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중 왕국과 바깥세상 이어주는 ‘열두 개의 구멍’
유경종 기자의 역사문화탐방 ④ 도전! 북한산성 12성문 종주
웅장한 바위산과 능선 따라 이어진 12㎞ 폐곡선
문루 올린 대문 5개, 주요 지점 지키는 암문 7개
서로 다른 매력 지닌 성문, 차례차례 만나는 재미
‘숙종의 성’ 아닌 ‘백성들의 성’으로 기억됐으면
[고양신문] 한양도성에서 탕춘대성을 거쳐 북한산성으로 이어지는 조선의 수도성곽 삼총사를 두 발로 걷는 역사탐방이 어느덧 4회차다. 사실 앞서 걸어온 길은 바로 오늘, 북한산성에 격식을 갖춰 입보(入步)하기 위한 준비 여정이었다. 통과의례를 거쳤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약 12㎞에 이르는 북한산성 전체를 12개의 성문을 차례차례 알현하며 두 발로 걸어보자.
기자가 도전할 ‘북한산성 12성문 종주’는 수도권 등산인들이라면 일 년에 한 번쯤은 연례행사처럼 치러내는, 너무나도 유명한 코스다. 수도권 최고의 명산 북한산성의 주요 봉우리들을 빠짐없이 둘러볼 수 있고, 가파른 암릉구간과 비탈길, 여유로운 능선과 데크길을 골고루 맛볼 수 있는 매력적인 코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전문 등산인만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험준한 구간이 제법 많지만 난간이나 계단, 이정표 등이 잘 정비돼 있어 초보자도 마음먹고 도전할 만하다.
동서남북 대문, 한양도성의 복사판
출발에 앞서 북한산성에 대해 개괄해 보자. 숙종 37년(1711년)에 만들어진 북한산성은 잘 알려진 대로 북한산의 험준한 산세를 지혜롭게 활용해 단 6개월 만에 완공됐다. 전체 구간의 25% 정도는 백운대, 만경대, 염초봉, 의상봉 등 가파른 암봉을 천연 성벽으로 사용했고, 나머지는 화강암 덩어리를 포개어 튼튼한 성곽을 쌓았다. 임금의 강력한 추진력과 오랜 세월 축적된 뛰어난 축성 기술이 결합된, 한민족 산성 건축의 마지막 걸작이다.
형태적으로 북한산성은 커다란 골짜기를 둘러싼 여러 봉우리들와 산줄기를 원형으로 연결한 포곡식(包谷式) 산성이다. 그러다보니 폐곡선의 안과 밖을 출입하는 문구멍을 요소마다 뚫었는데, 그게 바로 ‘북한산성 12성문’이다.
12성문은 또다시 5개의 대문과 7개의 암문으로 구분된다. 주요 교통로에 만들어진, 문루를 갖춘 큰 문이 대문(大門)이고, 성을 지키는 군사들이 필요에 따라 드나들던 ‘숨어있는 작은 문’이 암문(暗門)이다. 한양성곽이 동서남북 4대문과 사이사이 4소문을 지닌 것의 복사판이다. 산중에 또 하나의 작은 왕국을 건설한 셈이다.
각각의 이름을 살펴보자. 한양성곽 4대문을 동대문, 남대문 등 별칭으로 부르곤 하는데, 북한산성의 대문은 거꾸로 대동문, 대남문, 대서문, 북문으로 명명됐다. 여기에 한양도성과 직결되는 대성문(大成門)이 추가돼 ‘5대문’을 구성한다. 참고로, 산성 내부에 자리하고 있는 중성문(中城門)은 산성 내부의 방어력 강화를 위해 나중에 설치된 문이라 이번 답사에서는 제외했다.
