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보다 먼저, 조각이 있었다
유럽 여행에서 만난 미술 이야기 ② 흙을 만지던 소녀-조각가 까미유의 시작
[고양신문] ‘사쿤탈라’의 청동 버전인 ‘맡겨짐’을 뒤로하고 본격적인 전시 공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제 시간을 조금 거슬러 올라갈 차례다. 아직 아무도 그녀의 이름을 알지 못했던 시절, 흙을 만지던 어린 까미유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안으로 들어서자 뜻밖의 풍경이 펼쳐졌다. 까미유의 작품이 이어질 것이라 생각했는데, 낯선 조각가들의 작품이 나를 맞았다. 말을 타고 칼을 높이 든 잔 다르크가 보였고, 그 옆에는 긴 옷을 입은 남자가 한 손에 작은 수술용 칼을 들고 서 있었다. 높이가 3m를 훌쩍 넘는 거대한 석고상이었다. 옆 전시실로 들어서자 크고 작은 테라코타와 청동, 대리석 조각들이 이어졌다. 까미유 클로델을 만나러 왔는데, 왜 다른 조각가들의 작품이 이곳에 있는 것일까. 처음에는 조금 의아했다. 하지만 천천히 둘러보다 보니 이 공간이 품고 있는 또 하나의 이야기가 보이기 시작했다. 노장 쉬르 센은 19세기 프랑스 조각의 한 흐름을 품었던 도시였다. 마리우스 라뮈(Marius Ramus, 1805~1888)와 폴 뒤부아(Paul Dubois, 1829~1905), 알프레드 부셰(Alfred Boucher, 1850~1934) 같은 조각가들이 이곳과 인연을 맺었다. 까미유보다 앞서 이 땅에서 작업했던 사람들이었다. 미술관은 그녀의 작품부터 서둘러 보여주는 대신, 한 젊은 예술가가 등장하기 전 이곳에 어떤 조각의 전통이 자리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한 예술가의 탄생은 어느 날 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가 지나온 장소가 있고, 앞서 길을 걸었던 사람들이 있으며, 때로는 아직 세상이 알아채지 못한 재능을 발견해주는 한 사람이 있다. 까미유에게 가장 먼저 손을 내밀어준 사람, 그가 바로 알프레드 부셰였다.
한쪽에 우뚝 서서 수술용 칼을 들고 있는 '올리에 박사 기념비'가 그의 작품이다. 지금은 까미유 클로델에 비해 우리에게 낯선 이름이지만, 당시 부셰는 살롱에서 여러 차례 수상하며 인정받던 조각가였다. 그러나 이곳에서 그가 특별하게 다가오는 까닭은 화려한 경력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는 어린 까미유에게서 남다른 재능을 알아보았다. 까미유가 노장 쉬르 센에서 살던 시절, 아직 열두세 살에 불과했던 소녀는 주변에서 구한 흙으로 사람의 얼굴과 몸을 만들곤 했다. 정식으로 조각을 배운 적도 없었다. 손가락으로 누르고, 깎고, 다시 붙였다. 아무것도 아니었던 흙덩어리가 그 작은 손을 거치면서 서서히 사람의 형상을 갖추어갔다. 부셰가 그 모습을 보았고, 이 아이에게는 제대로 배울 기회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까미유에게 조각의 기초를 가르쳤고, 부모에게도 전문적인 미술교육을 받게 할 것을 권했다. 남들이 무심히 지나칠 수도 있었던 숨겨진 천재성을 눈여겨보고, 아직 시작조차 어설픈 그녀의 가능성을 믿어준 사람이 알프레드 부셰이다.
1881년, 까미유는 가족과 함께 파리로 이주했다. 그러나 당시 여성에게 예술가의 길은 쉽게 열려 있지 않았다. 프랑스 국립미술학교인 에콜 데 보자르는 여성의 입학을 허용하지 않았다. 특히 인체를 연구하고 흙과 석고, 돌을 다루어야 하는 조각은 오랫동안 남성의 영역으로 여겨졌다. 여성이 그림을 그리고 악기를 연주하는 것은 교양으로 받아들여졌지만, 작품에 자신의 이름을 걸고 예술가로 살아가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까미유는 그 벽 앞에서 좌절하지 않았다. 여성도 공부할 수 있었던 사설 아카데미 콜라로시에서 조각을 배웠고, 다른 젊은 여성들과 작업실을 나누어 썼다. 형태를 만들었다가 허물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넓은 공간과 모델, 재료가 필요한 작업을 여러 사람이 함께 감당했다. 부셰는 정기적으로 그곳을 찾아와 학생들의 작품을 살피고 지도했다. 파리의 작은 작업실 풍경을 잠시 떠올려보았다. 여기저기 쌓인 흙과 석고, 작업대 위에 남겨진 미완성의 얼굴들, 그 사이에서 아직 스무 살도 되지 않은 까미유가 자신이 만든 형상을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때의 그녀에게 흙은 아직 상처를 담는 재료가 아니었다. 무엇이든 만들어볼 수 있는 가능성에 가까웠을 것이다. 손을 움직이는 만큼 새로운 형상이 태어났고, 어제보다 오늘 조금 더 나은 것을 만들 수 있다는 기대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던 1882년, 부셰가 이탈리아로 떠나게 되면서 더 이상 그녀를 계속 지도할 수 없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자리를 대신해 젊은 조각가들을 가르쳐줄 한 사람을 소개했다.
오귀스트 로댕(Auguste Rodin, 1840~1917), 그 이름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췄다. 우리는 그와 까미유 사이에 앞으로 어떤 시간이 펼쳐질지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이야기를 조금 뒤로 미뤄두고 싶었다. 로댕이 등장하기 훨씬 전부터 까미유는 이미 조각가의 길을 걷고 있었다. 누군가의 제자나 연인으로 불리기 전에 스스로 형상을 만들어가던 소녀가 있었고, 세상의 평가가 시작되기 전에 자신이 가야 할 방향을 선택한 젊은 예술가가 있었다. 그녀의 예술은 사랑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었다. 사랑보다 먼저, 조각이 있었다. 부셰의 거대한 조각을 뒤로하고 다음 공간으로 걸음을 옮겼다. 흙을 만지던 소녀의 시간은 그렇게 조금씩 한 예술가의 시간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