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역사 일산역 골목에 뿌리내린 개성만점 맛집들
황 PD의 맛집탐구 (7) 경의중앙선 일산역 맛집 천하일면 마늘향 강한 고기국수와 아부라소바 메뉴 두툼한 면발 착한 가격, 프랜차이즈 성장 희락카츠 다양한 소스 곁들인 돈가츠, 정성 가득한 식탁 염증성 위장질환에 좋은 느릅나무물 제공
[고양신문] 경의중앙선 일산역에는 오랜 역사가 묻어 있다. 1906년에 경의선 보통역으로 개통한 기차역이니 무려 120년의 세월이 흐르고 있는 것. 일제강점기에는 식민지 수탈 정책에 동원됐었고 해방 이후 신도시개발 이전까지는 조용한 농촌 읍내였으며 1990년대 일산 신도시개발 이후에는 개발의 중심에 비껴난 구도심으로 침체기를 겪기도 했다. 느리게 나이 들어온 동네답게 구도심 특유의 정서와 유행을 타지 않는 노포 분위기가 특징이었다. 그러나 2010년대 이후에는 도시재생 뉴딜사업과 서해선 개통이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역세권의 잠재력을 갖춘 지역으로 변모하기 시작, 2022년 12월에 49층 높이의 e편한세상 일산 어반스카이 아파트가 들어섰고 또 다른 초고층 아파트인 일산역 더 넥스트가 들어설 예정이라 낮은 골목들이 감싸고 있던 일산역 주변의 지형은 계속 변화 중이다. 오늘은 백 년 이상을 버틴 일산역을 배경으로 2010년대 중반 이후 등장한 맛집들을 다루고자 한다.
마늘 육수와 두터운 면발의 조화, 천하일면 일산본점
일산역에서 도보로 1분 거리. 2016년에 문을 연 이 식당은 고기국수와 일본식 비빔면 스타일인 ‘아부라소바’가 메뉴의 전부이다. 여기에 매운 맛이 들어간 얼큰 고기국수와 매운 아부라소바 메뉴가 따로 있다. 이 집 국수의 첫 인상은 선명하다. 은근하지 않고 머뭇거리지도 않는다. 가장 먼저 올라오는 건 마늘의 향이다. 그 향은 단순한 자극이 아니라 “우리는 이런 방향의 국수를 한다”는 선언처럼 느껴진다. 마늘은 이 집에서 조미료가 아니라 구조다. 고기의 잡내를 지우고, 국물의 중심을 단단히 잡아주며 오래 끓이지 않아도 국수가 충분히 완성된 맛을 갖게 만든다. 아부라소바든 고기국수든 마늘은 면과 고기, 기름을 하나로 묶는 역할을 한다. 일본식 면 요리의 문법을 차용하되 한국인의 미각이 가장 신뢰하는 식재료를 전면에 세운 선택이다. 그래서 이 집 국수는 설명이 필요 없다. 한 입이면 이해된다. 마늘 향이 강하기에 기억에 남는다. 수많은 국수집이 비슷한 풍경을 만들 때 이곳은 분명한 캐릭터 하나를 선택한 것이다.
또 하나의 특징은 두터운 면발이다. 후르륵 넘기는 얇은 국수가 아니라 면발이 품은 육수를 느끼면서 오래 씹어야 하는 굵은 면발이다. 그래서 국수를 먹은 후 금세 찾아 오는 허기짐이 없다. 한 끼 식사로 충분하다. 식사 양에 따라서 300, 200, 160g을 선택할 수 있기에 자기 양에 맞게 먹을 수 있는 것도 장점. 토핑으로 참여하는 두툼한 돼지고기도 행여나 국수 한 그릇이 놓칠 수 있는 풍족한 한 끼 식사를 보장해준다. 씹는 맛이 있는 돼지고기는 아부라소바에서는 깍둑썰기의 형태로, 고기국수에는 일본 라멘 차슈보다 훨씬 더 두툼한 형태로 제공된다.
