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커지는 게 겁난다"… 성장 사다리가 '절벽'이 된 이유

중소기업 졸업하면 세제·금융지원 축소 규모 커질수록 불리한 구조 바꿔야

2026-09-01     권영기 더채움 대표이사(중부대학교 겸임교수)

[고양신문] 지난달 25일, 일본 현지 언론의 기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일본 경제산업성이 2027년도 세제개편 요구안에 '사업구조 전환·강화 촉진세제' 신설을 검토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아직 확정된 제도는 아니지만, 비핵심 사업을 매각하고 일정 기간 내 성장사업에 재투자하는 조건으로 매각 차익 과세를 미뤄주는 방안이다. 자본이 한계사업에 묶여 있기보다 생산적인 곳으로 이동하도록 세제의 흐름을 바꾸겠다는 발상이 눈에 띄었다.

그 기사를 읽으며 떠오른 것은 오늘도 가게 문을 열고, 공장 불을 켜놓고 일하는 우리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인들의 얼굴이었다. 20년, 30년 한 우물을 판 기업인들을 만나면 가끔 이런 말을 듣는다. "회사를 키우고 싶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커지는 게 오리려 겁이 납니다." 나 역시 다르지 않았다.

성장할수록 오르기 더 어려운 사다리
경제는 원래 사다리여야 한다. 소상공인이 소기업이 되고, 소기업이 중소기업이 되고, 그렇게 중견기업을 거쳐 대기업으로도 올라설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밤을 새워 일할 이유가 생긴다. 그런데 한 칸을 오르면 계산이 달라진다. 

소상공인이 연 매출 1억400만원을 넘어 간이과세자에서 일반 과세자로 전환되면 세금계산서 발급 의무와 부가세 신고 부담이 커진다. 직원을 5인 이상 두는 순간부터는 근로기준법의 연장·휴일 근로수당 가산 규정과 해고 제한이 전면 적용되며 4대 보험 의무 범위도 넓어진다. 매출이 늘면 재고와 운전자금도 더 필요하다.

성장이란 매출 숫자가 커지는 게 아니라 조직 전체의 비용과 책임이 함께 커지는 일이다. 그런데 규모가 기준선을 넘으면 지금까지 받던 세제·금융·조달 지원이 줄거나 사라진다. 이 벽은 소상공인이 소기업이 될 때도,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이 될 때도 형태만 바꿔 나타난다.

숫자로 드러난 중소기업의 생생한 현실
이 벽이 가장 첨예한 지점은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넘어가는 구간이다. 2023년 기준 국내 중소기업은 829만8915개로 전체 기업의 99.9%를 차지하고, 중견기업은 5868개였다. 2024년에는 6474개로 606개(10.3%) 늘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2000~2012년 기업 성장을 추적한 연구에서는 중소 제조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한 비율이 0.0007%, 즉 '100만 개 중 7곳'이었다. 다만 10여 년 전 조사인 만큼 지금의 성장 확률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더 최근 통계가 지금의 현실을 보여준다. 2024년 중견기업 기본통계에 따르면 중견기업에서 빠져나간 669개 가운데 대기업으로 성장한 곳은 103개, 중소기업으로 되돌아간 곳은 427개, 휴·폐업은 139개였다. 중소기업 회귀 기업이 대기업 성장 기업보다 네 배 이상 많았다. 회귀를 검토한 기업(전체의 3.5%)이 꼽은 이유는 조세 지원 축소(61.2%), 금융지원 축소(18.8%), 중소기업 적합업종(7.8%) 순이었다. 2023년 조사에서도 조세 혜택 축소가 60.8%로 1순위였으니, 일시적 현상은 아니다.

