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할아버지 이야기
김한수 소설가의 ‘텃밭에서 세상읽기’
[고양신문] 세상에는 비록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훌륭한 분들이 참 많은 것 같다. 그러나 그런 분들은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움직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들이 우리 곁에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가 태반이다.
등산을 하거나 한강변을 산책하다 보면 남이 알아주거나 말거나 쓰레기를 줍는 분들도 있고, 다양한 형태로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자원봉사를 하는 분들도 정말 많다. 남들 모르게 기부를 하기도 하고, 홍수가 나거나 산불이 나면 만사 제쳐놓고 재난현장으로 달려가는 분들도 있다.
태안반도 기름 유출 사고가 났을 때의 장면은 그래서 지금도 기억이 선명하다. 그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아니었다면 태안반도는 과연 어찌 되었을까.
우리 동네에도 그런 분이 한 명 있다.
우리 동네로 향하는 이면도로에는 분류수거를 하는 장소가 있다. 감시카메라 이외에는 특별한 시설 없이 그냥 길 가장자리에 각종 재활용품들과 쓰레기봉투를 쌓아두는데 각종 쓰레기를 아무렇게나 버리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 앞을 지나치면 절로 발걸음이 빨라진다. 음식물 쓰레기도 제멋대로 버리는 사람들이 많아서 여름철이면 악취가 코를 찌르고 벌레가 들끓는다.
그런데 작년 어느날부터 팔십을 훌쩍 넘긴 할아버지가 쓰레기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키는 껑충하게 큰데 몸은 깡마른 데다가 옷차림은 허름하고, 눈꼬리가 가늘게 찢어져서 다가가기가 쉽지 않은 인상이었다.
어쨌건 그 할아버지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오전에 서너 시간, 오후에 서너 시간 쓰레기를 정리했다. 아무렇게나 내던져진 종이상자는 테이프를 떼서 차곡차곡 쌓아두고, 사람들이 아무 생각 없이 던져 놓은 플라스틱 용기들은 마대에 담아서 깔끔하게 정리를 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수북이 놓인 쓰레기봉투를 맞은 편 다세대주택 나무 그늘 아래로 일일이 옮겨서 돗자리를 깔고 앉아 재활용품이 들어 있지 않은지 일일이 확인을 하고, 그렇게 해서 생겨난 공간에는 분리수거 공간에 널브러진 자잘한 쓰레기들을 꾹꾹 눌러 담았다. 일반 비닐봉지에 담겨서 버려진 음식물 쓰레기는 음식물 쓰레기 전용 봉지에 옮겨 담았고, 스티로폼은 차곡차곡 쌓아서 노끈으로 단단히 묶었다.
덕분에 분리수거 공간 주변이 환해졌고, 할아버지는 이 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도 매일 쓰레기 정리를 하신다. 그러자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는 사람들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인근 주민들도 쓰레기를 내놓을 때 각별히 신경을 쓰게 되었다.
오늘도 집으로 오는데 할아버지는 카랑카랑하지만 발음이 정확하지 않아서 잘 알아들을 수 없는 혼잣말을 쉴 새 없이 중얼거리거나 이따금 노래를 부르기도 하면서 쓰레기 정리를 하고 계셨다.
그 모습을 뵙자니 여간 존경스럽지 않았고, 훈장은 저런 분들께 드려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이 알아주거나 말거나 선행을 실천하는 분들의 공통점은 지속성에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런 분들은 그냥 즐겁고 행복해서 하는 일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하면서도 무엇보다 그런 일들을 통해서 늘 무엇인가를 새로 배우는 게 가장 큰 보람이라고 덧붙인다.
그렇다고 우리가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우리도 자주는 아니지만 알게 모르게 선행을 베풀 때도 있고, 무엇보다 가치 있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