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생리가 시작되면?"...
청소년이 만든 작은 안전망
[청소년의회 기고] 제8대 고양시청소년의회 문화복지위원회
[고양신문] 급한 순간, 당연히 있어야 할 것이 없다면 그 도시는 누구에게 안전한 공간일까. 문화복지위원회 청소년의원들이 던진 질문은 단순했다. “공공장소에서 갑자기 생리가 시작되면,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까?” 제8대 고양시청소년의회 문화복지위원회는 공중화장실 비상용 생리대 무료지급기 확대 설치를 제안했다. 이 정책은 청소년들의 일상에서 발견한 불편에서 출발했다.
우리가 사는 고양특례시에는 공중화장실에 여성 위생용품을 비치하도록 한 조례가 있다. 그러나 조례의 존재가 곧 시민의 체감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2025년 5월 고양시 여성가족과를 통해 확인한 결과, 공중화장실 1044개소 가운데 생리대 자판기가 설치된 곳은 16개소에 불과했다. 제도는 있었지만 ‘필요한 순간’에는 닿지 않는 정책이었다.
문화복지위원회는 이 문제를 개인 경험에 머물게 두지 않았다. 지난해 5월 청소년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고, 응답자 192명 가운데 86명(45%)이 공중화장실에서 생리대가 없어 곤란을 겪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응답자 161명(84%)은 비상용 생리대 무료 지급기가 확대 설치된다면 만족할 것이라고 했다.
위원회는 “생리대는 수유실의 영유아 용품처럼 특정 계층의 혜택이 아닌 여성의 삶에 필수적인 기본권”이라며 “84%라는 수치는 이 정책이 특정 성별의 요구를 넘어 사회가 공감하는 보편적 생활 문제임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이 문제는 불편함 이상으로 반복되는 일상의 불안을 의미했다. 특히 학원가처럼 청소년 이동 인구가 많은 공간은 집과 학교 사이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학교나 공공시설에는 지급기가 있어도 이동 동선에 포함된 공중화장실에는 없다는 점이 청소년들의 일상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고 있었다.
이에 문화복지위원회는 정책 제안을 구체적인 공간에서 출발시켰다. 일산동구 백마 학원가와 일산서구 후곡 학원가 공중화장실을 시범 설치 대상지로 제안했다. 공원 내 공중화장실 가운데 청소년 이용 빈도가 높은 곳을 중심으로 실효성을 고려해 선정했다.
또한 비상용 생리대 무료 지급기가 청소년만을 위한 시설이 아니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청소년의 긴급 상황을 우선 지원하는 비상용 물품’임을 알리는 안내 문구를 함께 부착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무분별한 사용을 줄이고 정책 취지를 시민과 공유하기 위한 선택이다.
관리 방안도 함께 고민했다. 위원회는 남용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기존 ‘여성용품 바우처 사업’과 연계해 코인이나 QR코드 시스템을 도입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필요한 순간 즉시 물품을 구할 수 있는 접근성과 예산의 효율성을 동시에 확보하는 방안이다. 정기 보충과 수시 점검 체계를 마련하고, 소모 현황에 따라 보충 주기를 조정하는 방식으로 지속 가능성도 담았다. ‘생리대 챙겨줄고양’이라는 명칭 제안과 청소년 대상 포스터 공모 역시 정책을 행정의 언어가 아닌 청소년의 언어로 전달하기 위한 장치다.
마두청소년수련관에 설치된 생리대 무료 지급기는 정책의 필요성을 말로 설명하지 않는다. 이미 현장에서 기능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청소년 이용자는 “갑자기 생리가 시작돼 당황했는데, 화장실에 무료 지급기가 있어 바로 사용할 수 있었다. 이런 장치가 없었다면 하루가 완전히 망가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경험은 비상용 생리대가 단순한 편의시설이 아니라 일상의 연속성을 지키는 최소한의 안전망임을 보여준다.
이혜인 의원은 “학교나 도서관에는 있는데 학원가에는 없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이동하는 순간에도 기본권이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했으며, 이규리 부위원장은 “갑작스러운 생리는 불편이 아니라 불안이며, 이를 정책으로 바꿀 수 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고 전했다. 신주은 위원장은 “청소년의회 범위 안에서 일상의 불편을 정책 언어로 바꾸는 과정이 쉽지 않았지만, 그만큼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정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과 우려도 함께 제기됐다. 일부에서는 한정된 예산 속에서 특정 대상을 위한 시설에 비용을 쓰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의문이 있었고, 남성이나 다른 계층과의 형평성 문제도 논의됐다.
문화복지위원회는 이러한 의견을 외면하지 않았다. 설문조사와 내부 토론으로 다양한 시선을 확인했고, 그 과정에서 정책 방향도 한층 구체화했다. 설문에 참여한 남성 응답자들 가운데서도 생리대 지급기 설치에 찬성하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이는 이 정책이 특정 성별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공공장소에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불편을 줄이기 위한 생활밀착형 장치로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남용에 대한 우려도 논의됐다. 위원회는 현재 설치된 시설에서 특별한 남용 사례가 없다는 점을 확인하면서도, 확대 단계에서는 더 명확한 관리 장치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이에 바우처 사업과 연계한 코인 또는 QR코드 방식 도입을 제안했다.
이혜인 의원은 “생리대 비치는 성별에 따른 차별이 아니라 필요에 따른 배려다. 지급기 설치비는 개당 약 49만원, 월 소모 비용은 약 3만원 수준으로 큰 예산 부담 없이 불편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위원회는 이번 정책이 ‘생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되길 기대하고 있다. 생리대를 부끄러운 물건이 아닌 당연한 보건 위생용품으로 여기는 문화가 자리 잡을 때, 이 정책의 의미도 더욱 분명해질 것이다.
비상용 생리대 무료 지급기 확대 설치는 청소년이 제안했지만, 그 효과는 모든 시민에게 닿는다. 누구나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도시인가에 대한 질문이기 때문이다. 청소년의 시선에서 시작된 이 질문에, 이제 도시가 답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