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돗물, 정말 그냥 마셔도 될까?
조창현의 물따라 가보는 고양 (13) 수돗물 안전성 의심은 오감에 기댄 인류의 DNA탓 '좋은 물'이라는 신뢰 얻으려면 안전성은 물론 심미성까지 갖춰야
[고양신문] 오래 전 장면 하나. 점심시간에 운동장에서 뛰놀던 학생들은 수업종이 울리자 수돗가로 뛰어가 수도꼭지에 입을 대고 물을 마신 후 교실로 달려간다. 지금은 보기 드문 희귀한 이 장면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또 옛날 사람임을 숨길 수 없다.
수돗물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 중의 하나는 ‘수돗물 정말 그냥 마셔도 돼요?’이다. 이 질문의 뜻은 안전하냐, 즉 마셔도 건강에 문제가 없냐는 것이다. 바로 대답하겠다. 마셔도 된다.
먹는 물에 적용되는 수질 기준은 화학물질이나 소독부산물 같은 발암성 물질의 경우 성인이 하루에 2리터씩 70년 동안 마셨을 때 10만 명당 한 명이 발병할 확률을 바탕으로 정해진다. 중금속이나 대장균 같은 비발암성 물질의 경우에도 평생 먹어도 독성 반응이 나타나지 않는 수준(No Observed Adverse Effect Level)의 1/100~1/1000 정도인 평생 일일 섭취 허용량(Tolerable Daily Intake)을 바탕으로 수질기준이 정해지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확실하게 얘기할 수 있다.
이렇게 대답하면 또 이어지는 질문이 있다. ‘정수장에서 보내는 물이야 깨끗하겠지만 수도관이 오래되어서 집에 나오는 물을 믿을 수 있나요?’ 실제로 드물지만 수도꼭지에서 일시적으로 녹물이 나오기도 하고 검은색 입자가 나오는 경우도 있으니 타당하고 당연한 질문이다. 이것도 바로 대답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전하다. 수돗물을 틀었을 때 잠깐 나오는 경우가 있지만 계속 틀어놓으면(이것을 플러싱Flushing이라고 한다) 사라지는 녹물이나 검은 색 입자는 각각 철과 망간이 주성분인데 먹는 물 수질기준 상에도, 건강상 유해영향 무기물질로 분류되는 중금속과 달리 ‘심미적 영향 물질’로 분류되어 있다. 한마디로 불쾌감을 주지만 건강에 영향을 주지는 않는 물질이다.
이렇게 근거를 제시하더라도 대부분의 시민들은 내 말을 믿지 못할 것임을 나는 잘 안다. 이것도 당연하다. 인류는 원시시대부터 맛과 냄새, 색깔, 소리 등으로 사물을 구별하는 오감에 의존하여 생존해왔다. 먹으면 죽는 풀인지 먹어도 되는 풀인지 구분해야 하는 생존의 문제 앞에서 발달된 오감은 우리의 DNA에 내재되어 지금도 판단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물이 빨간색인데, 맛이 이상하고 불쾌한 냄새가 나는데, 필터에 유충이 나오는데 아무리 안전하다고 강조해도 믿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앞서 말한 ‘심미적 영향 물질’이 중요한 것이다. 색, 맛, 냄새가 이상하면 시민들은 수돗물의 수질을 결코 믿지 않는다. 이것을 홍보와 계도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면 수백만 년 동안 쌓아온 인류의 생존 본능을 무시하는 큰 착각이다.
흥미로운 것은, 냄새의 경우를 예로 들자면, 물질마다 사람이 인식할 수 있는 정도인 냄새 역치(Odor Threshold)가 다르다는 것이다. 즉 어떤 물질은 아파트 한 채 (서울은 물론 아니다) 값의 검사장비로만 검출할 수 있는 정도의 미량을 사람이 감지해내기도 하고 또 어떤 물질은 매우 높은 농도에서도 잘 냄새를 못 맡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이 또한 생존 본능으로 해석한다. 인류가 예민한 감각을 가지게 된 물질의 경우에는 먹거리 등이 부패할 때 발생하는 황화수소(H2S)나 메르캅탄처럼 식중독 등을 피하기 위해 발달된 경우도 있고 반면에 흙냄새 또는 빗물 냄새를 내는 지오스민(Geosmin) 처럼 독성이 전혀 없어도 물이 있는 곳을 찾기 위해 감각이 발달한 경우와 바닐라 향처럼 잘 익은 과일이나 영양가 높은 식물을 구별해 내기 위해 낮은 농도를 감지하는 경우도 있다.