험준한 암릉 이어진 의상능선에서 출발
본격적으로 답사를 시작하자. 그런데 아뿔싸, 또다시 날씨가 ‘안개 가득’이다. 앞서 인왕산을 출발해 탕춘대성 홍지문까지 걸었던 날처럼, 이번에도 날씨 운이 영 따라주지 않는다. 아무래도 코스 곳곳에서 등장하는 탁 트인 조망과 만나는 즐거움을 포기해야 할 것 같다. 별수없다. 북한산의 기가 막힌 경치에 마음 빼앗기지 말고 오롯이 산성과 성문에 집중하라는 계시가 아닐까, 긍정 회로에 시동을 건 후 등산화 끈을 조여 매고 출발!
12성문 종주는 원효봉 능선에서 출발해 시계방향으로 도는 방법이 있고, 대서문을 지나 의상능선을 따라 반시계방향으로 도는 방법이 있다. 각각 장단점이 있어서 전략을 잘 짜야 한다. 관건은 체력과 의지가 방전되기 쉬운 후반부에 어느 코스를 걸을 것인가다. 원효봉 출발을 선택하면 북한산 등산코스 중 가장 험준한 의상능선 연봉들을 마지막에 타야 하는 부담이 있다.
반면 의상능선에서 출발하면, 10번째 백운봉암문을 찍고 한참을 하강했다가 다시금 원효봉을 향해 긴 오르막을 올라야 해서 완주를 위한 마지막 퍼즐 2개(북문과 서암문)를 생략하고픈 유혹에 빠지기 쉽다.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의상능선으로 방향을 잡고 첫 번째 성문인 대서문으로 향한다.
안개 속 절경 대신 ‘성문과의 만남’ 집중
북한산성 12개 성문 중 가장 낮고 접근성이 좋은(무려 포장도로만 따라 걸어가면 나타난다) 곳에 자리하고 있는 대서문은 과거 산성 안 북한동마을에 거주했던 사람들이 마을 대문처럼 사용했고, 지금도 북한산성 탐방의 관문 역할을 한다. 거대한 좌불이 산자락을 굽어보고 있는 사찰 궁녕사를 지나 계단길을 오르다보면, 숨이 차오를 즈음 가사당암문이 나타난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의상능선의 시작이다. 의상능선은 ‘북한산의 공룡능선’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 규모는 작아도, 의상봉~용출봉~용혈봉~증취봉~나월봉~나한봉 등 설악산 공룡능선 못잖게 가파른 암봉들이 오르락 내리락 이어지기 때문이다.
산악인들은 의상능선을 ‘힘들어도 보상이 확실한 코스’라고 말한다. 암봉들을 오를 때마다 동북쪽으로는 백운대를 위시한 북한산의 주요 봉우리들이, 서남쪽으로는 고양시, 서울시의 탁 트인 경관이 비봉능선과 어우러져 감동적인 조망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짙은 안개 속에서는 모든 풍경을 상상 속에서 그려볼 뿐이다. 대신 비슷한 듯 조금씩 다른 암문들의 구조를 살펴보는 재미가 있다. 의상봉과 용출봉 사이 가사당암문은 성문 양쪽을 거대한 돌덩어리를 시루떡처럼 쌓아서 만들었고, 삼천사에서 북한동으로 넘어오는 고갯마루를 지키는 부왕동암문은 안쪽 지붕을 둥근 홍예(무지개다리) 모양으로 꾸며 멋을 더했다.
원형 남아있는 여장, 최근 복원된 치성
가파른 산세가 이어진 까닭일까. 의상능선에서는 원형이 비교적 잘 남아있는 성곽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성벽은 지형에 따라 높이를 조금씩 다르게 쌓았는데, 특히 증취봉을 지나 산성이 깊은 계곡을 반원 모양으로 돌아나가는 지점에서는 성곽의 기초와 본체, 과거에 쌓은 성곽과 최근에 복원한 성곽을 비교하며 관찰할 수 있다.
성곽에서 가장 무너지기 쉬운 부분은 여장(女墻)이다. 우리말로 ‘성가퀴’라고 부르는 여장은 성벽 위에 추가로 낮게 두른 담장을 말하는데, 공격해 오는 적을 살피고 화살이나 포를 날릴 수 있는 구멍인 ‘근총안·원총안’이 뚫려 있다. 얼마 남지 않은 여장의 원형을 살필 수 있다는 점이 의상능선 답사 포인트 중 하나다.
