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고 있으면, 우리 집이지

박미숙의 그림책 세상 몇평인지, 자가인지 임대인지 보다 그안에서 편안한가 따뜻한가 물어야

2026-08-31     박미숙 작가

[고양신문] 요즘 술자리에 가면 이상한 기분이 든다. 조금 전까지 ‘행복하게 사는 삶’에 대해 그렇게 열을 올리던 사람들이, 술이 두어 잔 들어가면 약속이나 한 듯 화제를 바꾼다. 어디가 얼마나 올랐는지, 요즘 어떤 종목이 좋은지. 삶의 의미와 공동체와 연대를 이야기하던 입에서 결국 시세와 수익률 이야기가 나오는 순간, 묘한 낙차를 느낀다. 나라고 완전히 자유로운 건 아니다. 그 대화에 슬쩍 끼어들어 맞장구를 칠 때도 있으니까. 다만 그 자리를 나설 때마다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우리는 지금 집의 무엇에 집착하고 있는 걸까.
나는 집이 두 채다. 고양시에 한 채, 통영에 한 채. 집이 두 채라고 하면 대부분 사람들은 깜짝 놀란다. 하지만 두 채를 합쳐도 2억원이 되지 않는다고 말하면 표정이 달라진다. 그마저 대출을 끼고 있어 이자를 내며 산다. 지금은 직장과 늙어가는 가족을 돌보는 일 때문에 고양시에 살고 있지만, 언젠가 수도권을 떠나고 싶다는 마음으로 우여곡절 끝에 만든 결과다.
이 말을 하면 다들 “좋겠다”고 한다. 정말 부러워서 하는 말인지는 모르겠다. 나도 안다. 지금 사는 곳을 훌쩍 떠나기가 누구에게나 쉬운 일은 아니라는 걸. 다만 어느 순간부터 내 삶에서 ‘수도권의 엘리베이터 있는 아파트에 사는 것’이 꼭 이루어야 할 목표가 아니게 되었다. 그러자 집을 보는 기준도 달라졌다. 집값에서 조금 비켜서니, 내가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싶은지가 보이기 시작했고 선택지도 달라졌다.
부의 표상, 신분의 증거, 투자 대상. 몇 해 전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전국 성인 3000 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장기공공임대주택 대국민 인식조사’를 보면, 자가주택에 사는 사람의 63.6%가 지금의 주거가 안정적이라고 답한 반면, 전·월세로 사는 사람은 33.5%만이 그렇다고 답했다. 소유 여부에 따라 주거에서 느끼는 안정감에 큰 차이가 있었다. 그런데 같은 조사에서 공공임대주택 자체에 대한 인식은 세간의 통념과 달리 대체로 긍정적이었다. 소유하지 못한 데서 오는 불안과 임대주택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은 꼭 같은 것은 아닌 셈이다. 우리 안의 불안과 우리 안의 편견은, 어쩌면 서로 다른 곳에서 온 것인지도 모른다.

그림책 『우리 집은』(조원희, 이야기꽃)은 작은 트럭에 짐을 싣고 이사 오는 한 가족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방 둘에 거실 하나, 대여섯 세대가 복도를 함께 쓰는 작은 아파트. 그 집에서 아이는 마냥 행복하다. 그런데 전학 간 학교에서 친구에게 자랑을 했다가, 뜻밖의 말을 듣는다. “너네 집 3단지잖아. 거긴 임대아파트야. 임대가 뭐가 좋아!” 집에 돌아온 아이가 엄마에게 묻는다. “엄마, 임대가 뭐야?” “빌려준다는 뜻이야.” “그럼 여기, 우리 집 아니야?” 엄마는 이렇게 답한다. “우리가 살고 있으면 우리 집이지.” 아이가 다시 묻는다. “임대에 사는 건 부끄러운 거야?” 엄마는 말한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부끄러운 거야.”
값이 얼마나 올랐는지를 자랑하는 것도, 임대에 산다고 무시하는 것도, 결국은 같은 습관에서 나온 두 개의 얼굴 아닐까. 집을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라 숫자로 보는 습관. 평수로 친구를 가르는 아이들이 그림책 속에만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어른이 몇이나 될까. 아이들은 어른을 보고 배운다.

그림책 『낮잠 자는 집』(오드리 우드 글, 돈 우드 그림, 보림)에는 침대 하나가 나온다. 그 위에 드르렁 코 고는 할머니가 눕고, 그 위에 음냐음냐 꿈꾸는 꼬마가 포개어지고, 또 그 위에 개가, 고양이가, 쥐가, 벼룩이 차례로 겹쳐 잠든다. 이 집이 넓은지 좁은지, 몇 평인지, 누구 명의인지 그림책은 말해주지 않는다. 다만 이 집 안의 모두가 편안하다는 것, 그것만은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 집에서는 누구도 자리를 차지하려고 다른 존재를 밀어내지 않는다. 함께 누워 잘 수 있는 자리가 있다. 집이란 어쩌면 그런 곳이면 되는 게 아닐까.
집은 결국 크기의 문제가 아니라 온도의 문제인지도 모른다. 몇 평인지, 자가인지 임대인지보다 먼저 물어야 할 것은 이것이다. 그 안에서 우리는 편안한가. 함께 사는 사람들은 안심하고 돌아올 수 있는가. 오늘 당신의 집은, 안에 있는 사람을 따뜻하게 하고 있는가?

통계 출처: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장기공공임대주택 대국민 인식조사’(바이브컴퍼니 의뢰, 2021, 전국 성인 3000명 대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