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 장단에 아이돌 칼군무…전통과 현대의 신명나는 만남
노름마치예술단 ‘허튼소리’ 뜨거운 호응
EDM·랩·브라스에 판소리 장단 유쾌한 결합
김주홍 “10월 연희·소리극도 기대해주세요”
[고양신문] 전통음악이 EDM을 만나고, 민요가 댄스곡으로 변했다. 턱시도를 차려입은 연주자들은 전통악기를 들고 무대를 누비며 칼군무까지 펼쳤다. 익숙한 우리 장단은 그대로였지만 그것을 보여주는 방식은 완전히 달랐다.
지난 5일 고양아람누리 새라새극장에서 열린 (사)노름마치예술단의 ‘김주홍과 노름마치 허튼소리’는 ‘전통음악은 어떻게 지금의 관객과 만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유쾌하고 신명나는 답을 보여준 공연이었다.
2026 고양문화재단 고양문화다리 선정작으로 마련된 이날 공연은 전통 장단과 판소리를 중심에 두면서 EDM과 재즈, 랩, 브라스 사운드와 현대적인 퍼포먼스를 과감하게 끌어들였다.
공연 전에는 ‘전통음악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는 소개를 보고 익숙한 퓨전국악 정도를 예상했다. 하지만 무대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예상은 깨졌다. 공연을 보며 가장 먼저 떠오른 표현은 ‘도심에 어울리는 전통국악’이었다. 한복 대신 턱시도를 차려입은 연주자들은 악기를 연주하다가 일제히 움직이며 칼군무를 선보였다. 화려한 조명과 강렬한 비트가 더해지자 때로는 아이돌 공연을 보는 듯한 역동적인 장면도 펼쳐졌다.
그렇다고 전통음악의 맛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판소리 특유의 구슬픈 소리와 청량하면서도 힘있는 목소리 뒤로 박자를 쪼갠 랩의 리듬이 흐르고, 전통 장단 위에 EDM 비트가 얹혔다. 전혀 다른 음악처럼 보였지만, 막상 한 무대에서 만나니 어느 하나 겉돌지 않았다.
공연의 중심을 이룬 ‘허튼소리’ 연작에서도 이런 특징이 뚜렷했다. 구음장단을 입소리로 풀어낸 ‘허튼소리Ⅰ’에 이어 ‘허튼소리Ⅱ’에서는 EDM 사운드와 전통음악을 결합한 이른바 ‘도시 국악’을 들려줬다. 황해도 민요 ‘난봉가’를 재해석한 ‘허튼소리Ⅲ’에서는 익숙한 민요가 신나는 댄스곡처럼 변신했다.
곡이 바뀔 때마다 무대에서 그려지는 풍경도 달라졌다. 특히 ‘달려’에서는 말을 타고 넓은 들판을 질주하는 듯한 속도감과 기마민족의 힘찬 기상이 느껴졌다. 강한 장단이 몰아칠수록 몸이 먼저 반응했다. 가만히 앉아 감상하는 국악공연을 생각하고 왔는데 어느새 객석에서도 박자가 나오고 손이 올라갔다.
조선시대 왕의 행진곡인 대취타를 재구성한 ‘취타풍(Brass Rap)’에서는 또 다른 반전이 기다렸다. 전통 타악과 관악이 만들어내는 힘찬 소리에 랩과 현대적인 리듬이 더해지며 과거의 음악이 지금의 무대 위에서 다시 살아 움직였다.
공연의 재미를 더한 것은 연주자들의 해설이었다. 곡 사이사이 음악에 담긴 이야기와 전통적인 요소를 직접 설명해 국악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도 어렵지 않게 따라갈 수 있었다. 설명을 듣고 다시 음악을 접하니 장단과 소리가 조금씩 다르게 들렸다.
공연이 진행될수록 객석의 분위기도 변했다. 처음에는 조용히 무대를 바라보던 관객들이 장단에 맞춰 박수를 치기 시작했고, 후반부에는 손을 높이 들며 연주자들과 함께 호흡했다. 무대와 객석이 따로 있던 공연이 어느 순간 함께 노는 판으로 변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새로움’을 위해 전통을 버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현대적인 비트와 화려한 퍼포먼스 사이에서도 전통 타악의 장단과 소리의 힘은 또렷하게 살아 있었다. 오히려 EDM과 랩을 만나면서 ‘우리 음악이 이렇게 세련되고 재미있을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연을 보며 ‘전통을 지킨다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질문도 떠올랐다. 옛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재현하는 것만이 전통을 이어가는 방법은 아닐 것이다.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즐기고, 그 안에서 우리 음악을 발견하고, 다시 궁금해하게 만드는 것 역시 전통을 다음 세대로 건네는 방법일 수 있다.
특히 국악을 어렵거나 지루하다고 생각했던 청소년과 젊은 관객에게 ‘허튼소리’는 꽤 매력적인 입구가 될 듯하다. EDM을 듣다가 우리 장단을 만나고, 랩을 듣다가 대취타를 궁금해하고, 신나게 즐긴 노래의 뿌리가 어떤 민요인지 찾아보게 된다면 그 또한 지금 시대에 전통을 만나는 방식이다.
공연 막바지에는 무대의 장단과 객석의 박수가 하나처럼 빨라졌다. 처음에는 서로 다른 세계처럼 보였던 전통과 현대의 경계도 어느새 희미해져 있었다. 관객석에서는 이미 벌떡 일어나 흥겨운 춤사위판이 벌어졌다.
‘허튼소리’라는 이름과 달리 이날 무대가 들려준 이야기는 꽤 분명했다. 전통음악은 과거에만 머무는 음악이 아니었다. 턱시도를 입고 EDM 비트 위에 올라서도 우리 장단은 여전히 신명났고, 꽤 멋졌다.
한편 이날 무대를 이끈 김주홍은 오는 10월 17일 오후 5시 고양아람누리 새라새극장에서 열리는 연희·소리극 ‘출해: 이무기 이야기’에도 출연한다. 용이 되기 위해 천 년을 기다려온 이무기와 승진을 위해 평생 달려온 ‘만년 김 차장’의 이야기를 전통연희의 장단과 재담, 해학적 상상력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노름마치 공연의 매력을 맛본 관객들의 예매 행렬이 예상된다. 문의 1577-77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