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고양이와 함께 한 15년, 혼자 키운 게 아니었네요
나경호의 BOOK회귀선 (15) 최서영(88년생, 덕이동) 15년간 고양시 계약직 공무원으로 고용불안속 캐릭터, 브랜딩 도맡아 "많은 사람들이 함께 버텨줘 가능" 네번째 면접 탈락후 다음 계절 준비 문선희 작가의 책 읽으며 "드러나지 않는 사람들 돕고 싶어"
[고양신문] 7월은 이상한 계절이다. 누군가는 휴가를 준비하고, 누군가는 새로운 반년을 시작한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오래 머물렀던 자리를 떠난다. 15년 동안 고양시청에서 일한 최서영 주무관도 이번 여름, 오래 머물렀던 자리를 내려놓게 되었다. 시민들에게는 '고양고양이'를 담당했던 사람으로 기억될지 모르지만, 그에게 지난 15년은 캐릭터 하나를 넘어 도시의 하루와 시민들의 일상을 가까이에서 함께한 시간이었다.
최근 그는 문선희 작가의 책을 자주 읽는다. 고공농성자와 살처분되는 동물, 사회의 가장자리에서 쉽게 지나쳐지는 존재들을 기록한 이야기들. 그 책들은 한 사람의 고통이 결국 우리 모두의 삶과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조용히 일깨워 준다. 마지막 출근 날, 동료들은 긴 박수와 따뜻한 문자로 그를 배웅했다. 그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아, 나는 그래도 잘 살아왔구나." 두 아이의 엄마이자 책을 사랑하는 독자. 그리고 이제는 심리상담과 사회복지를 공부하며 또 다른 사람들을 만나려는 한 사람. 이번 북회귀선은 떠나는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다음 계절을 준비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려 한다.
-15년 동안 수많은 일을 하셨지만, 지금 돌아보면 '아, 내가 이 일을 참 좋아했구나' 싶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15년이라는 시간 동안의 모든 순간이 그랬던 것 같습니다. 정말 하나도 빼놓지 않고요. 성과가 좋았던 날, 가장 바빴던 날, 가장 힘들었던 날도 모두 제가 이 일을 좋아했던 순간이었습니다. 아직도 무엇을 보든 브랜딩부터 기획합니다. '이걸 어떻게 사람들에게 전하면 좋을까?' 길을 걷다가도, 책을 읽다가도, 릴스를 보다가도 아이디어가 먼저 떠오릅니다. 민선 9기 출범이라는 가장 업무가 많을 시기에 시청을 떠나게 되어 솔직히 아쉬움이 큽니다. 하지만 그 아쉬움마저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부담이 될까 봐, 지금은 되도록 멀리서 조용히 응원하려고 합니다."
-'고양고양이'는 이제 고양시를 대표하는 캐릭터가 되었습니다. 오랫동안 함께한 입장에서, 당신에게 고양고양이는 어떤 존재였나요?
"감히 표현하자면 '내 새끼'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주변에서는 저를 '고양고양이 엄마'라고 부릅니다. 고양고양이가 처음 나왔을 때는 낯설어하시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시민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조금씩 도시를 대표하는 브랜드가 되어 갔습니다. 캐릭터는 시민들이 키워주는 것이라는 사실도 그때 알았습니다. 고양고양이를 깊고 오래 사랑해주신 덕분에 저도 15년 동안 시민들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웃고, 고민하고, 소통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게 고양고양이는 제 20대, 30대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입니다. 바라건대, 언제까지고 그 존재가 청춘이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 출근을 준비하면서 가장 많이 떠올렸던 사람은 누구였나요? 그리고 그분들에게 지금 가장 전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함께 일했던 동료들입니다. 그분들에게 가장 전하고 싶은 마음은 ‘감사함’입니다. 특히 저처럼 기간제, 시간선택제, 전문임기제로 일했던 동료들이 많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15년 동안 임기제 공무원으로 일했습니다. 같은 자리에서 오래 일했지만 계약이 끝날 때마다 다시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내년 계획을 세우면서도 내년에 내 자리가 있을지 알 수 없습니다.
