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성 행궁, 지형·기능 지혜롭게 아우른 조선 행궁의 완성판”

북한산성 행궁지 학술대회

2026-03-06     유경종 기자

‘유네스코 세계유산’ 심사 준비하는  
북한산성 행궁의 과거·현재·미래 조명
“세계유산 등재 모두가 한마음 응원”

"북한산성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한마음으로 기원합니다!"

[고양신문] 북한산성의 핵심 시설인 ‘행궁지’에 대한 가치를 재조명하는 자리가 열렸다. 지난 5일 킨텍스 제2전시장 회의실에서 열린 ‘북한산성 행궁지 학술대회’는 ‘북한산성 행궁의 과거·현재·미래’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행궁의 건립과 설계, 발굴 과정, 향후 보존과 활용방안이 폭넓게 논의됐다.

북한산성은 ‘한양의 수도성곽’이라는 유산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이번 학술대회는 세계유산 등재 신청서를 정식 제출 후 열리는 첫 학술행사다. 북한산성 행궁은 조선 숙종대(1712년) 건립된 왕의 별궁으로, 1915년 대홍수로 매몰되어 터만 남아있다가 2007년 사적으로 지정됐다. 이후 2011년부터 6차례에 걸쳐 정밀 발굴조사가 진행됐고, 그간의 발굴 성과가 이날 학술대회의 바탕이 됐다. 

이날 학술대회는 고양시 주최, (재)백두문화연구원 주관으로 소박하게 열렸지만, 유네스코 자문기구인 이코모스(ICOMOS,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 한국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한 송인호 서울시립대 명예교수, 현 이코모스 한국위원회 사무총장인 신희권 서울시립대 교수 등 무게감 있는 학자들이 기조강연과 종합토론 좌장을 맡아 수준 높은 세미나를 이끌었다. 또한 ‘북한산성 서포터즈’ 회원 등 다수의 시민들도 참석해 북한산성 세계유산 등재를 염원하는 마음으로 발표 내용에 귀를 기울였다.

주제발표를 한 송인호 서울시립대 명예교수(왼쪽)와 개회 인사를 하는 서봉수 백두문화연구원장. 

한양의 수도성곽, 동아시아 산성 전통의 창의적 발전 

송인호 명예교수는 기조강연을 통해 ‘북한산성과 「한양의 수도성곽」의 세계유산 가치’를 조명했다. 한양도성-탕춘대성-북한산성이 하나의 이름과 구역으로 묶이는 ‘단일유산’으로 인식돼야 하며, 성곽유산인 동시에 도시의 구조·경관과 분리해 생각할 수 없는 ‘도시유산’ 성격을 갖는다고 강조했다. 한반도의 산세와 당대의 지리적 인식을 토대로 “위치와 환경에 의해 형태가 결정된 성곽”이며 “전쟁을 대비해 방어와 피난을 위해 축조된 군사유산이지만, 동시에 도성의 위엄과 문명을 표상하는 도시유산”이라는 점을 ‘한양의 수도성곽’을 차별화하는 중요한 특징으로 꼽은 것이다.

이어 14세기에 만들어진 한양도성과 18세기에 축조된 산성이 결합돼 ‘한양의 수도성곽’ 형식이 완성됐다는 점을 주목하며 “오랜 시간의 층위가 축적된, 도성과 연결성과 산성이 전략적이고 유기적으로 통합된 시스템은 동북아시아 포곡식 산성 전통의 창의적 발전을 보여주는 탁월하고 독특한 증거”라고 강조했다.

주제발표를 한 신영문 서울시 세계유산등재팀장(왼쪽)과 이승연 건축문헌고고스튜디오 실장.  

“당대의 상황, 백성들 희생도 함께 살펴야” 

이어 다양한 관심과 접근방식을 보여준 3개의 주제발표가 흥미롭게 이어졌다. 신영문 서울특별시 세계유산등재팀장은 ‘숙종대 북한산성 행궁 건립의 물력 조달과 변통’을 살폈다. 숙종의 각별한 추진의지에 힘입어 북한산성과 행궁 공사가 진행됐지만, 당대 조선의 실상이 과연 대규모 사업을 감당할 만한 형편이었을까, 그렇지 못했다면 어떤 방법으로 물력을 조달하고 상황을 변통(變通)했을까가 발표의 핵심이었다.

