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범구 칼럼] 개헌을 하려거든
[고양신문] 조정식 국회의장이 지난 7월 28일 취임 후 첫 기자회견에서 “여야 협의로 국회 개헌특위를 구성해 내년에 개헌논의를 본 궤도에 올려놓겠다”고 밝혔다. 주요 개헌 내용으로는 △5·18 민주화운동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 △대통령 계엄선포권 제한 △권력구조 개편 △선거관리 개혁 등이 거론된다.
그런데 기자들과 질문을 주고받던 중 현직 대통령 연임 개헌 가능성에 대해 “결국 주권자인 국민 여론과 국민 선택의 문제”라고 언급해 파장을 일으켰다. 그러나 이 발언은 현행 헌법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헌법 제 128조 2항은 ‘대통령의 임기 연장 또는 중임 변경을 위한 헌법 개정은 그 헌법 개정 제안 당시의 대통령에 대해서는 효력이 없다’라고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야당인 국민의힘은 ‘이재명 연임 개헌론’이라며 반발하고 나섰고, 청와대도 현행 헌법상 현직 대통령의 연임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며 국민들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며 진화에 나서 조정식 의장 발언은 한때의 해프닝으로 지나가는 것 같다.
그런데 이와 별개로 개헌에 대한 요구와 논의는 국회를 중심으로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17대 국회(2004~2008)에서는 의장 직속으로 개헌연구 기구를 두고 권력구조 개편에 대한 검토를 진행했고, 18대 국회(2008~2012)에서도 의장 직속의 ‘헌법연구자문위원회’를 출범시켰다. 19대 국회(2012~2016)에서는 의장 직속 ‘헌법개정자문위원회’를 구성해 4년 중임 분권형 대통령제안을 도출하고, 여야 지도부를 향해 개헌특위 구성을 강력 촉구했다. 20대 국회 개원사에서 정세균 의장은 개헌을 공식화하고 여야 합의로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후반기 문희상 의장은 “촛불혁명의 완결은 개헌”이라며 분권형 개헌 및 선거제도 개혁과의 연계 추진을 강조했다. 21대 국회에서도 의장 산하에 ‘헌법개정 및 정치제도 개선 자문위원회’를 발족하고, 개헌의 상시화를 위한 ‘개헌절차법’ 제정을 추진했다.
그러면 이렇게 오랜 역사를 갖는 헌법 개정 논의는 왜 늘 제자리를 맴돌고 있는 것인가? 그것은 ‘권력구조 개편’에 대한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여야 간 입장이 다른 것은 물론이고, 때로는 여권 내부에서도 계파 간 이해관계에 따라 입장이 하나로 모아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크게는 현행 5년 단임 대통령제를 4년 중임제로 할 것인가 여부와, 대통령 권한을 총리, 또는 의회와 나누는 2원 집정부제를 택할 것인가의 문제다. 유럽 대부분 국가가 채택하고 있는 의원내각제는 아직 우리의 권력구조 개편 논의에는 끼어들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권력구조 개편뿐 아니라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는 국내외적 상황을 현행 헌법이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고 있는데, 이런 것들이 권력구조 문제에 밀려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5·18’의 헌법 전문 수록 문제나 내란 근절 방안 같은 주제 외에도, 날로 심각해지는 기후변화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환경권’, 지방분권의 확대 같은 주제들이 제대로 논의돼야 한다. 특히 북한의 ‘두개 국가론’ 제기 이후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는 남북 관계를 현행 헌법이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타파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 우리 헌법 제3조이다. 그러나 1948년 7월 대한민국 헌법이 만들어진 이래 한 번도 우리가 한반도 전체를 실효적으로 지배해 본 적이 없다. 지난 78년간 법과 현실이 따로 놀고 있었던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과거의 북한 헌법(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 헌법) 3조도 우리와 똑같았다는 것이다.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령토는 조선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 그런데 북한은 최근 이 조항을 다음과 같이 개정했다.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령역은 북쪽으로 중화인민공화국과 로씨야 연방, 남쪽으로 대한민국과 접하고 있는 령토와 그에 기초하여 설정된 령해와 령공을 포함한다.’
헌법 개정 논의가 지난 1987년 이래 변화한 세계와 국내외 정세를 현실에 반영하기 위한 것이라면 권력구조 개편뿐 아니라 남북 관계 등, 보다 본질적인 문제들에 대한 고민이 함께 있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