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빛에 깃든 밤의 주역들

이명혜 기자의 에코로그 (3)심학산 밤 곤충 이야기 무심코 켜둔 불빛 하나를 끌 때 밤의 숲은 비로소 평온 되찾을 것

2026-08-20     이명혜 기자
산호랑나비. 호랑나비와 비슷하게 생겼으나 앞날개의 맨앞부분 무늬가 다르고 뒷날개 끝에 선명한 푸른 반점이 있다.

[고양신문] 열대야로 뜨거운 8월의 밤, 파주 출판도시문화재단 생태위원회 주관의 생태조사활동으로 밤 곤충을 조사하러 나섰다. 오후 7시, 어둠이 내리기 전 심학산 자락에 흰 천을 펼치고 등화(燈火)를 설치했다. ‘오늘은 어떤 곤충을 만날 수 있을까?’ 기대와 설렘을 안고 숲이 온전히 어두워지기를 기다렸다. 
고개를 드니 파랑새 네 마리가 우리 일행의 머리 위를 맴돌고 있었다. 특유의 요란한 울음소리를 내지 않아 처음에는 알아보지 못했지만, 날개의 형태와 검푸른 빛으로 정체를 알아봤다. 숲에서는 애매미, 털매미, 말매미가 요란하게 울어대고 있었지만, 해가 지면서 가을을 알리는 귀뚜라미와 방울벌레가 볼륨을 높이기 시작했다. 근처 잣나무 숲에서 소쩍새와 쏙독새의 소리도 들려온다. 낮과 밤의 주인공이 바뀌는 시간이다. 
사방이 어두워지자 등화에 작은 노린재와 나방 종류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불빛이 닿는 흰 천은 순식간에 밤의 생명들이 모여드는 화려한 무대로 바뀌었다. 야간곤충 조사는 낮 동안 보이지 않던, 숲의 또 다른 주역들을 마주하는 환희의 시간이다.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낮에만 볼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산호랑나비다. 고운 날개 무늬가 조명 아래서 선명하게 빛난다. 뒤이어 숲의 맹수인 장수말벌이 위협적인 날갯짓 소리를 내며 달려와 먹잇감을 찾아 맴돈다. 장수말벌의 등장에 잠시 긴장하기도 했지만, 반가운 곤충들이 등장하자 그 긴장감마저 사라졌다.

야간등화 조사모습

사슴벌레 암컷도 등장했다. 물리면 아프니 조심해야 한다. 앞다리를 들고 당랑권 자세로 위협하는 좀사마귀가 신중한 걸음으로 천 위를 기어간다. 밤의 진짜 주인공인 나방들의 무대는 더욱 다채롭다. 묵직한 날갯짓 소리를 내며 돌진하는 머루박각시를 비롯해, 기하학적인 무늬와 섬세한 색채를 자랑하는 온갖 나방들이 저마다의 미모를 뽐낸다. 초록색 날개가 예쁜 갈색날개노린재와 실처럼 가느다란 실노린재 종류도 자리를 잡았다. 인근 습지에서 날아온 꼬마줄물방개와 잔물물땡땡이가 매끄러운 껍질을 반짝이며 존재감을 드러낸다. 이날 조사에서 확인한 곤충만 100종 가까이 된다. 산과 습지가 연결된 생태계라 생물다양성이 높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밤의 숲은 다채로운 생명들이 저마다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분주한 생명의 터전이다. 이 부지런한 밤의 파수꾼들이 불빛으로 모여드는 모습을 관찰하다 보면 자연스레 한 가지 질문에 도달하게 된다. 이들은 왜 이토록 맹렬하게 빛을 향해 날아오는 것일까. 얼마나 바삐 날아오는지 모자에서, 등에서 탁탁 부딪히는 소리가 날 정도다. 
밤곤충들이 불빛으로 모여드는 까닭은 빛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수억 년 동안 몸에 익혀온 생존의 나침반 때문이다. 야행성 곤충들은 멀리 떨어진 달빛이나 별빛을 일정한 각도로 유지하며 방향을 찾아 비행한다. 그런데 인공조명이 등장하면서 곤충의 정교한 항법 시스템이 무력화되는 것이다. 무한히 멀리 있는 자연의 빛과 달리, 가까운 곳에서 비치는 인공의 빛은 곤충의 눈에 들어오는 각도를 계속해서 바꾸게 만들고, 이로 인해 곤충들은 불빛을 중심에 두고 빙글빙글 돌게 된다. 밤이 오면 숲속 식물 사이를 부지런히 오가며 꽃가루를 옮기고, 숲의 순환과 생태계 먹이사슬을 받쳐주어야 할 밤의 파수꾼들이 인간이 밝힌 빛에 이끌려 방향을 잃고 헤매게 되는 것이다.

당랑권 솜씨를 자랑하지만 연약한 몸이 애처로운 좀사마귀

돌아보면 우리에게도 밤이 지금처럼 눈부시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밤이 되면 마을 전체가 은은한 달빛 아래 찰랑거렸고, 아이들과 어른들은 가벼운 차림으로 나와 마을 길을 걷는 '밤마실'을 즐겼다. 평상에 누워 시원한 밤바람을 맞으며 풀벌레 소리에 귀를 기울이던 밤, 밤하늘을 가득 채운 별들을 하나씩 세어보던 그 시절의 어둠은 결코 두렵거나 적막한 대상이 아니었다. 해가 뜨면 깨어나고 해가 지면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는, 자연의 순리에 맞는 삶을 살았던 것이다. 
과도한 ‘빛공해’가 없던 시절의 어둠은 낮 동안 수고한 모든 생명이 쉬어가는, 따뜻하고 아늑한 품이었다. 인간도, 곤충도, 식물도 그 조용한 어둠 속에서 생체리듬을 회복하고 내일을 살아갈 에너지를 얻었다. 
야간곤충 조사는 곤충의 종류를 기록하는 작업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잊고 살았던 밤의 가치를 일깨우고, 인간이 차지해 버린 어둠의 공간을 생명들에게 어떻게 되돌려주어야 할지 고민하게 만드는 생태적 성찰의 과정이다.
진정한 공존은 불필요한 야간조명을 하나씩 끄고, 밤에게 어둠을 돌려주는 일에서 시작된다. 불을 끄고 밤하늘의 어둠을 회복하는 것은 길 잃은 밤곤충들에게 안전한 이정표를 되찾아주는 일이자, 동시에 과도한 빛에 지친 우리 삶에 옛 밤마실의 아늑함과 별빛의 온기를 다시 품게 하는 고마운 일이다. 오늘 밤, 무심코 켜둔 불빛 하나를 끌 때, 밤의 숲은 비로소 깊고 평온한 숨을 쉬기 시작할 것이다.

불빛에 모여든 곤충들.
개머루에 알을 낳는 머루박각시
콩독나방 수컷의 멋진 더듬이. 애벌레 때 콩과 식물을 먹는다.
왕귀뚜라미. 겹눈 위 흰띠 무늬가 눈썹처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