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지는 책에 두번째 생명을, 노르웨이 지속가능한 책방
[북유럽특파원 생생통신] 무료 기부와 자원봉사로 이어가는 재활용 책방 중고도서 수거하고 엄격하게 분류, 가치있는 자원으로 재유통 낡은 공중전화 부스는 무료 책나눔터, 작은 도서관으로 변신
[고양신문] 7월 중순 노르웨이 오슬로 인근의 낮 기온이 33도까지 오르고 밤엔 열대야에 시달리고 있다. 높은 기온과 건조한 날씨는 산불, 화재 등 자연 재해로 이어지며, 환경 보호와 자원 재활용을 통한 지속가능한 삶에 대한 화두를 던지고 있다.
오슬로(Oslo) 인근 오스(Ås) 지자체가 운영하는 환경보호센터(Miljøhus)는 가정에서 발생하는 유해물질, 배터리, 소형가전 등 전자 폐기물, 도자기, 유리 등 폐기물 수거함을 운영하고 있다. 수거함 한 곳에 붙어있는 노르웨이 국민화가 뭉크의 '절규' 작품을 패러디한 스티커가 환경오염 문제의 심각성과 절심함을 실감나게 한다.
또한 디지털 기기의 보급과 전자책의 증가로 종이책 소비가 줄고, 수많은 종이책과 CD 음성책이 쉽게 버려지며 또 다른 환경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 역시 매년 수만 톤의 도서가 폐기되는 가운데, 북유럽의 노르웨이에서 선보인 '종이책 순환 모델'이 주목받고 있다.
그 중심에는 노르웨이 최대 자원 순환 네트워크 중 하나인 ‘NLM 옌브루크(NLM Gjenbruk)’ 자원 재활용센터가 있다. 이들의 재활용 사례는 단순한 중고 거래를 넘어, 버려지는 책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며 친환경 자원 순환의 새로운 모델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오슬로 남부 대학도시 오스(Ås)에 위치한 ‘NLM 옌브루크(NLM Gjenbruk)’ 자원재활용센터는 생활용품, 예술품, 의류, 가구, 장난감, 도서 등 다양한 재활용 물품을 기부받아 판매하는 재활용마켓을 운영한다.
시민들이 재활용 센터에 기부하러 가져온 물품 중 상태가 좋은 책과 장난감, 가전제품을 선별해 재판매하거나 업사이클링하다보니 저가에 좋은 제품을 찾아온 알뜰족들이 줄을 잇는다.
특히 도서 코너는 중고 도서를 수거하고 엄격하게 분류해 가치 있는 자원으로 재유통해 버려질 뻔한 종이책들을 지역 주민들에게 연결하는 거대한 문화 플랫폼 역할을 하고 있다.
NLM 옌브루크 중고도서 운영 관리자 데이비드 스미스(David M Smith, 86세)씨를 만나 중고 서적의 재순환 운영 방식을 들어봤다.
-도서 코너 관리자로 얼마나 오래 근무하셨고, 이 역할을 맡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저는 독서를 좋아해서 몇 년 동안 이곳에서 책을 구매해 왔어요. 몇 년 전 도서 담당자가 병가를 내서 책이 쌓였고, 제가 책들을 분류하고 판매대에 진열하는 일을 맡게 됐어요. 누군가는 이 일을 맡아야 했고, 제가 이 일을 맡기로 한 것은 어려운 결정이 아니었어요."
-재활용 중고 도서 관리는 어떻게 운영되나요.
"도서 코너는 큰 수익을 내는 곳은 아니지만, 많은 고객들이 좋은 책을 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저희를 믿고 찾아주세요. 저희의 목표는 고객 만족이며, 고객들은 항상 정기적으로 방문해 다양한 책 중에서 마음에 드는 책을 고를 수 있도록 돕는 거예요."
-매일 수많은 책이 들어오는데, 판매할 책과 재활용 또는 폐기할 책을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저는 열렬한 독자로서 제가 직접 구매할 의향이 있는지를 기준으로 책을 고릅니다. 모든 면에서 품질이 떨어지고, 경험상 판매될 가능성이 없는 책은 제외해요. 여기에는 특정 분야에 특화된 책들, 예를 들어 관심 있는 사람이 매장에 와서 그 책을 볼 확률이 매우 낮은 책들은 제외됩니다.
50년 전에 인기 있었던 유명 작가의 오래된 시리즈 책들은 요즘에는 팔리지 않아요. 가죽 양장본 책조차도 마찬가지예요. 서가 공간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좋은 책이라도 때로는 냉정하게 선별해야 해요. 요리책이 그 예입니다. 유명 셰프들의 요리 이야기는 많지만, 사람들이 레시피를 찾을 때 책 대신 인터넷을 사용하기 때문에 이런 책들도 판매하지 않아요.
하지만 저희는 대부분의 책을 매우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고 있으며, 고객들이 좋은 책을 읽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도록 한 번에 5권이나 10권씩 구매하도록 권장하고 있어요."
- 보존 가치가 높은 희귀하거나 고서를 발견하면 특별한 방법으로 처리하시나요.
"저희는 자원이 제한적이어서 복원을 시도하지는 않아요. 복원을 할 수 있는 전문가들을 알고는 있지만, 아직까지 그런 책을 본 적은 없어요. 전문가들이 그런 책을 기증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 오랫동안 팔리지 않은 책은 어떻게 처리하거나 재활용하시나요.
"다른 판매 불가 도서와 함께 매주 폐기 처리해요."
- 이 센터에서 중고 서적을 구매하는 방문객들이 얻는 가장 큰 가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많은 고객들이 저렴한 가격과 독서의 즐거움 때문에 다시 찾아와 책을 구매해요. 특정 고객들이 즐겨 찾는 주제의 책은 따로 보관해 두기도 해요. 지역 대학생들은 저렴한 교재를 구매하고, 이민자들은 노르웨이어 학습을 위해 책을 구입해요.
또한, 작가와 함께 여행하며 배우고, 경험하고, 즐기고 싶어하는 책 애호가들을 위한 책도 제공해요. 사람들은 흥미롭고 재미있는 책을 찾기 위해 책꽂이를 샅샅이 뒤지며 시간을 보내고, 마침내 보물을 발견하게 됩니다. (웃음)"
한편 중고도서 10권의 가격이 50크로네(한화 약 8000원)로 일반 새책 한 권 값보다 저렴해 인기가 높다. 책 한 권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나무가 베어지고, 다량의 물과 화학물질이 소비되는 암울한 현실에서 NLM 옌브루크의 재활용 도서 순환 프로그램이 작은 희망이 되고있다.
한편 오슬로 시내를 걷다보면, 붉은색의 공중전화 부스를 쉽게 만날 수 있다. 무선통신 시대에 공중전화부스가 무슨 용도로 남아 있을까? 전화 부스 외부에는 노르웨이어로 'Ta en bok, Gi en bok (Take a book , Give a book)'라는 문구와 함께 책읽는 사람의 사진이 붙어있다.
유선 전화부스로 역할을 다한 전화부스가 시대의 변화와 함께, 읽고 싶은 책은 가져가고(Take a book), 읽지 않는 책은 기부(Give a book)하는 무인 책방으로 변모했다.
함께 더불어 사는 지구촌을 꿈꾸며, 한 그루의 나무를 심는 마음으로 종이책을 함께 나누어 읽어보면 어떨까? 다 읽은 책들을 개인이 소유하는 대신 다양한 방식으로 지역 사회에서 공유하는 노르웨이의 '재사용(Gjenbruk, 옌브르크)' 책 재활용 문화가 버려지는 책들에게 두 번째 생명을 불어넣길 기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