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민속박물관 파주, 리우 카니발의 열정을 품다
전시 <아프리카의 영혼, 삼바의 리듬> 3월 15일까지, 국립민속박물관 파주
[고양신문] 파주 헤이리예술마을 초입에 자리한 국립민속박물관 파주는 언제 찾아가도 호젓하고 편안하다. 먼 과거부터 오늘날까지,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 공간을 채웠던 수수하고 정겨운 소장품들을 개방형 수장고를 거닐며 감상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또한 수개월 단위로 새롭게 선보이는 흥미로운 기획전시는 계절마다 이곳을 찾는 팬들을 만들고 있다.
새해를 맞아 어떤 전시가 열리는지 궁금해 들렀다가, 깜짝 놀랐다. 민속박물관이라는 선입견을 깨버리는 화려한 전시물이 중앙 로비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지난달 시작된 전시의 제목은 <브라질 리우 카니발: 아프리카의 영혼, 삼바의 리듬>이다. 자체 소장 유물들을 선별해 열렸던 그동안의 기획전시와 달리, 지구 반대편의 뜨거운 정열이 한겨울 추위마저 날려줄 듯하다.
‘세계의 축제’ 첫 행선지는 브라질
국립민속박물관이 이처럼 파격적인 전시를 기획한 이유는 뭘까. 오랜 세월 서울 경복궁 한쪽에 자리를 잡고 있는 국립민속박물관은 현대적 박물관으로 도약하기 위해 2031년까지 세종시 이전을 계획하고 있다. 이전과 함께 제시한 비전은 ‘세계로 열린 창’이다. 국내를 넘어 다양한 국가, 혹은 미족의 특수하면서도 보편적인 문화를 소개하는 전시관을 지향하겠다는 포부다. 이를 준비하기 위한 첫 미션이 바로 ‘세계의 축제’ 자료를 수집하는 것이었고, 지난해 상반기 첫 번째로 날아간 곳이 바로 브라질 리우 카니발이었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리는 리우 카니발은 현지인들은 물론, 축제를 보기 위해 각국에서 관광객들이 몰려오는 명실상부 세계 최대의 축제다. 강렬한 리듬과 열정적인 춤, 끝을 모를 정도로 이어지는 길고 화려한 행렬로 유명하지만, 축제의 이면에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자취가 깊이 배어있는 인류사적 문화자산이기도 하다. 축제의 상징인 ‘삼바’ 리듬과 춤은 아프리카에서 브라질 농장에 강제로 끌러온 노예들의 고통을 위로하고, 그들의 영혼을 어루만졌던 역사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고통스런 이주 역사, 혼합적 문화로 승화
전시를 둘러보자.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건 화려한 보라색과 핑크색으로 장식된 거대한 두상상이다. 노예가 되어 브라질로 끌려온 아프리카 반투계 민족의 얼굴을 신화적으로 형상화한 장식물인데, 리우 카니발 퍼레이드 차량에 장식됐었다고 한다. 옆에 있는 장식물 역시 얼굴은 아프리카계 조상들인데, 머리에 토기 대신 앰프와 스피커 등의 축제 음향 장비를 얹고 있다. 민족의 뿌리를 잊지 않으면서도 도시의 거대한 리듬에 동참하려는, 강인한 자부심과 생명력이 느껴진다.
아프리카에서부터 이어온 주술적 종교와 남미를 지배하는 가톨릭 신앙과의 혼합도 흥미롭다. ‘대지에 피어난 꽃’이라는 거대한 가면의 이마에는 아프리카 디자인과 십자가가 혼합된 문양이 새겨져 있다. 삶과 죽음, 자유와 해방의 염원을 담았다는 설명이다.
과거 리우 지역에 정착한 아프리카 반투계 후손들은 유럽인들의 가톨릭 강요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로사리오 성모를 수호하는 ‘가톨릭 흑인 형제회’를 조직했었다고 한다. 리우 카니발에는 황금색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거대한 로사리오 성모조형물도 등장하는데, 깜짝 놀랄 비밀이 있다. 몸통 부분이 열리면 그 속에서 흑인 여성 지도자가 나타나는 것. 약한 이들을 돌보고 어루만지는 성모와 흑인 여성의 연결하며 억압 속에서도 정체성을 이어가려 했던 것이다.
한편으로는 백인우월주의에 대한 반감과 탄압에 대한 저항의식이 가톨릭 상징물들을 무서운 해골로 묘사하는 백색 주술로 표출되기도 했다. 이러한 흔적 또한 장식물로 만나볼 수 있다.
망게이라 삼바스쿨 “비바, 삼바!”
오늘날의 리우 카니발은 브라질 곳곳의 여러 삼바스쿨(삼바문화 전승단체)들이 경쟁적 퍼레이드가 거대한 축제로 발전한 것이다. 각각의 삼바스쿨은 저마다의 전통과 스타일을 갖고 있고, 해마다 테마를 정해 퍼레이드의 내용을 구성한다.
국립민속박물관이 접촉하고 자료와 전시물을 수집한 단체는 ‘망게이라 삼바스쿨’이다. 망게이라 삼바스쿨이 지난해 리우 카니발에서 선보인 테마가 바로 아프리카 반투계 조상들의 이주와 고난, 역경 극복이었던 것. 망게이라 삼바스쿨에서 박물관 측에 기증한, 녹색과 분홍색으로 장식된 깃발에는 왕관과 드럼, 월계수가 장식돼 있다. 리우 카니발에서 우승을 하면, 깃발에 자랑스러운 별이 하나씩 그려진다고 한다.
수직의 타워형 유리 수장고와 자유분방하고 컬러풀한 전시물이 멋진 조화를 이룬다. 생명과 열정을 상징하는 초록색과 핑크색, 아프리카의 흑색과 가톨릭의 황금색이 어우러져 소박한 유물들의 보금자리를 활기 가득한 공간으로 변신시켰다. 민속의 범위를 세계인의 보편적 공감으로 확장한 국립민속박물관의 새로운 시도에 박수를 보낸다. 전시는 3월 15일까지 열린다. 문의 031-580-58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