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볼수록 더 빠져드는 '장흥의 여름 하루'

[정미경 기자의 주말, 쉼표] (6)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양주시립민복진미술관, 장흥조각공원 가족과 자연이 만나는 장욱진 그림 차가운 돌로 따뜻함 빚어낸 민복진 양주조각공원 석현천 또다른 매력

2026-07-16     정미경 기자
초록의 개명산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장욱진미술관 전경.
장욱진미술관 상설전 까치를 닮은 화가 전시풍경.

[고양신문]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됐다. 휴가철이 다가오지만 멀리 떠나는 여행이 부담스럽다면 가까운 곳에서 여유를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고양시에서 자동차로 30여 분이면 닿는 양주시 장흥에는 자연과 예술이 어우러진 특별한 공간이 있다. 산과 계곡을 품은 미술관, 조각 작품이 놓인 공원, 시원한 물소리가 흐르는 계곡이 한데 모여 있는 곳이다. 작품을 감상하고, 숲길을 걷고, 계곡물에 발을 담그면 일상의 속도는 느려진다. 주말에 찾아간 장흥은 슬로우 시티로 들어선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자연 속에 안긴 하얀 미술관,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관장 이계영)
장흥 여행의 첫 목적지는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이다. 초록 숲을 배경으로 하얀 건물이 서 있다. 하얀 미술관 앞으로는 석현천이 흐르고 뒤편으로는 개명산이 펼쳐진다. 자연 속에 원래부터 존재했던 공간처럼 건물은 주변 풍경과 잘 어우러진다.

2014년에 문을 연 미술관은 한국 근·현대미술의 거장 장욱진(1917~1990) 화백의 예술세계와 정신을 기리기 위해 건립됐다. 장 화백은 일본 유학을 통해 서양화를 배운 한국 서양화 2세대 화가다. 열 살 때 그린 까치 그림이 일본 소학생 미술전에서 1등을 차지하며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재능을 인정받았다.

그는 평생 ‘심플’을 추구했다. 새, 나무, 집, 아이, 가족처럼 일상에서 만나는 평범한 소재를 간결한 선과 형태로 표현했다. 단순해 보이는 화면에는 오랜 관찰과 깊은 사색이 담겨 있다. 그의 작품은 화려하지 않지만 오래 바라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미술관 건물도 작가의 작품세계와 닮아 있다. 건물은 그의 대표작 ‘호작도’를 모티브로 최성희와 로랑 페레이라 건축가 부부가 설계했다. 하늘에서 바라보면 호랑이가 걸어가는 듯한 형태를 지닌 독특한 구조다. 자연 지형을 살린 건축물과 커다란 창을 통해 들어오는 숲의 풍경은 전시의 일부가 된다. 이곳은 개관 첫해인 2014년 ‘김수근 건축상’을 받았으며, 영국 BBC가 선정한 ‘위대한 8대 신설 미술관’에도 이름을 올렸다.

기획전에서 선보이고 있는 장욱진 화백의 먹그림.
까치를 닮은 화가 상설전을 감상중인 관람객들.

장욱진의 그림이 글자가 되다
현재 장욱진미술관에서는 기획전 <보이는 선, 보이지 않는 결>과 상설전 <까치를 닮은 화가>가 열리고 있다. 기획전은 장욱진 화백의 작품을 현대적인 디자인의 관점에서 해석한 전시다. 그래픽디자인 듀오 ‘슬기와 민’, 섬유 설치작가 오화진이 참여해 장 화백의 그림을 그들의 언어로 풀어냈다.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은 장 화백의 그림 속 소재를 글자로 변환한 ‘장욱진 레귤러’ 서체다. 새와 나무, 물고기 등 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형태들이 한글 자음과 모음으로 다시 태어났다. 작가들은 작품 속 이미지를 글자로 바꾸고 문장으로 구성했다.

