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처럼 걸어온 쌀가공 외길 60년 "금탑은 하늘의 응답"
고양시 기업인 최초 금탄산업훈장 수훈 이능구 칠갑농산 회장 인터뷰
“배고픈 사람 없게 하려는 생각뿐
살면서 쉬운 길은 가지 않았다
진실하면 결국 소비자가 나를 구한다”
[고양신문] 19일, 이능구 칠갑농산 회장이 국가 산업 발전에 기여한 기업인에게 수여하는 최고 영예인 금탑산업훈장을 수훈했다. 1990년 석탑산업훈장을 받은 지 36년 만에 산업훈장의 정점에 올라선 것이다.
고양시 기업인으로서는 최초의 금탑 수훈인 이번 영예는 반세기 넘게 ‘쌀가공’이라는 한길만 우직하게 걸어온 거목의 집념에 국가가 보내는 최고의 헌사다.
산업훈장 중 최고 등급인 금탑은 은탑 수훈 후에도 최소 7년의 엄격한 검증을 거쳐야 하며, 단순 실적을 넘어 국가 산업 전반에 미친 공헌도를 따지는 까다로운 훈격이다.
대한민국 쌀 가공산업의 1세대 개척자인 이 회장은 1990년 국내 최초로 식품의 유통기한을 획기적으로 늘린 ‘주정침지법’을 개발해 무상으로 공개하며 국민 식품안전 증진에 기여했다. 나아가 전통식품을 전 세계 30여 개국에 수출하는 K-푸드 세계화의 가교를 놓은 그의 삶은 그 자체로 대한민국 산업사의 위대한 이정표다.
5월의 햇살이 가득했던 장항동 본사에서 훈장보다 빛나는 이능구 회장의 인생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산업계 최고 영예인 금탑 수훈의 감회가 궁금하다.
사실 이번에는 자식들에게 "검찰 수사 안 받으면 다행이니 상 욕심내지 마라"고 타박하며 말렸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한 업종을 60년 넘게 사명감 하나로 버텨온 곰 같은 미련함을 국가가 인정한 것 같다.
36년 전 석탑훈장이 정부 정책에 협조한 공로였다면, 이번 금탑은 내 인생의 인내와 연륜이 복합적으로 인정받은 것이라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기쁘다.
무엇보다 나보다 더 기뻐하는 가족들의 얼굴을 보니 비로소 내 60년 세월이 헛되지 않았음을 실감한다. 가족이 다 함께 웃을 수 있는 이 순간이 내게는 가장 큰 훈장이자 행복이다.
또한 주변에서 "안 주려야 안 줄 수 없는 사람이 나뿐이라더라"는 농담 섞인 축하를 들으니, 이제야 하늘이 내 고생을 제대로 알고 보상해주는구나 싶다.
▍자전거에 떡을 싣고 한강대교를 건너던 청년 시절부터 ‘쉬운 길’을 멀리하고 쌀 가공이라는 ‘험한 길’만 고집한 이유는.
나는 서울 목동에 살면서도 바로 앞 아파트 모델하우스 한 번 안 가본 '미련한 곰'이다.
남들 투기로 돈 벌 때 나는 오직 배고픈 사람이 없도록 할 궁리만 했다. 1800만 석의 재고미를 가공식품으로 전환해 농업을 지탱한 것은 돈을 벌기 위함이 아니라 농민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또한 쉽게 번 돈은 자식에게 독이 된다는 걸 수없이 봤기 때문에 나는 "돈보다 사명감을 물려주겠다"고 자식들을 설득해 이 길로 끌어들였다. 물론 공부 많이 한 자식들을 굳이 이 험한 길로 끌어들인 건, 평생 고생해 일군 이 가업의 가치가 대기업에 넘기거나 남 주기엔 너무나 아까웠기 때문이다.
내가 만약 허영심에 투기나 했다면 지금 자식들에게 개망신당하고 있었을 거다.
늘 배고픈 사람이 없도록 곰처럼 한 길만 판 덕에 오늘날의 칠갑이 있고, 훈장도 있는 것이다.
▍50대 초, 뇌경색 마비를 지팡이 하나로 다시 일어선 이야기는 전설적이다. 이 집념이 현재의 경영 철학으로 어떻게 이어졌나.
병원에서는 나에게 6개월도 못 간다고 했다.
왼쪽 마비가 오고 말문이 막혔을 때, 주변에선 "이능구는 끝났다"고 말했다. 하지만 자식들에게 짐이 되기 싫어 아픈 사실을 숨기고 매일 아침 지팡이를 짚고 나섰다.
처음엔 10m도 못 가서 주저앉았지만, 다음 날은 11m, 그다음 날은 15m를 걸었다.
그렇게 한 달 만에 도봉산 중턱까지 기어올랐다. 지금도 골프장에서 카트를 안 타고 걷는 건 그때의 지독한 인내를 잊지 않기 위해서다. 그 지독한 인내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나는 지금도 현장에서 제품 하나만 잘못돼도 야단을 친다. 식품은 생명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건강을 위협하는 건 사업이 아니라 범죄다. 그래서 나는 500여 가지 레시피를 지금도 직접 꿰고, 현장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확인하며 원료 배합 하나까지 챙긴다. 최근 큰 비용을 들여 면 자동화 라인을 구축한 것도 결국 '사람이 먹는 것은 타협할 수 없다'는 고집 때문이다. 진실하게 도전하면 결국 소비자가 우리를 구해준다는 믿음, 그것이 내 60년 장사의 유일한 전략이다.
▍500여 가지 레시피 중 가장 자부심을 느끼는 제품을 하나 꼽는다면.
여름에는 메밀국수, 겨울에는 떡국 떡을 꼽고 싶다.
특히 떡 제품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음식을 넘어 우리 농촌의 쌀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내 평생의 숙원이 담긴 결정체다. 쌀은 밀가루보다 유통기한 확보가 훨씬 어렵지만, 이를 상품화해서 전 세계 식탁에 올렸다는 데 큰 자부심을 느낀다.
우리 제품을 써본 소비자들이 결국 "맛의 깊이가 완전히 다르다"며 먼저 가치를 알아주실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 원료와 공정에서 타협하지 않은 고집스러운 품질이 결국 농민과 소비자를 모두 살리는 길이라는 확신이 든다. 우리 쌀 가공산업의 토대를 닦았다는 자부심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은퇴 후 여유로운 삶을 즐기실 법도 한데, 여전히 현장에서 호령하시는 이유가 궁금하다.
하하, 그건 내 욕심이 아니라 팔자인 것 같다. 최근엔 도면도 없는 회사 앞 건물을 리모델링하느라 직접 현장을 지휘한다.
이번 리모델링을 통해 우리 직원들의 주차 전쟁을 해결해 줄 수 있다는 벅찬 마음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주변에선 내가 은퇴해서 좀 쉬길 바라겠지만, 내가 현장에 기둥처럼 서 있어야 칠갑이라는 집이 튼튼하지 않겠나.
하지만 이제는 아들과 딸이 경영 전면에서 제몫을 다해주고 있으니, 칠갑이라는 든든한 기둥을 잘 지켜나가길 바라는 마음뿐이다.
금탑훈장을 받았으니 난 이제 국가가 공인한 '공식 곰'이 된 셈이다. 내 마지막 꿈은 칠갑농산이 대를 이어 정직한 맛을 지키는 것이다. 시련이 나를 단단하게 했고, 그 진실함 끝에 결국 소비자가 있었다. 그거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