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프도록 아름다운 영월 청령포에 어린 왕 만나러 가요
영화 <왕과 사는 남자> 흥행으로 영월 들썩 "영화의 감동, 현장에서 느끼고 싶다" 청령포, 장릉 등 단종유적지 인산인해 다음달 단종문화제 역대 최대관광객 기대
[고양신문] “나는 이제 어디로 갑니까…”
계유정난으로 왕위에서 쫓겨난 조선의 6대 임금 이홍위는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1457년 6월 22일 천리 유배길에 오른다. 서울 창덕궁을 떠난 노산군은 군졸 50명의 호위를 받으며 여주, 원주, 주천을 거쳐 6일 만에 영월 청령포에 도착한다.
청령포라는 낯선 땅에서 17살 어린 선왕을 맞이한 사람은 늙수그레한 광천골의 촌장 엄흥도와 순박한 마을 사람들이었다. 유배지에 숨은 실력자를 받아들여 마을을 부흥시키고자 했던 엄흥도의 바람은 시작부터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말았다.
고귀한 신분에서 나락으로 떨어진 어린 왕과 평민 신분인 아버지뻘 남자 사이의 우정을 그린 장항준 감독의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새로운 흥행 기록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관객 1200만명을 돌파한 지난 11일, 사단법인 한국관광클럽(대표 이광현)과 영월군농촌관광협의회 초청 팸투어로 영화의 배경인 강원도 영월을 찾았다.
왕의 눈물이 흐르는 '육지속 섬' 청령포
영화의 흥행에 힘입어 ‘육지 속의 섬’인 단종의 유배지 청령포에 가기 위해 평일인데도 관광객들이 길게 줄지어 나룻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안성기 박중훈 주연의 영화 <라디오스타>에 이어 영월을 배경으로 한 영화 신드롬 2탄이다. 이번에는 전작보다 파괴력이 크다. 영월군에 따르면, 주말이면 청령포에 가기 위해 두 시간 줄을 서야 하고, 다음달 시작되는 단종문화제를 보기 위해 두 달 전에 숙박시설의 예약이 마감되었다. 관광객의 연령층도 다양해졌다. 전작의 영화가 중장년층의 향수를 자극하며 추억을 되새기는 양상이었다면, 이번에는 스크린에서 느낀 감정을 현실에서 확인하고 싶은 젊은 층도 많다.
청령포는 동, 남, 북 삼면이 강물로 둘러싸이고 서쪽은 암벽이어서 나룻배를 이용하지 않고는 밖으로 출입할 수 없는 섬과 같은 곳이다. 서강이 구불구불 흐르면서 마치 뱀이 기어가는 모습 같은 사행천의 안쪽에는 자갈과 모래가 수북이 쌓여있고 바깥쪽 강변은 말발굽 모양으로 험준한 절벽이 솟아 있어 슬프도록 아름다운 천연 감옥처럼 보였다.
청령포 입구에는 단종의 유배길 호송 책임을 맡은 금부도사 왕방연이 비통한 마음으로 청령포를 바라보며 지었다는 시비가 세워져 있다.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님 여의옵고/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저 물도 내 안 같아야 울어 밤길 예놋다.”
강을 건너 자갈밭을 지나면 수백 년 된 울창한 소나무 숲이 이어진다. 소나무 숲이 기암괴석의 절벽을 휘돌아나가는 서강과 어우러져 자연경관이 뛰어난 청령포는 2004년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우수상을 수상했고, 2008년 국가지정 명승 50호로 지정되었다. 아늑한 정취의 소나무 숲길을 따라 잠시 걸으면 단종어소와 시종들이 묵었던 행랑채가 나타난다. 단종어소는 승정원일기의 기록에 따라 기와집으로 당시의 모습을 재현했다. 여름 장마철에 강물이 범람하여 청령포가 물에 잠기게 될까 우려되어 처소를 영월 객사인 관풍헌으로 옮기기 전까지 단종은 두 달간 이곳에 머물렀다.
단종어소 주변의 크고 오래된 송림 가운데서도 군계일학으로 우뚝한 소나무가 천연기념물 349호 관음송이다. 단종의 유배 당시 모습을 보았고, 오열하는 소리를 들었다 하여 관음송(觀音松)이라 불리어 왔다. 높이 30m, 가슴둘레 5m로 600살이 넘는 이 소나무는 단종 유배 시 약 60년생으로 추정되며 단종이 이 소나무에 기대어 쉬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청령포에는 관음송 말고도 단종에 얽힌 이야기가 많다. 단종이 한양을 바라보며 시름에 잠겼다고 전해지는 노산대와, 단종이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근심 속에서도 한양에 남겨진 부인 정순왕후 송씨를 생각하며 돌을 주워 쌓았다는 망향탑 등이다. 망향탑은 단종이 남긴 유일한 유적이다.
단종이 죽은 지 269년이 지난 1726년, 영조는 단종 유배지를 보호하고자 일반 백성의 출입을 금하는 ‘금표비’를 세웠다. 금표비의 앞면에는 ‘청령포 금표’, 뒷면에는 ‘동서 삼백척 남북 사백구십척 차후 니생역재당금’이라고 새겨져 있다. 이 말은 동서로 300척(약 91미터), 남북으로 490척(약 148.5미터), 그리고 이후에 진흙이 쌓여서 생기는 땅도 금지구역으로 한다는 뜻이다. 청령포의 우수한 자연경관이 잘 보존된 것은 금표비 덕분이라는 말이 나온다.
