않도록, 어느 정도 이상의 존엄을 누구나 보장받을 수 있도록, 지역의 안전망을 만드는 것이 통합돌봄의 목표라고 생각합니다. 재택의료는 그 안전망의 한 꼭짓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