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길 위에서 만난 일본…에도시대 옛길을 걷다

고양신문여행학교, 8~12일 일본역사문화탐방 나카센도, 토가쿠시, 후지산둘레길 트레킹 

2026-04-17     박경만 기자
지난 11일 눈덮인 후지산 아래에 진달래가 활짝 피어있다.

[고양신문] 벚꽃과 동백꽃,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핀 봄날, 눈을 들면 북알프스 설산 봉우리들이 병풍처럼 끝없이 펼쳐졌다. 해발 3000m급 높은 산봉우리가 밀집해 ‘일본알프스’로 불리는 일본 혼슈 중부 산악지대의 4월 풍경이다. 북알프스·중앙알프스·남알프스로 나뉘는 이 지역은 봄과 겨울이 공존하는 독특한 계절감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고양신문 여행학교는 ‘아시아 역사문화여행’ 시리즈의 일환으로 지난 4월 8일부터 12일까지 4박5일간 일본 중부 산악지역을 탐방했다. 이번 여정은 에도시대의 옛길인 나카센도(中山道)를 따라 걷고, ‘신앙의 숲’ 토가쿠시, 그리고 후지산 둘레길을 탐방하는 인문학적 트레킹으로 진행됐다. 참가자는 고양시민과 ㈜트렉월드 회원 등 25명. 도시가 아닌 오래된 길과 숲에서 일본의 본질을 만나는 여정이었다. 

인적이 드문 나카센도 숲길에 곰 출몰 주의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탐방객들이 에도시대에 조성된 나카센도 옛 역참마을인 마고메 거리를 걷고 있다.
나카센도 옛길에 홍매화가 활짝 피어 있다.
16세기 건립된 마쓰모토성이 북알프스 설산을 배경으로 장엄한 분위기를 선보이고 있다.

‘길이 곧 역사다’ 나카센도 시간여행
1603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에도 막부를 연 뒤, 통일된 일본 전국을 통치하기 위해 다섯 개의 간선도로(五街道)가 정비됐다. 그 가운데 에도(현 도쿄)와 교토를 잇는 나카센도는 다이묘(영주) 행차와 상인들의 물류 이동, 순례자의 발길이 이어지던 근세 일본의 동맥이었다. 
나카센도는 총 69개의 역참(주쿠)을 연결하는 내륙 산길로, 바닷길인 도카이도(東海道)보다 험하지만 큰 강을 건널 일이 적어 비교적 안전했다. 황실 여성과 귀족들이 이 길을 이용해 ‘공주의 길(姫街道)’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렸다.
메이지 유신 이후 철도 개통으로 도로로서 기능은 쇠퇴했지만, 마고메주쿠와 쓰마고주쿠 같은 역참마을은 원형이 잘 보존되어 에도시대의 정취를 보여주고 있다. 
이번 답사에서는 총길이 534㎞ 가운데 보존 상태가 뛰어난 오치아이~마고메~쓰마고까지 약 13㎞ 구간을 6시간 동안 걸었다. 돌길과 물길을 따라 목조 여관과 찻집이 이어진 풍경은 에도시대의 시간을 그대로 품고 있었다. 숲길 사이로 선보이는 한 쌍의 폭포인 오타키와 메타키, 그리고 흐드러지게 만개한 봄꽃들이 길 위의 여정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다.
트레킹 후 방문한 나가노현 마쓰모토성은 검은 외벽 때문에 ‘까마귀성’이라 불린다. 16세기 후반 건립된 천수각이 원형대로 보존되어 눈 덮인 북알프스 산맥을 배경으로 압도적인 풍경을 보여준다.

토가쿠시 삼나무 숲길
토가쿠시 본사인 오쿠샤 가는 길목에 출입금지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토가쿠시 신사의 수령 800년된 삼나무.