나한봉 정상부에서는 또 하나의 흥미로운 산성 구조물인 치성(雉城)을 만날 수 있다. 성곽 일부분을 바깥쪽으로 돌출시킨 치성은 적군의 접근을 살피고, 측면에서 방어하기 위한 시설이다. 설명문을 읽어보니, 삼면이 탁 트인 나한봉 치성에서 ‘한양과 한강 유역, 서쪽 한강 하구와 멀리 강화도까지 조망할 수 있다’고 하는데, 역시나 안개가 지워 버렸다.
치성과 함께 북한산성 복원사업을 통해 옛 모습을 재현한 시설이 성랑지(城廊址)다. 성랑은 산성 곳곳에 세운 다락집이라는 뜻인데, 요즘으로 치면 군 초소다. 나무로 지었을 다락은 진작에 사라졌고, 그나마 돌로 닦은 터가 복원되어 성랑의 규모를 상상하게 해준다. 여장과 치성, 성랑의 존재는 북한산성이 치밀한 군사전략에 의해 설계된 방어시설이라는 사실을 새삼 확인시켜준다. 청수동암문과 문수봉을 지나 대남문에 이르면 드디어 초반부 난이도와 재미를 겸장한 의상능선이 끝난다.
단청 아름다운 대성문, 터가 넓은 대동문
따뜻한 햇살이 드는 대남문 남쪽 계단에 앉아 잠시 숨을 돌리고 다시 산행을 시작한다. 여기서부터 대성문~보국문~대동문~용암문까지 북한산성 동벽이 이어지는 구간은 적당히 가파르고 적당히 완만한, 산행의 여유를 한껏 즐길 수 있는 산성 주능선길이다. 대성문에는 대남문에선 보지 못한 반듯한 현판이 걸려있고, 문루 위 마루 쉼터도 깔끔하다. 무엇보다도 홍예문으로 뚫린 문구멍 천장에도 화사한 단청이 채색돼 있다.
참고로, 행정구역상 북한산성 전체 구간은 고양시에 속해 있지만, 문화재 관리 영역으로 구분하자면 대남문에서 용암문까지 성곽의 약 3.6㎞ 구간은 서울시가, 나머지는 고양시가 담당한다. 그걸 의식하고 살펴보니, 복원의 규모와 방식 등에서 차이가 난다는 느낌이다. 아무래도 서울시 구간이 예산을 많이 쓴 티가 난다. 물론 ‘돈 많이 들였다’는 말과 ‘제대로 복원했다’는 말이 늘 일치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일부 구간에서는 천편일률적으로 반듯하게 찍어낸 성돌을 써서 역사유적으로서의 운치를 반감시킨다.
성문과 암문을 하나하나 감상하는 재미는 후반부에도 이어진다. 대성문에 이어 나타나는 보국문은 암문으로서는 이례적으로 현판이 걸려있고, 새로 복원한 여장이 암문 위까지도 이어져 있다. 12성문 중 가장 많은 이들의 발길이 머무는 문은 바로 대동문이다. 안팎이 가파른 고갯길로 바로 이어지는 다른 성문들과 달리, 대동문 안쪽에는 제법 넓은 평지가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커다란 느티나무와 문루의 우아한 곡선이 어우러진 모습은 방문객은 물론, 사진작가들도 선호하는 포토존이다.
스님들의 역할 새겨주는 승영사찰 흔적
대동문에서 용암문으로 가다 보면 북한산성에서 가장 멋진 건축물 중 하나인 동장대(東將臺)를 만날 수 있는데, 아쉽게도 철판으로 담장을 치고 보수공사를 하고 있다. 곧이어 용암사지(龍巖寺址)가 나타난다. 용암사는 축성 당시 북한산 곳곳에 산재했던 11개 승영사찰(僧營寺刹) 중 하나였다. 승영사찰은 군승들이 머물던 사찰을 말한다. 산성 축성과 이후 관리에 큰 몫을 담당했던 승려들의 역할로 인해 북한산성은 호국불교 전통의 계승이라는 또 하나의 역사적 의미를 얻게 된다.