수돗물에서는 앞서 말한 이유로 독성이 없더라도 냄새가 나는 물질이 있어서는 안된다. 앞서 말한 지오스민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상수원인 댐이나 하천에 최근 들어 녹조가 자주 발생하는데, 이 녹조의 원인이 바로 조류(Algae)라고 하는 식물 플랑크톤이다. 조류 가운데에는 지오스민 같은 냄새 유발물질을 분비하는 종이 있고 이들이 많이 번성하면 수돗물에서도 흙이나 곰팡이 같은 불쾌한 냄새가 날 수 있다. 물론 지금은 내가 일하고 있는 정수장을 비롯한 많은 정수장에 오존과 활성탄을 비롯한 고도처리 공정이 추가로 도입되어 있어서 이런 냄새물질까지 제거해줄 수가 있다. 하지만 자칫 처리가 다 안 되기라도 하면 많은 수질민원이 발생하기 때문에 수돗물을 만드는 사람들은 상수원수에 냄새가 발생하면 긴장할 수밖에 없다.
수돗물 소비자들은 고가의 수질검사 장비가 없기에 당연히 불쾌감을 유발하는 색, 맛, 냄새로 판단하고 민원을 낼 수밖에 없다. 적극적인 민원은 담당자들의 업무를 가중시키기도 하지만 긍정적인 기능도 한다. 사람마다 맛과 냄새 구별하는 능력이 다른데, 감각이 특출한 민원인들은 수돗물 수질 담당자들이나 다른 시민들이 미처 알아채지 못한 미량의 맛·냄새(맛과 냄새는 연결되어 있고 서로 잘 구별되지 않아 합쳐서 맛·냄새Flavor라고 부르기도 한다)를 구별해내고 이를 담당자들에게 알려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실제로 나는 십여 년 전에 지역별로 수질민원을 자주 내는 고양 시민들을 선발하여 ‘시민 수질 모니터링 위원’으로 위촉하고 활동하게 하기도 했다. 이 분들은 다른 시민들보다 냄새를 감지하는 능력이 높은 경우가 많고 어찌 보면 귀찮을 수도 있는 민원 제기를 기꺼이 할 정도로 적극적인 분들이라는 점에 착안한 것인데, 골칫거리라고 인식되기 쉬운 민원을 뒤집어 오히려 수돗물 관리에 기여하게 한 발상이 훌륭했다고, 부끄럽지만 자평한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정말로 수돗물은 마셔도 되는가. 색, 맛, 냄새의 심미적인 문제가 가끔 발생하긴 하지만 안전하다. 맞으면 맞다 아니면 아니다 딱 잘라 대답해야 하는데 왠지 답변이 구차하다. 이런 구차함에서 벗어나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즉 심미적인 문제까지 해결해주어야 한다. 눈으로 보기에도, 맛과 냄새로도 좋은 물을 공급해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중요한 것이 한 가지 더 있다. 환경오염이 심해지면서 새롭게 발생하는 물질들, 예를 들자면 생수병에서 나온다고 해서 문제가 되는 미세 플라스틱, 자연계에서 잘 분해되지 않는 과불화화합물(프라이팬 코팅이나 방수섬유에 쓰이는 물질들이다) 같은 유해물질을 모니터링하고 제거하는 기술을 확립하는 것은 안전성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에 가장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할 부분이다.
‘수돗물을 마셔도 되나?’는 앞으로도 계속 제기될 질문일 것이다. 이 질문에 더 자신있는 대답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우리 수돗물 만드는 사람들의 임무임은 말할 것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