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대 맹그로브 숲에서 공존의 지혜를 배우다
[이명혜 기자의 에코로그] 고양 장항습지의 7월 선버들과 말똥게 치열한 공생
[고양신문] 초복이 지난 7월 중순의 열기는 잔인할 정도로 뜨겁다. 한낮의 폭염이 도시를 달구면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 콘크리트 빌딩 숲으로 숨어들고, 서둘러 에어컨을 켜며 인공의 서늘함 속에 몸을 맡긴다. 숨이 턱턱 막히는 바깥세상을 차단한 채, 도시는 잠시멈춤 버튼을 누른 것처럼 고요해진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거대한 에어컨 실외기들이 뿜어내는 열기 너머, 우리 고양시의 앞마당인 장항습지는 전혀 다른 세상이 된다. 모두가 지쳐 쓰러진 이 무더위 속에서, 역설적이게도 장항습지는 1년 중 가장 뜨겁고 역동적인 생명의 에너지를 폭발시키고 있다. 푹푹 찌는 고온다습한 공기야말로 이 습지의 진짜 주인들이 기다려온 완벽한 무대이기 때문이다.
초록이 짙다 못해 검푸른 빛으로 물든 선버들 숲, 그 아래 갯벌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수많은 발걸음, 전 세계가 주목하는 장항습지의 기적 같은 여름 드라마는, 클라이막스를 향해 숨가쁘게 달려가고 있다.
열대 지방의 맹그로브 숲은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곳에서 게와 나무가 공생을 이루는 생태계로 유명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온대기후인 대한민국 고양시 장항습지에서 이와 똑같은 생태 메커니즘이 작용하고 있다. 바로 선버들과 말똥게의 상리공생이다.
선버들은 말똥게에게 천적의 눈을 피해 숨어들 공간을 마련해주고, 다량의 나뭇잎을 떨어뜨려 식량을 제공한다. 말똥게는 떨어진 선버들의 낙엽을 갉아먹어 스스로를 살찌우고, 소화시킨 후 배출한 배설물은 선버들에게 양분을 제공한다. 갯벌에 깊게 파고 들어간 서식굴은 선버들의 뿌리가 숨을 쉴 수 있도록 숨길을 열어준다. 이것이 물에 잠겨 축축한 습지에서 선버들이라는 버드나무가 살아갈 수 있는 비결이다. 얼마나 기막힌 파트너십인가!
이러한 메커니즘은 독특한 ‘온대 맹그로브생태계’로 인정받아 장항습지가 람사르습지로 등록되는 평가요소 중 하나로 작용했다.
여름 장마로 한강 물이 불어나고 기온이 치솟는 이 시기야말로 말똥게가 물을 피해 선버들 나무 위로 줄지어 오르는 때이기도 하다. 집게다리를 치켜들고 여덟 개의 다리로 나무를 타고 오르는 모습은 진기하기까지 하다. 끈적하고 지치는 여름의 날씨가 이들에게는 서로의 존재를 가장 필요로 하는 공생의 정점이 된다. 이 여정은 다가올 8월 백중사리 무렵, 말똥게 무리가 강가로 나아가 배딱지를 열고 유생을 털어내는 장관으로 이어진다.
이 거대하고 경이로운 '온대 맹그로브'의 비밀을 직접 엿보고 싶지만, 보존을 위해 출입이 엄격히 제한된 습지 깊숙한 곳까지 다가가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람사르고양 장항습지생태관에 들어서면, 선버들과 말똥게가 맺고 있는 연대의 현장을 축소해 옮겨놓은 ‘메조코즘(Mesocosm, 모사생태계)’이 우리를 맞이하기 때문이다. 유리벽 너머로 재현된 이 작은 공간 안에서도, 게는 부지런히 흙을 뒤집어 나무뿌리에 숨통을 틔워주고 선버들은 기꺼이 자신의 잎을 내어주는 완벽한 순환을 보여준다.
선버들과 말똥게는 나무와 십각류(게)라는 서로 다른 종이지만 물이 찼다 빠졌다를 반복하는 살기 힘든 환경 속에서 ‘네가 살아야 내가 산다’는 위대한 공존의 법칙을 증명해 보인다.
기후위기와 경기 침체로 모두가 지치고 힘든 여름을 통과하고 있는 지금, 우리 고양시 지역 사회 역시 서로가 서로의 숨통을 열어주고 그늘이 되어주는 '상리공생'의 지혜가 필요한 때가 아닐까. 이번 주말에는 에어컨 바람을 잠시 뒤로하고, 우리 곁의 이 위대한 파트너십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러 생태관으로 발걸음을 옮겨보는 건 어떨까. 생태관은 사전예약을 해야 방문이 가능하며, 해설사가 동행하여 친절하고 깊이있게 안내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