얼큰 고기국수의 국물을 맛보니 해장국 먹는 것처럼 개운하고 아부라소바에 식초 한두 바퀴 두르니 맛이 더 또렷해진다. 가격은 고기국수 8000원, 얼큰 고기국소와 아부라소바는 9000원, 매운 아부라소바는 1만원이고 1000원에 면 추가, 2000원에 고기 추가 가능하다. 만 원 한 장으로 외식하기 힘든 시절에 이만하면 가성비 측면에서도 좋다. 그래서인지 현재 본점 포함 27개의 매장을 둔 작은 프랜차이즈로 착실히 성장 중이며 일산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정성이 가득 들어간 돈카츠, 희락카츠
일산역에서 걸어서 약 5분 거리의 아담한 식당, 희락카츠. 4인용 테이블 5개와 1인용 테이블 하나가 전부인 크지 않은 식당. 동네 맛집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면서도 잘 살펴 보면 대도시 중심가 고급 돈카츠 전문점 못지 않은 맛과 정성이 돋보이는 곳이다. 일단 식탁 위에 조용히 깔아놓은 섬세한 배려가 남다르다. 돈카츠 기본소스와 과일 카츠소스에 흑임자 드레싱과 오리엔탈 드레싱이 있고 고기의 단맛을 끌어 올리는 핑크 솔트, 기름기의 여운을 정리해주는 후추, 고소함을 더하는 깨와 그것들을 갈아내는 자동 그라인더가 있다. 우동에 뿌리는 양념 고춧가루와 바삭한 튀김가루 그리고 돈카츠와 같이 나오는 밥에 뿌려 먹는 후리카케도 준비되어 있어서 이들을 활용한 다양한 조합의 맛을 기대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 식당에서는 특이하게도 느릅나무 물을 제공한다. 느릅나무는 한방의 유용한 약재로 염증 제거와 항균 작용이 탁월하며 염증성 위장 질환에도 효과가 있다. 이렇게 돈카츠를 본격적으로 먹기 전부터 정성이 느껴지는 식탁 세팅에 기대감이 더 높아진다.
주문 후 돈카츠가 나오기 전까지는 시간이 좀 걸리는 편. 오전 11시 오픈인데 11시10분에 식당에 도착했고 앞서 주문한 세 테이블 다음에 우리 음식이 나오기까지는 30분 정도 걸렸다. 안심, 치즈, 새우, 치킨 돈카츠로 구성되어 있는 모듬카츠(1만5000원)가 먼저 나왔다. 맛 좋은 돈카츠의 핵심인 겉바속촉이 그대로 구현된 아주 맛있는 돈카츠이다. 부드러운 안심, 탱글탱글한 새우, 튀김음식의 대표 치킨, 고소한 치즈 맛 돈카츠들을 다양한 소스와 조합해가며 먹는 재미에 손이 바빠진다. 그리고 하루 판매량이 한정된 특로스카츠(1만4000원)에는 지방층이 풍부한 부위를 사용해 고소함을 더 했고 등심 부위 중 소량만 나오는 가브리살도 포함되어 있어서 쫄깃함과 특유의 풍미를 동시에 맛볼 수 있다. 그리고 이집 돈카츠에는 앞서 언급한 다양한 소스 외에도 또 하나의 필수 옵션이 제공되는데 바로 트러플(송로버섯) 오일이다. 스포이드라 불리는 작은 용기에 담긴 트러플 오일 몇 방울만 떨어뜨려도 강렬한 향이 올라 온다. 돈카츠에 떨어뜨리거나 핑크 솔트에 섞어 찍어 먹으면 동네 맛집을 넘어서 유명 파인 다이닝의 미식 경험으로 업그레이드 되는 듯하다. 돈카츠를 아무것도 찍지 않고 먹어본 후 트러플 오일을 소량 사용해 먹으면 풍미의 차이가 느껴지는 재미를 맛볼 수 있다.
그리고 이날 식사 마무리로 먹어본 부산어묵우동(9000원). 우리가 아는 우동 맛인데 결코 평범하지만은 않은 맛이라고 이야기 하고 싶다. 맑고 깊은 육수는 마음마저 편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고 토핑된 어묵은 보통 어묵과 한 차원 다른 부드러운 식감이 돋보이고 통통한 새우는 우동 육수의 감칠맛을 더해준다. 오전 11시부터 문을 여는데 매주 일요일과 매월 마지막 월요일은 휴무이고 토요일은 오후 3시까지만 영업한다.
식사 후에는 희락카츠 바로 앞, 250억원을 들여 만든 1000평 규모의 국내 최대 수족관 카페 아쿠아가든에서 신기한 물고기들 구경하며 커피 등 음료를 마시는 것도 추천해 본다. 입장료가 따로 없는 만큼 음료 값이 다른 카페보다는 비싼 건 감안해야 한다.
신도시 개발붐에서 한 발 비켜선 채, 철도와 시장, 밥집이 먼저 자리를 잡은 오래된 생활의 중심이었던 일산역 주변, 백 년 이상의 역사를 품은 일산역 골목에는 아직 노포의 온도가 남아 있고, 그 곁으로는 새로운 생활의 풍경이 천천히 쌓이며 겹쳐지고 있다.
2010년대 중반 이후 문을 연 식당들은 이 오래된 동네에 낯설지 않게 스며들며, 지금의 일산역을 가장 현재형으로 설명한다. 그래서 이 동네는 과거를 보러 가는 곳이 아니라, 시간이 겹쳐지는 순간을 맛보러 가는 장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