성장 문턱 넘었더니 제도와 지원은 단절
물론 2024년 중견기업 전체로 보면 매출 4.7%, 투자 17.1%, R&D 투자는 35.2% 늘었다. 한국 기업 전체가 성장을 두려워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성장의 문턱을 넘는 그 순간, 제도적 비용과 지원 단절을 동시에 감당해야 하는 구간이 분명히 존재한다. 한국은행도 중소기업 기준이 일종의 '문턱'으로 작동해 성장 회피 유인을 만들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 벽은 소상공인에게도, 중견기업에도 결을 달리해 나타난다. 중소기업 매출액 기준은 2015년 설정된 뒤 10년간 유지됐다. 그 사이 물가와 생산원가가 오르면서 실질적 성장 없이 매출만 늘어 지위를 잃는 '가짜 졸업' 문제가 제기됐고, 정부는 2025년 9월 이를 현실화했다(제조업 상한 1500억→1800억원). 

사다리는 아예 끝나기도 한다. 60세 이상 경영자가 운영하는 중소기업 중 후계자 부재로 승계에 어려움을 겪는 곳이 약 67만5000개로 추정된다. 기술과 거래처를 갖춘 기업도 후계자를 못 찾으면 사업이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에 정부는 M&A를 통한 승계 활성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정부 세제개편안의 한계와 정책대안
2024년 '기업 성장사다리 구축방안'으로 중소기업 졸업 유예기간을 3년에서 5년으로 늘렸고, 2025년엔 매출 기준을 현실화했다. 2026년 세제개편안엔 제3자 승계 과세특례가 담겼다. 20년 이상 경영한 60세 이상 최대주주가 제3자에게 승계하면 매도자는 양도소득세 20%를, 매수자는 5년간 소득세·법인세 10%를 감면받는다(2028년 시행). 가업상속공제 한도를 최대 1000억원까지 확대하는 방안도 함께 논의된다. 부의 대물림이 아니라, 수십 년 쌓아 올린 일자리와 기술이 오너의 은퇴와 함께 사라지지 않도록 잇는 출구다.

다만 기업의 생애 전체를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하는 제도는 아직 부족하다. 사업을 전환하려 해도 세금과 거래비용이 먼저 발생하면 기업은 결정을 미룬다. "조금만 더 버텨보자." 그렇게 자본과 인력이 생산성 낮은 곳에 계속 묶인다. 일본이 고민하는 지점도 정확히 여기다.

핵심은 지원을 더 늘리는 것이 아니다. 기업을 계속 중소기업으로 남게 하는 정책이 아니라 성장해도 불리하지 않은 정책이 필요하다. 첫째, 규모 기준을 넘을 때 지원이 한꺼번에 사라지는 '절벽'을 완화하는 슬라이딩 스케일이 필요하다. 둘째, 사업전환 시 과세이연 제도를 더 폭넓게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새로 마련된 제3자 승계 과세특례와 임직원 인수(MBO) 지원이 현장에서 실제로 쓰이도록 문턱을 낮춰야 한다.

제도적 문턱 낮추고 성장 지원 나서야
기업경영 현장에서 가장 위태로운 순간은 역설적으로 한 칸 위로 막 올라섰을 때다. 가장 많은 자금이 필요한 그 타이밍에 제도는 도리어 ‘이제 기준을 넘었으니 지원을 줄이겠다’며 문턱을 높인다. 2024년 대기업 성장 103개, 중소기업 회귀 427개. 이 숫자는 기업인의 의지 부족이 아니다. 한번 올라선 자리에서 계속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 충분한지를 묻는 것이다.

권영기 더채움 대표이사(중부대학교 겸임교수)

정부가 기업인에게 ‘성장하십시오’라고 말하려면 먼저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성장해도 괜찮습니다. 커져도 손해 보지 않습니다’라고. 오늘도 가게 문을 열고 공장 불을 켜고 있는 이들이 원하는 것은 특혜가 아니다. 땀 흘려 키운 곳이 직원들의 일자리를 지키며 더 커지고, 다음 세대에도 기술과 거래처가 살아남는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사다리를 더 놓는 게 아니다. 한번 올라선 칸에서 다시 내려오지 않도록 칸과 칸을 튼튼하게 잇는 일이다.

권영기 더채움 대표이사(중부대학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