불안함이 커져도 일터에서 그 감정들을 드러내서는 안 되고, 가정에서도 드러내는 게 어려워 속앓이 한 순간이 정말 많습니다. 아마 모든 계약직들이 겪는 문제일 겁니다. 또 고양시에는 저와 같은 계약직과 공무직 동료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좋은 선례가 되고 싶다는 마음도 컸습니다. 이번이 네 번째 면접이었고, 아쉽게도 다시 그 자리에 서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출근 날 동료들이 긴 박수와 따뜻한 문자로 저를 배웅해 주셨습니다. 그 순간 감사함이 더 크게 남았습니다. 혼자 버틴 줄 알았는데, 돌아보니 참 많은 사람들이 제 곁에서 함께 버텨 주고 있었습니다."
-요즘 문선희 작가의 책을 자주 읽으신다고 들었습니다. 그 책 속에서 지금의 나를 발견한 장면이 있었나요?
"문선희 작가님은 사회가 쉽게 지나치는 존재들을 오래 바라보는 기록자입니다. 작가님의 작업물은 대부분 사진이며, 글로 기록하기 위해 우리가 매일 접하는 뉴스기사들을 수집합니다. 『등대들, 조용히 빛나는』은 고공농성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내일을 지키는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들의 농성일자와 농성인들의 숫자, 해고인들의 숫자, 시급액수와 같은 숫자들이 가슴을 먹먹하게 합니다.
저는 퇴사 직후 가장 먼저 한 일이 장애인활동지원사 양성교육을 듣는 일이었습니다. 강사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지금의 장애인활동지원 서비스는 장애인들의 투쟁을 통해 만들어진 제도입니다.' 2006년, 37명의 중증장애인들이 한강대교를 기어 건넜고, 49일간의 노숙농성 끝에 활동지원서비스가 제도화되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등대들, 조용히 빛나는』 속 노동자들의 모습과 장애인들의 모습이 겹쳐 보였습니다. 우리가 너무도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권리와 제도는, 누군가의 치열한 시간 위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오랫동안 계약직으로 일하면서 저는 제 존재를 계속 증명해야 했습니다. 그 증명은 개인의 몫이라고만 여겨왔습니다. 하지만 이번 일을 겪으면서 개인의 노력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있다는 것을 조금씩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1년 전부터는 '온기우체부'에서 익명의 고민편지에 답장을 쓰는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고민을 읽으며 시대의 우울을 가까이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돌아보면 대민홍보도, 편지에 답장을 쓰는 일도 결국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일이었습니다. ‘연결’이라는 이름으로도 수천, 수만 개의 결이 있습니다. 나의 이야기가 결국 우리의 이야기라는 것을 서서히 나의 삶으로 나만의 결로 천천히 읽게 되었습니다.
또 문선희 작가님의 『이름보다 오래된』은 유해동물이라 불리는 고라니를, 또 다른 작품 『묻다』는 구제역으로 살처분된 동물들을 기록한 책입니다. 행정 체계 안에서 미처 바라보지 못했던 생명과 존재들이 있고, 저 역시 외면하며 지내온 사람은 아니었을까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작은 존재라도 오래 바라보는 사람, 내가 족한 사랑이 아닌 그 존재가 느낄 수 있는 사랑을 건네는 사람, 그리고 그 존재의 편에 서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마지막 날 동료들의 응원을 받으며 '잘 살아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셨습니다. 사람은 언제 스스로를 믿게 되는 걸까요?
"꽃다발과 케이크, 선물들 때문에 짐이 너무 많아 동료들이 집까지 함께 와주었습니다. 그렇게 과분한 응원을 받으니 참아왔던 눈물이 터졌고, 마지막 인사를 어떻게 했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이렇게 나를 믿어주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제는 내가 나를 믿어줘도 되지 않을까.'
