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씀바귀’라 쓰고, 쓴 나물이라 읽는다

김경훈의 풀꽃이야기 -서부민통선의 식물 ⑪고들빼기와 씀바귀 쓴맛 나는 나물 고들빼기와 씀바귀 식물 방어물질을 별미로 바꾼 인간

2026-09-14     김경훈 자원식물학박사
씀바귀

[고양신문] 생물이 살아가는 데 먹고사는 문제만큼 중요한 것도 없습니다. 야생동물은 주어진 환경에서 먹을 수 있는 먹이가 제한적이지만, 먹거리가 풍부한 인간에게는 오히려 다른 고민이 생깁니다. “오늘 점심은 뭘 먹지?”
영양학적으로 생각해 보면 인간이 본능적으로 에너지 효율이 높은 먹거리를 선호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달고 기름진 음식이 맛있게 느껴지는 것도 그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거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달고 기름진 것은 맛있어서 먹고, 매운 것은 스트레스가 풀린다며 먹고, 심지어 쓴맛이 나는 것은 몸에 좋다거나 입맛을 돋운다며 찾아 먹습니다. 어찌 보면 인간은 꽤 집요한 식성을 가지고 있는 셈입니다.
식재료가 지금처럼 풍부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산과 들에서 나는 수많은 식물이 중요한 먹거리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나물로 이용된 식물은 과거에는 500여 종에 이르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재배가 쉽고 채취하기 편하면서 맛과 향이 좋은 식물들이 주로 남게 되면서 오늘날 우리가 흔히 먹는 나물의 종류는 크게 줄었습니다. 그중에는 특별히 쓴맛을 가진 식물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고들빼기와 씀바귀입니다.
씀바귀는 이름에서부터 맛이 느껴집니다. 실제로 씀바귀는 예로부터 쓴맛이 나는 나물로 이용되어 왔습니다. 농촌진흥청 자료에서도 씀바귀를 쓴맛과 관련된 이름으로 설명하고 있으며, 식용 및 전통적인 이용 사례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고들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옛 문헌에서는 고들빼기를 고채(苦菜)로 불렀습니다. ‘苦’가 들어간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역시 쓴맛과 관련된 식물입니다. 『명물기략』에는 고들빼기의 옛 이름과 관련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어, 고들빼기가 오래전부터 쓴맛을 가진 나물로 인식되어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고들빼기

재미있는 것은 이 두 식물이 오늘날에는 서로 다른 식물로 구분되지만, 예전 사람들에게는 지금처럼 엄격하게 구분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입니다.
식물의 이름은 식물학자가 붙인 이름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먹고, 약으로 쓰고, 생김새를 보고, 맛을 보고 붙인 이름도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서로 비슷하게 생겼거나 비슷한 용도로 이용되는 식물들이 같은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고, 지역에 따라 서로 다른 이름을 갖기도 합니다. 특히 고들빼기와 씀바귀처럼 국화과의 비슷한 식물들은 일반인의 입장에서 구별하기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흔히 “씀바귀”라고 하면 밭이나 들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작은 노란 꽃의 봄나물을 떠올립니다. 그런데 식물분류학적으로 씀바귀라는 이름이 가리키는 특정 종과 사람들이 ‘씀바귀나물’이라고 부르는 식물은 반드시 일치하지 않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씀바귀와 매우 비슷하게 생긴 식물들이 여럿 있습니다. 벌씀바귀, 벋음씀바귀, 선씀바귀, 좀씀바귀 등입니다. 그러니 “씀바귀를 봤다”라고 말할 때 실제로 어떤 식물을 본 것인지 확인하려면 한번 더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이 식물 이름을 공부하는 재미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하나의 이름으로 부르지만, 식물학자는 그것을 여러 종으로 나누어 봅니다. 반대로 식물학적으로는 서로 다른 식물들이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는 모두 하나의 ‘나물’이라는 이름 아래 묶이기도 합니다.
고들빼기는 이런 점에서 씀바귀보다 찾기가 쉽습니다. 길가의 초지, 밭두렁, 논둑, 빈터, 민가 주변처럼 사람이 만든 환경에서도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고들빼기는 우리나라 전역의 산야, 건조한 길가와 밭 등에서 흔하게 자라는 식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들빼기는 꽃대를 올려 줄기가 억세지는 봄철보다 잎이 부드러운 가을철에 채집하여 김치를 담궈 먹습니다.
씀바귀나 고들빼기의 쓴맛은 단지 인간의 입맛을 돋우기 위해 만들어진 물질은 아닙니다. 고착생활을 하는 식물 입장에서는 자신을 포식하는 생물로부터 보호를 위해 방어 물질을 만듭니다. 이런 화학물질의 일부를 우리는 쓰다라고 인식하게 됩니다. 단지 이런 쓴 맛이 “먹을 수 없다”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물에 데쳐서 쓴맛을 빼볼까?”라든지 “쓴맛이 나는 나물을 먹어보니 입맛이 생기는데?”로 발전하여 단지 쓴맛이 맛이 없다가 아니라 새로운 맛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선조들은 지금의 과학자보다 더 오랜 연구를 해오고 있었던 셈입니다.
고들빼기와 씀바귀는 그저 쓴맛이 나는 봄나물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식물을 어떻게 이용해 왔는지, 식물의 이름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식물의 이름’과 실제 자연에 존재하는 ‘종’이 얼마나 다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재미있는 사례입니다. 들이나 밭둑에서 쓴맛이 나는 식물의 노란 꽃을 만난다면, 지나치지 말고 한 번쯤 자세히 들여다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