낙촌비각이 장릉에 들어선 이유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570여 년 전 청령포의 풍경을 담기 위해 이미 관광지로 개발된 청령포를 대신해 자동차로 10분가량 떨어진 동강 지류의 방절리 ‘선돌’ 앞에 촬영 세트장을 지었다. 장항준 감독은 촬영 여건이 불편한 영월에서 촬영한 이유에 대해 “영월에서 벌어진 일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서강 절벽에 솟은 약 70m 높이의 기암은 단종이 “우뚝 선 모습이 신선과 같다”고 말해 선돌이란 이름이 붙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폐교를 리모델링해 만든 동강리버버깅에서 은하수 불멍을 즐긴 이튿날 단종의 능인 장릉(사적 196호)을 찾았다. 장릉은 한양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왕릉이다.
능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영월군수 박충원(1507~1581)을 기린 ‘낙촌비각’이 눈에 띈다. 박충원은 단종이 숨진 지 84년 만인 1541년(중종 36) 영월군수로 부임하여 단종의 묘를 찾아내 묘역을 정비하고 제문을 지어 처음으로 제사를 올린 인물이다. 동강에 버려진 단종의 주검을 영월 사람 엄흥도가 몰래 수습하여 산자락에 암장한 뒤 오랫동안 방치된 터라 단종의 묘는 위치조차 알 수 없는 상태였다.
조선 전기 문신이자 학자인 박충원은 당시 3명의 영월군수가 연이어 비명횡사해 민심이 흉흉해지자 자청해서 영월군수에 부임해 제문을 짓고 정성스레 제를 올린 뒤 6년간 별 탈 없이 지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선조수정실록』은 “박충원이 영월 군수로 부임할 당시 영월의 관리들이 갑자기 죽는 요사스러운 일이 많았는데, 사람들이 이를 노산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러자 박충원이 노산의 묘에 제사를 지냈더니 그 뒤로는 탈이 없었고 요사스런 말도 사라져서 사람들이 박충원을 칭송하였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박충원은 고양과도 인연이 깊은 인물이다. 6조 판서와 양관 대제학 등 조정의 요직을 두루 거친 뒤 향년 75세로 별세한 박충원은 고양시 덕양구 주교동에 자리한 밀양박씨 규정공파 두응촌 묘역에 안장되었다.
‘박충원 묘’는 1989년 고양시 향토유적 26호로 지정되었으며, 묘역 정비 과정에서 출토된 ‘박충원 백자청화묘지’ 8점은 2018년 경기도 유형문화재 318호로 지정되어 경기도박물관에 보관·전시 중이다.
장릉에만 있는 사당, 정려비, 기적비
단종은 1681년(숙종 7) 노산대군으로 추봉된데 이어, 죽은 지 241년만인 1698년(숙종 24) 11월 왕으로 복권되었다. 노산군묘로 불렸던 무덤의 이름은 장릉으로 정해졌다.
높은 언덕 위에 자리한 장릉은 청령포처럼 울창한 소나무 숲길이 푸른 하늘과 더불어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어린 왕의 무덤은 병풍석과 난간석이 없고 석물 또한 단출하였다. 봉분 앞에 상석이 있고, 상석 좌우에 망주석 1쌍이 서 있으며, 그 아랫단에 사각형 장명등과 문인석·석마(石馬) 각 1쌍이 있고 무인석은 없다.
묘가 조성된 언덕 아래에는 단종을 위해 순절한 충신을 비롯한 264인의 위패를 모신 배식단사와, 단종의 주검을 수습한 엄흥도의 충절을 기리는 정려비, 묘를 찾아낸 박충원의 행적을 새긴 낙촌기적비, 정자각·홍살문·재실·정자 등이 조성되어 있다. 왕릉에 사당·정려비·기적비·정자 등이 있는 곳은 장릉뿐인데, 이는 모두 왕위를 빼앗기고 죽음을 맞은 단종과 관련된 것들이다. 짧은 생을 비극적으로 살다 간 어린 왕을 끝까지 지키려하고 보살피고 기억하는 사람들을 역사는 잊지 않고 있는 것이다.
<왕과 사는 남자> 주인공 엄흥도는 단종이 영월에 유배 온 1457년 6월 28일부터 조정에서 내려진 사약을 받고 세상을 떠난 10월 24일까지 넉 달 동안 영화에서처럼 정성을 다해 어린 임금을 보살폈다. 그는 단종이 죽자 후환이 두려워 아무도 거두어 돌보지 않은 가운데 홀로 찾아가 통곡하고 관을 마련하여 장사를 지낸 것으로 전해진다. 단종의 주검이 강물에 버려지고 주검을 거두는 자는 삼족을 멸한다는 어명이 있었지만 위험을 감수하고 몰래 주검을 수습하여 매장하였다. 엄흥도는 숙종 때 공조참의, 순조 33년(1838)에 공조판서로 추중되었고, 고종 13년(1876)에 충의공이란 시호를 받았다.
어린 왕이 유배지에 베푼 은혜
단종이 영월에 머물렀던 시간은 넉 달에 불과했지만 ‘영월 하면 단종’이 떠오를 만큼 단종은 영월의 상징적인 존재가 되었다. 우선 영월의 대표적 봄축제인 ‘제59회 단종문화제’가 다음달 24일부터 26일까지 영월읍 동강 둔치와 장릉 일원에서 열린다. 영월군은 올해 축제에 역대 최대 규모의 관광객이 몰릴 것으로 내다보고 숙박, 식사, 교통 대책 등 손님맞이에 분주하다.
박철희 영월군농촌관광협의회 대표는 “영화 흥행 덕분에 주변의 유명 관광지인 제천, 단양, 태백, 정선 등을 제치고 전국에서 가장 핫한 여행지가 되고 있다”며 “관광객이 불편을 겪지 않도록 관광인프라를 확충, 재정비하고 지속적으로 찾을 수 있는 콘텐츠 개발에 나서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