마지막 임기제 공무원 면접에서 떨어졌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도 제가 답장을 써왔던 편지들이었습니다. 쉬었음 청년, 경력단절 여성, 진로를 고민하는 학생들. 저도 늘 그들과 같은 질문 앞에 서 있었습니다. 마지막 날 동료들이 보내준 응원은 제 인생에 도착한 한 통의 답장 같았습니다. ‘책망하지 말라고. 누구나 인생에 한 번쯤 지나가는 시간이라고. 그 위로에만 머무르지 말고 내가 받은 사랑과 믿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며 살라고.’ 말해주는 답장이었습니다."
-두 아이를 키우며 살아온 시간은 '일하는 나'를 어떻게 바꾸어 놓았나요?
"질문을 듣고 보니 제 삶의 우선순위가 보이는 것 같습니다. 일하는 나가 항상 두 아이를 제치고 앞서는 사람이었습니다. 일을 너무 사랑해 벌어진 일입니다. 반면 아이들은 일이 인생의 전부였던 제게 '천천히 가도 된다'고 말하는 존재였습니다. 퇴사 후, 저는 그냥 놀이터 벤치 앉아 있는 아기엄마1입니다. 나 같은 엄마들이 벤치에 듬성 듬성 앉아 있습니다. 노는 아이들은 엄마들에게 바라는 것이 없습니다. 그냥 멀찌감치 앉아 있으면 족했습니다. 6월은 유난히 바람이 좋았습니다. 선선히 불어 놀이터에서 놀기 좋은 날씨였습니다.
공벌레를 하도 좋아하길래 천원짜리 곤충집 하나를 사 갔습니다. 아이들은 공벌레를 곤충집에 가두고 두 시간을 놀았습니다. 그렇게 채집한 일상이 하루를 가득 채웠습니다. 제 뺨 아래로 흐르는 눈물을 6월의 바람이 닦아주며 '충분하다'고 매일 속삭였습니다. 길에 치이고 눈에 잘 띄지 않는 공벌레처럼, 예전에는 너무 작아서 보이지 않던 일상들이 이제는 제 삶의 전부처럼 순식간에 커졌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이불 하나만 털어도 감사기도가 절로 나옵니다. 돌아보면 제가 한 직장에서 이렇게 오래 일하는 동안 남편이 아이들을 돌봤고, 시어머니가 제 빈자리를 채워 주셨고, 돌봄 선생님들이 아이들의 하루를 함께 책임져 주셨습니다. 혼자 버틴 줄 알았던 시간도 늘 누군가가 함께 채우고 있었습니다. 다시 워킹맘이 되더라도 이 시간을 오래 기억할 것 같습니다."
-이제 새로운 공부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앞으로의 최서영씨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나요?
"많은 분들이 저를 '고양고양이 엄마'로 기억해 주십니다. 20년 가까이 홍보와 캐릭터, 브랜딩 일을 해왔고, 지금도 그 일을 정말 좋아합니다. 또 글 좋아하는 사람, 책 좋아하는 사람, 콘텐츠 만드는 사람으로 기억해 주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드러나야만 되지만 드러나지 않은 이야기들이 세상에 아직 참 많습니다. 고립·은둔 청년의 이야기, 계약직 노동자의 이야기, 장애인의 이야기. 저는 그런 이야기들이 세상에 닿도록 글로, 콘텐츠로, 그리고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일로 돕고 싶습니다. 주변에서는 저를 '서포트를 잘하는 사람'이라고 말해주십니다. 저도 그 말이 참 좋습니다. 가끔 저를 악어새에 비유합니다. 누군가 곁에 있을 때 가장 악어새답습니다. 주인공이 되는 사람보다, 누군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들려줄 수 있도록 곁에서 비추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앞으로는 그런 사람으로 기억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