용암사지 인근에는 70~80년대 산악인들의 성지였던 ‘북한산장’과 ‘엠포르(EMPOR)산장’이 사이좋게 자리하고 있다. 기초만 남은 엠포르산장에는 1968년 산장을 개장하며 박아놓은 머릿돌이 남아있고, 간소하게 정비된 북한산장은 ‘북한산대피소’라는 새로운 간판을 걸고 있다.
백운봉암문 찍고, 북문·서암문은 다음 기회에
암문을 지나면 다시 산세가 험해진다. 용암봉과 노적봉, 만경대 사이를 통과해야 하지만, 곳곳마다 데크와 계단이 정비되어 있어 잔여 체력 경고등이 켜진 두 발로도 어렵잖게 걸을 수 있다. 마지막 긴 계단길을 오르면, 드디어 백운봉암문(白雲峰暗門)이다. 북한산 서쪽 고양시와 동쪽 서울 우이동에서 올라온 가파른 경사로가 만나는, 백운대로 향하는 암릉길을 시작하기 전에 잠시 한숨을 돌리는 포인트다. 안개가 자욱한 평일인데도, K등산 열기를 방증하듯 백운대를 목표로 가쁜 숨을 내쉬며 계단을 오르는 외국인 등반객들이 여럿 보인다. 북한산성의 역사는 오늘날에도 새로운 이야기를 더하며 이어지고 있다.
여기까지 지나온 성문이 10개. 산성 지도는 백운대와 염초봉을 지나 북문으로 이어지지만, 염초봉 구간은 위험구간이라 출입 통제다. 서두에 밝혔듯, 가파른 길을 하염없이 내려오다가 상운사 지나 갈림길에서 잠시 멈춰섰다. 나머지 2개 성문 완주를 위해 다시 원효봉으로 오를 것인가? 결정은 길지 않았다. ‘빨리 밥 먹으러 가자’는 몸의 요청에 저항하지 않기로 한다. 깔끔히 포기! 조만간 산뜻한 컨디션으로 원효봉 코스만 따로 둘러보는 게 진정한 답사자의 자세 아니냐며, 셀프 긍정마인드를 한번 더 가동한다.
삼삼오오 시시때때 찾는, 모든 이들의 산성
식사 후 느긋하게 차를 마시며 산행 중 찍은 성곽 사진들을 열어본다. 봉우리와 능선을 따라 길게 이어진 거대한 화강암 성벽, 멀리서 보면 아름답고 가까이에서 보면 가슴이 저려온다. 그 높고 험한 바위산 곳곳에서 터를 닦고, 바윗돌을 떼어내 다듬고, 체성을 쌓는 현장까지 짊어져 운반하고, 아귀가 맞물리도록 육중한 성돌을 쌓아 올리고, 여장과 치성을 더하고, 판돌을 얹어 12개의 성문을 만들고, 문루를 올려 아름다운 단청을 채색한 이름 없는 선조들의 땀방울, 핏방울이 상상되기 때문이다.
북한산성을 단지 ‘숙종이 만든 성’으로 부른다면, 그 성을 쌓고 지킨 수많은 이들의 수고는 잊힌다. 산성을 쌓는 데 동원된 수도방위 삼군문(훈련도감, 어영청, 금위영) 병사들, 숙련된 솜씨를 발휘한 축성 기술자들, 당대의 산악 전문가인 승려들, 그리고 가가호호 북한산성 축성 공사에 동원된 한양과 인근 백성들을 호명하는 일이야말로 이 웅장하고 아름다운 성곽의 역사를 올바로 기억하는 방식이 아닐까.
같은 맥락에서, 오늘날 북한산성 세계유산 등재의 주역도 단지 행정부서나 지자체장이 아닌, 삼삼오오 시시때때 북한산성 12성문 종주에 도전하는 평범한 이웃들이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