‘신앙의 숲’ 토가쿠시, 장엄한 삼나무길
나가노 북부 산악지대의 토가쿠시는 일본을 대표하는 신성한 영적 공간으로 ‘신앙의 숲’이라 불린다. ‘숨은 문(戶隱)’이란 뜻의 이름처럼, 일본 신화에서 태양신 아마테라스가 숨었던 동굴의 돌문이 날아와 떨어진 곳이라는 전설이 전해진다. 이를 바탕으로 조성된 토가쿠시는 다섯 개의 신사로 이뤄진 성지다. 이곳은 헤이안 시대 이후 신토와 불교가 결합된 수행 전통(수험도)의 중심지로 발전했다. 
특히 우에스기 겐신과 다케다 신겐이 대립하던 전국시대에는 전략적 요충지이자 신앙의 거점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에치고(현 니가타)를 본거지로 한 우에스기 겐신은 시나노(현 나가노)를 근거지로 한 라이벌 다케다 신겐과의 싸움에 앞서 토가쿠시의 신들에게 승리를 기원하는 기도를 올렸다고 한다. 
여행 3일째, 봄비가 내린 토가쿠시 숲길은 400년 수령의 삼나무들이 하늘로 곧게 뻗어 장엄하고 경이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하지만 아직은 탐방하기에 이른 계절인 탓에 본사인 오쿠샤까지는 오르지 못하고 ‘눈사태 위험’ 출입 통제 표지판 앞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다.
이어 방문한 젠코지(선광사)는 민중 불교 신앙의 중심지로, 에도시대 “한 번은 꼭 참배해야 할 곳”으로 꼽힌 전국적 순례지다. 이날도 종일 비가 내리는 날씨인데도 참배객과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후지산 둘레길에서 만난 시라이토 폭포.
고양신문 여행학교 아시아역사문화 탐방객들이 후지산을 배경으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탐방객들이 후지산 둘레길을 걷고 있다.

일본인의 정신을 품은 후지산
여정의 마지막은 일본의 상징인 후지산의 둘레길이었다. 해발 3776m의 후지산은 일본 최고봉이자 영산(靈山)으로 숭배되는 존재다. 2013년 ‘신앙의 대상이자 예술의 원천’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후지산이 자연유산이 아니라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것은 단순한 산이 아니라 종교적 신앙의 대상이자 일본 문화 예술의 상징, 순례지라는 문화적 가치가 인정되었기 때문이다.
고대인들은 분화를 두려워해 멀리서 후지산을 숭배했지만, 10~12세기 헤이안 후기 이후 직접 산을 오르는 수행 문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에도시대에는 ‘후지코’ 신앙이 확산되며 순례가 대중화됐다.
이번에 걸은 둘레길은 숲과 초원, 마을과 호수를 잇는 완만한 코스였다. 비가 그친 뒤 맑게 갠 하늘 아래, 사방 어디서나 후지산이 구름 한 점 없이 말끔한 모습을 드러냈다.
후지산 트레킹의 백미는 시라이토 폭포였다. 수십 가닥의 물줄기가 비단실처럼 흘러내리는 이 폭포는 후지산의 눈과 비가 오랜 시간 지층을 통과하며 걸러진 용천수로, 맑고 투명한 물빛을 자랑한다.
이후 시즈오카 이즈반도의 호텔에서 후지산을 바라보면서 즐긴 온천욕은 여행의 또 다른 하이라이트였다. 화산대 위에 자리한 일본은 풍부한 온천 자원을 바탕으로 ‘목욕을 통한 치유’라는 독특한 문화를 발전시켜 왔다.
고양시민 김재순씨는 “이번 여행은 단순한 관광을 넘어 자연과 인문학, 예술이 어우러진 특별한 시간이었다. 오랜 세월 사람들의 발자취가 켜켜이 쌓인 길 위에서 역사와 문화를 되새기고, 웅장한 자연 속에서 삶의 의미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일산 마두동에 사는 박황희 고려대 한문학과 겸임교수는 “여행 내내 일본 통일을 이끈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살았던 시대를 떠올렸다”며 “세 인물이 ‘울지 않는 새’를 대하는 방식처럼 서로 다른 선택의 철학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깊은 화두를 던진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