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의 도시 고양, ‘팹리스’에서 답을 찾자

이종훈의 슬기로운 고양생활(8) ‘공장 없는 반도체 회사’ 모델 삼아 생산에서 기획·창업·유통 중심 전환 라페스타를 꽃산업 혁신거점으로

2026-09-14     이종훈 시사평론가
고양시 화훼종합유통센터

[고양신문] 고양시를 흔히 ‘꽃의 도시’라 부른다. 수도권 최대 화훼 생산지이자 최대 봄꽃 축제인 고양국제꽃박람회 개최지인 때문이다. 그 명성이 사라질 위기다. 무엇보다 고양시 화훼산업이 축소일로다. 화훼농가가 2006년 1500호에서 최근 500호 정도로 줄어들었다. 3분의 1만 남은 셈인데, 당연히 재배 면적과 생산 규모도 줄어들었다.
대한민국 전체 화훼산업 역시 위기다. 화훼농가가 2010년 1만347호였던 것이 2022년 7134호로 감소했다. 생산 규모도 2015년 6332억원에서 2024년 5380억원으로 줄었다. 수출액도 2015년 2846만 달러에서 2024년 636만 달러로 무려 78%나 감소했다. 같은 해 화훼 수입액이 1억2154만 달러로 무역적자는 약 1억1518만 달러에 달했다.
반면에 글로벌 화훼시장은 성장 중이다. Market Data Forecast에 따르면, 2026년 기준 713억 달러였던 것이 2034년 기준 1180억 달러로 무려 6.5%나 성장할 전망이다. 최소 전망치를 제시한 Global Market Insights의 예상치도 4.6%다. 글로벌 화훼시장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1% 정도이고, 국내 화훼시장 내 고양시 비중은 3.6% 정도에 불과하다.
정부는 2006년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주교동 일대를 전국 최초 화훼산업 지역특화발전특구로 지정했다. 2023년에는 수도권 화훼종합유통센터를 준공하기도 했다. 그곳에 가보면 k-flower라고 쓰인 간판이 눈길을 끈다. 이렇게 정부가 적극적으로 밀어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양시 화훼산업이 힘을 못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글로벌 시장에서 K-flower의 존재감이 미미한 이유는 무엇일까? 고양국제꽃박람회의 당초 목표였던 해외시장 개척은 왜 이토록 지지부진할까?
사실, 한국 사회에서 꽃은 일종의 사치재다. 꽃보다는 밥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의식주를 해결하고 난 다음에 챙기는 대상이다 보니, 결혼식이나 생일 또는 승진 같은 특별한 계기가 아니면 꽃을 잘 구입하지도 않는다. 당연히 경제난이 닥치면 가장 먼저 지출을 줄이는 대상이다. 꽃 1인당 소비액은 2005년 2만1000원대에서 2024년 1만3432원대로 거의 반토막이 났다.  
우리나라에는 꽃을 일상적으로 선물하는 문화도 없다. 2024년 국가별 1인당 꽃 소비액을 살펴보면 스위스 18만5000원, 독일 13만8000원, 네덜란드 11만원, 일본 5만7000원 수준이다. 우리나라는 일본의 4분의 1도 안 된다. 안 그래도 수요 기반이 취약한 상태에서, 해외 조경 트렌드 선호에 따른 꽃 수입까지 증가하면서 점차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는 현실이다. 화훼농가의 고령화와 더불어 가업 승계 또는 청년 창업이 줄어드는 것도 한 요인인데, 시장이 위축되는 상황에서 뛰어들 청년 세대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최근 고양시 화훼농가연합회는 스타필드와 같은 대형 쇼핑몰에 ‘로컬 화훼 팝업스토어’를 여는 사업을 새롭게 시작했다. 이와 더불어 생산 중심에서 소비·체험 결합형 모델로 전환도 시도 중이다. 이런 노력도 중요하지만, 좀 더 근본적인 인식 전환도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예를 들어, 반도체 분야의 팹리스-파운드리 협업 모델 응용 같은 것이다.
반도체 분야에서 최근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것이 바로 팹리스다. 공장이 없는 반도체 회사, 곧 새로운 반도체를 기획하고 설계만 하는 기업이다. 이들을 기획한 제품을 제조 생산하는 업체가 바로 파운드리다. 이런 팹리스 기업은 국내 화장품 업계에도 수없이 많다. 올리브영에서 전시 판매하는 수많은 화장품 브랜드가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이 방식을 화훼산업에 적용한다면, 팹리스는 ‘농장이 없는 원예 기획자’ 또는 ‘사무실 없는 조경 기획자’가 될 것이다. 파운드리는 이들이 소비자의 기호 변화 곧 시장 트렌드를 반영해 기획한 화훼 품목을 위탁생산하는 농장이다. 이들 파운드리는 당연히 즉각 대응이 가능해야 하기 때문에, 다품종 소량 품목을 단기간에 생산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국내 화훼 생산은 여전히 선물용이나 행사용으로 적합한 장미나 국화 같은 절화나 난 같은 분화 위주이다. 2024년 생산액 5380억원 가운데 절화가 1889억원 분화가 2124억원으로 거의 75%를 차지했다. 반면, 최근 조경 트렌드는 자연주의 식재, 곧 다년초(숙근초)와 관상용 그라스 중심으로 이동했다. 이런 괴리도 국내 화훼 생산 축소와 수입 증가를 촉발하는 요인이다.
이승국 고양시 화훼농가연합회장은 필자와 면담에서 ‘로컬 화훼 팝업스토어’ 사업 확대와 더불어 상설 소매 매장 확보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상설 소매 매장 입지로는 어디가 좋을까? 이 회장도 필자도 적지로 꼽은 곳이 라페스타다. 빈 상가가 많은데, 고양시가 그 일부를 임대해 상설 소매 매장으로 활용하도록 지원하면 어떻겠느냐는 것이다.
필자는 여기에 더해 이들 빈 상가에 앞서 언급한 팹리스 입주를 추진했으면 한다. 전국의 원예 및 조경 관련 학과 연간 졸업생은 4000여 명에 달한다. 이들 대부분이 취업난에 허덕인다. 이 가운데 희망하는 이들을 모집해 팹리스 창업을 시도하도록 초기 여건을 조성해주자는 제안이다. 이들 팹리스의 쇼룸 그리고 고양시 화훼농가의 소매 매장들이 들어서면, 라페스타 상권 활성화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화훼 팹리스가 입주해 활성화되면, 먼저 유관 산업 분야 청년 창업자의 팰리스들이 추가로 입주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화장품 분야에서는 꽃의 향기와 채색 그리고 성분을 많이 활용한다. 농업진흥청은 최근 RosaScentNIHHS1을 개발했다. 이 신품종 장미는 기존 정유용 장미보다 향 강도가 약 25% 높아 산업 활용도가 높을 것이란 분석이다. 이런 신품종을 매개로 향신료를 개발하는 팹리스와 생산 농가가 협업하는 초기 클러스터를 만들 수 있다고 본다. 
처음에는 화훼 팹리스로 시작한 것이 나중에는 팹리스 스타트업의 성지가 되는 그림도 그려볼 만하다. 청년 세대는 한데 어울리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라페스타 인근에는 오피스텔이 많아 이미 많은 청년 세대가 거주하고 있기도 한다. 라페스타 상권이 살아나면 당연히 인근 웨스턴돔이나 원마운트 인근 일산가로수길 상권도 덩달아 살아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