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장의 권한 행사와 민주적 책임
[높빛시론] 김범수 자치도시연구소 소장
[고양신문] 최근 조희대 대법원장의 대법관 임명제청을 둘러싸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조 대법원장은 지난 8월 18일 손봉기 대구지방법원 부장판사와 김성수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를 대법관 후보자로 대통령에게 제청했다. 특히 이번 제청은 기존의 대법원장과 대통령 간 대면 협의 및 제청 관례와 달리 서면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대법관 임명은 단순히 한 명의 법관을 임명하는 행정절차가 아니다. 그것은 대한민국의 삼권분립과 법치주의가 작동하는 중요한 민주적 헌법적 절차다. 헌정주의는 권력의 집중을 방지하기 위해 국가권력을 나누고 서로 견제하도록 하는 제도를 발전시켜 왔다. 미국 헌법은 이러한 권력분립의 원리를 제도화한 대표적인 사례다.
대한민국 헌법도 권력분립의 원리를 대법관 임명절차에 반영하고 있다. 헌법 제104조 제2항에 따르면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 즉 대법관 한 사람의 임명에 대법원장, 대통령, 국회라는 서로 다른 헌법기관이 참여한다. 한 기관이 대법관을 독점적으로 결정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또한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라는 선행절차도 마련되어 있다. 추천위원회는 대법원장이 제청할 대법관 후보자를 추천하고, 법률은 대법원장이 그 추천 내용을 존중하도록 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다수에 의한 의사결정의 정치이다. 국민주권을 위임받은 권력자는 자신의 권한 행사를 국민에게 설명할 책임을 진다. 이것이 대의 민주주의에서 권력자가 국민에게 책임을 진다는 민주주의 원칙이다. 헌법과 법률이 대법원장에게 대법관 제청권을 부여했다면, 조희대 대법원장은 대법관을 제청할 수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 원리에 따르면, 대법원장은 자신의 권리행사를 주권자인 국민에게 설명할 책임을 져야 한다. 대법원장이 특정 후보자를 선택해 제청했다면, 왜 그 후보자를 선택했는지 국민에게 설명할 민주적 책임도 함께 생각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국회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국회는 국민을 대신한 공론의 장이다. 대법관 임명과 같이 국가의 사법체계와 직결되는 중요한 사안에 대해 헌법기관 사이에 논쟁과 갈등이 발생한다면, 국회는 이를 공개적으로 검증하고 토론할 수 있어야 한다. 대법원장에게 질문할 수도 있다. 왜 손봉기 후보자를 선택했는가? 그가 대법관으로서 갖추었다고 판단한 자질은 무엇인가? 2026년 1월 결정된 사안을 왜 8월에 다른 대법관 추천시 끼워 넣어 그를 제청했는가? 그리고 왜 기존의 대면 제청 관례와 달리 서면으로 제청했는가? 이 질문에 답하는 것은 대법원장이라는 헌법기관의 권한 행사를 국민에게 설명하는 민주적 책임의 문제다.
사법부의 독립과 민주적 책임은 서로 배타적인 가치가 아니다. 헌법기관의 중요한 권한을 행사하는 과정과 그 이유에 대해서는 국민에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오히려 직접적인 선거를 통해 평가받지 않는 헌법기관일수록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 설명과 절차적 투명성이 중요하다. 법률적 권한 행사와 민주적 책임을 서로 다른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에서 정치적 갈등은 피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서로 다른 이해와 가치가 충돌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중요한 것은 그 갈등을 어떻게 해결하느냐이다. 비공개적인 힘겨루기와 침묵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공론의 장에서 서로의 판단을 설명하고 국민을 설득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방식이다. 이번 대법관 제청을 둘러싼 논란에서도 마찬가지다. 필요한 것은 설명과 공론화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자신의 제청권 행사에 대해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민주주의에서 책임의 출발점은 설명이다. 헌법기관이 권한을 행사했다면, 왜 그렇게 행사했는지를 국민에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대법원장의 권한은 대법원장의 개인적 권리가 아니다. 그것은 헌법이 부여한 공적 권한이다. 권한의 행사에는 책임이 따른다. 민주적 책임이란 자신이 부여받은 공적 권한을 어떻게 행사했는지, 그리고 왜 그렇게 행사했는지를 국민에게 설명하는 책임이다. 민주주의에서 설명없는 권력은 행사되어서는 안된다. 권력의 행사가 설명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순간, 민주주의는 권력자의 의사에 복종하는 독재체제로 변질될 수 있다. 권한에는 책임이 따르고, 책임의 출발점은 설명이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자신의 권한 행사에 대해 국회와 국민앞에 나와 설명해야 한다. 그것이 공직자의 기본 자세이고, 민주주의 헌법아래서 살아가는 대한민국 모든 국민의 태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