전시장 벽면에는 장욱진의 말이 새겨져 있다. ‘겸손보다는 교만이 좋고, 격식보다는 소탈이 좋다.’ 김명훈 학예사는 “역설적으로 보이는 이 문장은 꾸밈과 겉치레를 싫어했던 장 화백의 예술관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위선보다 자신의 내면을 중시했던 작가의 태도가 담겨 있다는 의미다.

한 관람자가 장욱진미술관에서 기획전을 감상하고 있다 .
.어린이들이 장욱진 그림 퍼즐을 맞추고 있다.

까치가 바라본 세상, 장욱진이 꿈꾼 풍경
상설전 <까치를 닮은 화가>는 장욱진 화백을 깊게 이해할 수 있는 공간이다. 그의 작품 속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까치’를 주제로 하고 있다. 장 화백에게 까치는 자신을 상징하는 존재다. 그는 생전에 스스로를 소개할 때 “그림을 그립니다”라고 하기보다 “까치 그림을 그립니다”라고 말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어린 시절 까치 그림으로 상을 받은 경험이 작품세계의 중요한 출발점이 된 듯 하다.

그림 속의 까치는 대부분 높은 나무나 지붕 위에 앉아 세상을 내려다본다. 그 아래에는 집과 사람, 아이와 동물이 함께 어우러진 평화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각각의 존재들은 서로 조화를 이룬다.

작품은 단순해 보이지만 오랫동안 바라보아야 한다. 덜어내서 심플해졌지만, 집중해서 깊어졌다. 그림 속의 짧은 선, 작은 형태에도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서사가 담겨 있다. 그가 바라본 세상은 크고 화려한 것이 아니다. 일상의 작은 존재 하나하나에 관심을 기울이는, 편견 없이 바라보는 따뜻한 세계다. 

민복진미술관의 상설전시장 풍경.
가족 사랑 모자상을 주제로 한 민복진 조각가의 작품들.
민복진미술관 상설전 '사이의 형태'. 

사랑을 조각한 예술가, 양주시립민복진미술관(관장 이계영)
장욱진미술관을 나와 길 건너편으로 이동하면 또 하나의 예술 공간, 양주시립민복진미술관이 있다. 2022년에 개관한 이곳은 한국 현대조각을 대표하는 조각가 민복진(1927~2016)의 작품세계를 소개하는 공간이다. 장욱진 화백이 그림으로 ‘가족과 자연’을 표현했다면, 민복진 조각가는 조각으로 ‘가족과 사랑’을 풀어냈다. 

민복진은 평생 인간에 대한 따뜻함을 작품에 담아냈다. 그의 조각에는 아이, 자매, 어머니 등 서로 기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상설전 <사이의 형태>는 민 작가의 대표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재료는 차가운 돌이지만 그 형태는 따뜻한 관계를 표현하고 있다. 전시에서는 조각이 완성되는 과정도 소개된다. 흙으로 형태를 만들고, 주조 과정을 거쳐 작품이 탄생하기까지의 여정이다. 21일부터는 기획전 <청년 민복진>이 예정돼 있다.

 

장흥조각공원 풍경. 
장욱진미술관 앞 석현천에서 아이들이 물놀이를 하고 있다

예술 산책 뒤 만나는 시원한 쉼표, 장흥조각공원과 석현천
미술관 관람을 마쳤다면 장흥조각공원으로 걸음을 옮겨보자. 드넓은 공원 곳곳에 여러 조형물이 자리하고 있다. 어린왕자, 돈키호테, 양철나무꾼 등 친근한 작품들은 관람객에게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장욱진미술관 속에 있는 카페 ‘머묾’에 앉아 있으면 창밖의 초록 풍경과 함께 한여름의 시간이 흐른다. 무엇보다도 여름철 장흥의 가장 큰 매력은 장욱진미술관과 조각공원 사이를 흐르는 석현천이다. 계곡에서는 아이들이 물장구를 치고, 어른들은 나무 그늘 아래 자리를 잡고 휴식을 즐기고 있다. 가까이에는 가나아트파크, 안상철미술관, 송암천문대 등 다양한 문화 공간도 자리하고 있다.  

정미경 기자 cmktop21@mygo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