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글로벌 인공지능 거버넌스 허브 유치   

<높빛시론> 김범수 자치도시연구소 소장

2026-03-25     김범수 자치도시연구소장
김범수 자치도시연구소 소장

[고양신문] 2026년 3월 17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대한민국 정부는 역사적인 첫걸음을 내디뎠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국제사회 앞에서 글로벌 인공지능 허브를 대한민국에 유치하겠다는 의지를 공식화하며, 6개 유엔 산하기관과 협력의향서(LOI)를 체결했다.

이 자리에는 국제노동기구(ILO)·국제이주기구(IOM)·국제전기통신연합(ITU)·세계보건기구(WHO)·세계식량계획(WFP)·유엔개발계획 등 6개 주요 국제기구들이 함께했다. 이는 국가 차원에서 글로벌 인공지능 거버넌스 체계 구축에 대해 국제사회와 처음으로 공식적인 협력 의사를 표명한 사건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그 하루 전인 3월 16일, 김민석 국무총리는 뉴욕 유엔 본부에서 안토니오 구테레스 사무총장과 회견을 갖고, 대한민국의 글로벌 인공지능 허브 유치 의지를 직접 설명했다. 이 허브는 단순한 연구기관이 아니라, 유엔이 중심이 되어 국가·기업·대학·비정부기구가 함께 참여하는 다자 협력 플랫폼으로서, 세계 차원의 인공지능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핵심 거점이 될 것이다.

대한민국이 이 허브를 유치하려는 이유는 분명하다. 첫째, 인공지능을 기술 중심이 아닌 ‘인류 공동 문제 해결’의 도구로 전환하기 위해서다. 인공지능은 이미 실업 문제, 알고리즘 중독, 로봇화된 범죄, 드론과 피지컬 AI를 활용한 군사적 위협 등 다양한 글로벌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이러한 도전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개별 국가를 넘어선 국제적 협력과 규범이 필요하다. 인공지능이 인류의 안전과 행복을 위해 봉사하도록 만드는 일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다.

둘째, 인공지능 활용에 대한 국제 규범과 윤리를 정립하기 위해서다. 글로벌 인공지능 허브는 단순한 기술 교류를 넘어, 인권과 책임성을 기반으로 한 국제 표준을 논의하고 형성하는 공간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 허브를 유치한 국가는 자연스럽게 인공지능 규범 형성의 중심에 서게 된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바탕으로 이러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중요한 위치에 있다.

셋째, 국가 미래 전략으로서의 인공지능 경쟁력 확보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한민국을 세계적인 인공지능 강국으로 도약시키겠다는 목표를 분명히 했다. 특히 2026년 3월 18일 열린 정책 간담회에서 글로벌 인공지능 허브가 대한민국을 ‘인공지능 3강(미국, 중국, 그리고 대한민국)’으로 이끄는 중요한 기반이 될 것임을 강조했다. 이는 단순한 산업 정책이 아니라, 국가의 미래를 좌우하는 핵심 전략이다.

이처럼 중앙정부의 의지는 분명하고 강력하다. 대통령과 국무총리를 중심으로 한 정치적 리더십, 차지호 국회의원이 주축이 된 국회의 입법적 지원, 그리고 재정과 인재 투입까지 다차원적인 준비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국가적 프로젝트에서 이제 중요한 질문은 하나로 모아진다. “대한민국 어디에 이 허브를 둘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해 고양시는 매우 설득력 있는 답이 될 수 있다. 고양시는 이미 킨텍스를 중심으로 한 마이스 산업의 핵심 기반을 갖추고 있다. 국제회의, 전시, 컨벤션, 관광 산업이 결합된 마이스 산업 생태계는 글로벌 협력 플랫폼이 자리잡기에 최적의 조건이다. 여기에 수도권 접근성, 풍부한 인적 자원, 확장 가능한 도시 인프라까지 고려한다면, 고양시는 단순한 후보지가 아니라 전략적 거점이 될 수 있다.

더 나아가 고양시의 도시 정체성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1989년 일산신도시 계획 당시, 일산은 스위스 제네바를 모델로 설계됐다. 호수공원과 외교단지 구상은 단순한 도시 미관이 아니라, ‘국제적 도시인 제네바’라는 모델을 대한민국에 실현한 것이었다. 당시 계획을 주도했던 한국토지공사 이상희 사장은 ”일산을 스위스의 ‘레만호’를 굼꾸며 도심 속에 호수공원을 구생했다“고 한다(고양신문 2017년 8월 3일자).

또한 ”일산은 문화도시, 외교도시로 성장하기를 바랐다. 각국의 대사공관을 유치하고, 대사관들이 많이 머무는 외교도시로 커갈 것과, 큰 공연장과 박물관을 갖춰 문화도시로서의 성격을 갖춘 도시로 성장하길 바랐다.“ 그러나 일산의 꿈은 실현되지 않았다.

이제 그 비전이 새로운 형태로 우리 앞에 놓여 있다. 글로벌 인공지능 거버넌스 허브는 과거의 외교도시 구상을 21세기형으로 확장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제네바가 국제기구와 외교의 중심지라면, 고양시는 인공지능과 국제적 디지털 거버넌스의 중심지로 도약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경제적 이익을 넘어선다. 고양시는 국제 협력의 무대가 되고, 미국 하버드 대학과 영국의 옥스퍼드 대학 등 연구진들이 교류함으로써, 청년들에게는 세계와 연결된 기회의 도시가 되며, 시민들에게는 자부심과 활력을 제공하는 공간으로 재탄생할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가능성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도시의 미래는 정책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시민의 공감과 참여, 그리고 공동의 의지가 필요하다. 우리가 이 비전을 함께 이해하고 지지할 때, 비로소 현실이 된다. 고양시는 지금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유엔 글로벌 인공지능 거버넌스 허브 유치는 일산의 운명을 고양시의 오래된 비전을 회복하는 선택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