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혜 칼럼> 닫힌 구두 수선 가게 앞에서
[고양신문] 지하철 내려 집으로 돌아가는 골목에 구두 수선 가게가 있다. 지하철역 근처나 대로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진회색의 외형을 가진 구두 수선 가게다. 한 평도 되지 않을 정도로 좁아 손님과 사장님이 나란히 앉으면 꽉 찬 듯 느껴질 정도다. 바쁘게 움직이는 손을 구경하다 보면 어느새 굽이 갈아 끼워진 구두를 받아 든 적이 있다. 그런 구두 수선 가게가 집 근처에도 있다는 건 미처 몰랐다. 가게 앞에 붙여진 쪽지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평소처럼 지하철역 근처 마트에서 장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벽에 국화꽃이 붙어 있었다. 그냥 벽인 줄 알았는데, 구두 수선 가게의 셔터가 내려진 것이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쪽지와 함께 붙어 있는 국화꽃 때문에 알았다. 구두 수선 가게가 있었고, 그곳을 오랫동안 지키던 사장님이 돌아가셨다는 것을 말이다.
며칠 뒤 또 그 길을 지날 때, 가게 옆에 낮은 선반에 허리를 굽히고 편지를 쓰는 사람을 봤다. 선반 위에 얼음이 녹은 듯한 커피 한 잔과 액자 속 고이 담긴 사진도 함께 놓여있었다. 6년을 그 동네에서 사는 동안 문 연 것을 본 기억이 별로 없었던 그 가게는 누군가에게 아끼는 신발의 수명을 늘려주고 골목을 지킨 소중한 이웃이었다는 걸, 벽에 붙은 국화꽃이 말해주는 듯했다.
추모하던 이들은 어떻게 부고를 알았을까. 얼음 녹은 커피 한 잔은 바로 앞 카페에서 주신 것 같은데, 누가 이들에게 오랫동안 골목을 지킨 사장님의 부고를 알렸을까. 그리고 골목의 한 사장님의 부고에 꽃과 편지를 두고 가는 이들은 동네에 얼마나 오래 살며 사장님과의 정을 쌓아온 걸까. 이름 모를 이웃의 부고에 놓인 추모의 물건들을 보며 동네를 아낀 이들의 마음이 그려졌다. 동네에 대한 애정은 동네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에게서 커지기도 하니까. 구두 가게 사장님과 주변의 이웃들은 서로가 동네 애정을 높인 존재들이지 않았을까.
동네에 대한 애정은 동네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야 생긴다. 동네에서 구두를 수선하고, 동네 단골집을 다니며, 동네에서 운동할수록 애정도 커지기 마련이다. 집이 잠만 자는 공간의 의미만 지닌다면 동네를 알아갈 시간도 없으니 말이다. 동네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려면 한 집에서 오래 살 기회가 있어야 한다. 세입자에겐 쉽지 않은 기회다. 계약 기간이 두 달도 채 남지 않을 때까지 집주인의 보증금이나 월세를 올리겠다는 연락이 없어야 현 상태 그대로 계약이 갱신된다. 집세를 올리겠다고 하면 이사 비용을 내서 옮기는 게 형편이 나을지 혹은 집세를 더 내더라도 그대로 사는 게 나을지 고민해야 한다. 2년에 한 번씩 통과의례처럼 지나야 하는 시간이 있는 셈이다.
굳게 닫힌 구두 수선 가게 문에 붙여진 꽃들이 이제는 주거권에 대한 감각을 더욱 넓혀야 한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세입자라도 그 동네에 대한 애정을 가질 수 있도록 오래오래 머물 수 있게 해야 하지 않느냐고. 이웃의 죽음을 추모하고 또 다른 곳으로 이사하는 이웃을 아쉬워할 정도로 이웃과 동네와 연결될 수 있는 기간 동안 큰 부담 없이 살아갈 수 있는 공공임대주택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 집을 살 계획이 없어도 한 동네와 오랜 인연을 맺을 수 있게 할 부동산 정책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