신 팀장은 당대 조정의 찬반 논란, 진휼청(賑恤廳, 백성 구제 담당관청) 비축자산의 전용, 자재 수급의 한계와 왕릉(여주 영릉) 숲 벌채에 따른 정치적 갈등, 남한강 수운의 위험성과 행정적 강행, 승군 동원과 산악지형에서의 극한 노동, 민생 희생을 담보하는 위험부담 등 북한산성과 행궁 사역의 쉽지 않았던 이면들을 구체적인 사례들을 근거로 촘촘히 재구성했다. 신 팀장은 “애민을 표방하며 추진됐지만, 사실상 안보 논리로 백성의 희생을 담보했다는 측면까지도 짚어야 북한산성과 행궁의 의미를 올바르게 살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승연 건축문헌고고스튜디오 실장은 ‘조선후기 국가보장처로 조영된 행궁의 건축제도와 기술’을 남한행궁·북한행궁 발굴조사 성과를 중심으로 고찰했다. △북한행궁의 입지 △유사시 국가보장처로 건립된 행궁의 건축제도 △남한행궁과 북한행궁의 건축토목기술 등이 오랜 발굴조사를 통해 밝혀진 내용들을 바탕으로 상세히 설명됐다. 이 실장은 “북한산성 행궁은 주어진 지형과 기능적 요구에 맞춰 규모와 공간구성을 합리적으로 조정해 나갔다”면서 “핵심 전각 중심의 간결하고 집약적인 구성은 조선 행궁제도의 완성이라 할 만하다”고 평가했다.  

북한산성 행궁의 보존과 활용 방안에 대한 주제발표를 진행한 박현욱 경기문화재단 책임연구원.  

문화유산 가치 걸맞은 활용방안 모색 

마지막으로 박현욱 경기문화재단 경기역사문화유산원 책임연구원이 ‘북한산성 행궁지의 보존과 복원, 활용방안에 대하여’라는 주제로 발표했다. 사실상 각각 독자적인 세미나 주제로 다뤄져야 할 ‘보존·복원·활용’이 한 명의 발표자에게 한꺼번에 떠안겨진 이유는 자명하다. 박현욱 연구원이 북한산성 발굴과 복원사업, 세계유산 등재 추진을 출발부터 지금까지 담당해 온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며칠 밤을 지새워도 모자랄 주제들에 대해 박 연구원은 ‘글보다는 사진을 보여주며’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특히 오늘날 소중한 사료로 활용되고 있는, 북한산성 행궁의 19세기 말 모습을 담은 희귀한 사진들이 우연히 그의 눈에 포착돼 세상에 알려지게 된 에피소드는 참석자들에게 큰 재미와 감동을 전했다. 그의 이야기를 통해 국권 상실 후 행궁이 방치되고, 일제가 행궁을 영국성공회 여름 피서지로 빌려주고, 1915년 6월 집중호우로 붕괴된 상황들이 생생하게 전해졌다. 이후 행궁지 보존방안이 수립되고, 10년 넘게 정비공사가 길게 이어지고 있는 사정도 들을 수 있었다. 

1900년 무렵으로 추정되는 북한산성 행궁 사진. [사진제공=고양시]

박현욱 연구원은 “세계유산의 정비는 유산의 보전을 위한 활동을 의미한다. 여기서의 보전이란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을 넘어, 제한된 변화를 허용하되 장소의 문화적 의의를 유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북한산성 행궁지의 부속시설인 경리청상장, 관성소, 호조창까지 사적 영역을 확대·관리할 필요가 있다”는 바람을 밝히기도 했다. 활용에 대해서는 “단순히 많은 사람을 끌어들이는 데 목적을 두지 말고, 문화유산의 가치에 걸맞은 다양한 활용방안을 상상하고 모색하자”고 제안했다.

이어 신희권 교수가 이끌고 3명의 토론자(서봉수 백두문화연구원장, 조재모 경북대 건축학부 교수, 한욱빈 한국건축안전센터 소장)가 합세해 활발한 논의를 펼친 종합 토론, 청중석에서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한 질의응답 시간까지, 4시간 동안 이어진 학술대회가 내내 진지하고 알차게 진행됐다. 참가자들은 청중석에서 마이크를 잡은 북한산성 서포터즈 김옥석 회장의 제안으로 “북한산성 세계유산 등재를 다함께 힘차게 응원하는” 박수로 학술대회를 마무리했다.  

디지털 3D 기법으로 복원된 북한산성 행궁 이미지. [사진제공=고양시]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다양한 주제에 대한 전문가들의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