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 글로벌 AI 허브 유치…고양의 승부수는 ‘의료·바이오’
UN 글로벌 AI 허브 유치 전략 릴레이 인터뷰 ① 이왕준 명지병원 이사장 교통·부지 넘어 의료 특화로 차별화 AI 헬스케어 리더십 센터 선점 관건
[고양신문] 정부가 추진 중인 ‘UN 글로벌 AI 허브’ 구축 사업을 두고 전국 지자체 간 유치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고양시는 전국 지자체 최초로 ‘UN 글로벌 AI 허브’ 유치를 공식 선언한 데 이어 시민 주도의 추진위원회 출범에 맞춰 10만 시민 서명운동을 펼치고 있다.
UN 글로벌 AI 허브 유치는 행정의 노력만으로 이뤄낼 수 있는 과제가 아니다. 시민이 주체가 돼 뜻을 모으고, 지역의 기업과 대학, 의료계, 연구기관, 문화·예술계, 시민사회 등 각 분야가 한목소리로 힘을 모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고양신문은 ‘UN 글로벌 AI 허브 유치 전략' 릴레이 인터뷰를 통해 각계 인사들이 생각하는 유치의 의미와 고양의 경쟁력을 들어보고, 시민과 지역사회가 함께 만들어가야 할 역할과 과제를 짚어본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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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준 명지병원 이사장은 국제 보건의료계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인사로 평가된다. 이 이사장은 고양시의 'UN 글로벌 AI 허브' 유치 전략이 다른 지자체와 차별화되기 위해서는 의료·바이오 분야를 핵심 무기로 삼아야 한다고 분석했다.
"고양시의 의료 인프라를 지렛대 삼아 보건의료 분야를 선점하는 '의료·바이오 앵커링(Anchoring)' 전략이 우선돼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다수의 지자체들은 교통 접근성, 대규모 부지 제공, IT 인프라 등 유사한 입지 여건을 유치 경쟁력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에 대해 이 이사장은 "다수의 지자체들이 교통망이나 부지 제공 등 객관적 장점을 내세우는 상황에서 모든 것을 다 하겠다는 포괄적인 유치 전략은 차별성을 갖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보편적인 인프라 경쟁만으로는 심사위원들을 설득하기 어려우며, 지역 내 구축된 탄탄한 의료 인프라를 AI와 어떻게 융합할 것인지 보여주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인터뷰는 자연스럽게 인공지능 기술이 헬스케어 분야에 적용될 때 직면하게 되는 국제적 과제들로 이어졌다. 이 이사장은 "헬스케어 분야야말로 생명윤리와 복합적인 국제 규범에 대한 논의가 특히 중요한 영역"이라고 짚었다. AI 기술이 실제 의료 현장에 안착하기 위해서는 각국의 상이한 정책과 규제 차이를 조정하는 과정이 선행돼야 하며, 의료 현장에서 해당 기술을 철저히 검증하는 단계가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이 이사장은 글로벌 AI 허브가 지향해야 할 구체적인 역할론을 제시했다. 그는 "향후 AI 허브가 각국의 정책적·규제적 차이를 조정하는 거버넌스 역할(Regulator)과 산업계의 첨단 AI 기술을 검증하고 시장에 확산시키는 촉진자 역할(Facilitator)을 균형 있게 수행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정책적 제언에 힘이 실리는 이유는 이왕준 이사장이 국제 보건의료 규범을 논의하는 최전선에 서 있기 때문이다. 이 이사장은 지난해 제네바에서 열린 국제병원연맹(IHF) 세계총회에서 폴란드 병원협회장과의 경선을 거쳐 차기 회장으로 선출됐다. 97년 역사에 이르는 IHF에서 아시아인이 회장직에 오른 것은 역대 두 번째다. 현재 차기 회장 자격으로 집행위원회 의사결정에 참여하고 있는 그는, 오는 10월 서울 마곡 코엑스에서 개최되는 제47회 IHF 세계총회 대회장을 맡아 행사를 총괄 지휘할 예정이다.
이 이사장의 설명에 따르면, 스위스 제네바에 본부를 둔 IHF는 세계보건기구(WHO)와 공식 파트너십을 맺고 있는 영향력 있는 국제 비정부기구다. 현재 77개국이 정규 회원국으로 가입돼 있으며, 참관국 등을 포함해 직간접적으로 전 세계 약 3만5000개의 병원을 아우르고 있다. 각국 정부 중심으로 운영되는 WHO와 달리, IHF는 각국의 병원협회를 대표해 철저히 현장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의료 현장 중심의 국제 연합체 성격을 띠고 있다.
오는 10월 서울 총회는 국제 보건의료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대규모 행사가 될 전망이다. 이번 총회에는 2000명에서 2500명 이상의 글로벌 보건의료 리더들이 대거 참석한다. 정부가 주도해 온 '월드 바이오 서밋(World Bio Summit)'도 같은 기간 같은 장소에서 공동 개최될 예정이어서 시너지 효과가 기대된다. 특히 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도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어서 의미를 더하고 있다.
이 이사장은 이번 서울 세계총회와 월드 바이오 서밋의 핵심 주제가 'AI와 헬스케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대회 기간 중 IHF와 한국 정부, WHO 대표단 등은 '글로벌 AI 헬스케어 서울 선언'을 공동으로 채택할 계획이다. 이 선언문에는 헬스케어 관점에서 AI 기술 도입에 관한 윤리적 기준과 가이드라인이 담기며, 정부·병원·환자·산업계 등 다양한 주체가 참여하는 다자간 선언 형태로 추진된다. 이 이사장에 따르면 해당 선언문의 결의 사항에는 글로벌 AI 허브 설립 및 지속 발전에 대한 내용도 공식적으로 포함될 예정이다.
특히 주목할 만한 부분은 IHF 측이 의료 현장 중심의 '글로벌 AI 헬스케어 리더십 센터' 건립을 자체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센터는 단순한 정책적 통제 기구가 아니라, 병원 내 인력 교육 및 훈련, AI 기술 수용에 대한 조직적 합의 도출, 병원 내 윤리위원회의 의사결정 표준화 등 실질적인 병원 거버넌스 구축에 초점을 맞춘 전문 기관이다.
이러한 굵직한 국제 보건의료계의 움직임과 IHF의 구체적인 센터 건립 계획이 가시화되면서, 최근 고양시 지역 사회에서는 고양시의 치밀하고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고양시가 타 지자체와의 예선 경쟁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추상적인 계획을 넘어 구체적인 성과물을 조기에 확보해야 한다고 것이다. 오는 10월 IHF 세계총회에서 IHF가 추진 중인 '글로벌 AI 헬스케어 리더십 센터'의 고양시 유치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선제적으로 체결하는 것도 그중 하나다.
전 세계 보건의료 리더들이 모여 국제적인 논의가 이뤄지는 현장에서 해당 센터 유치라는 실체적인 성과를 확보한다면, 다른 지자체와 차별화할 수 있는 객관적인 성과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왕준 이사장은 대학 시절 의료전문지 '청년의사' 창간을 주도한 뒤 의료계 현안과 개혁을 꾸준히 다뤄왔다. 이후 '청년 슈바이처 캠프' 등을 통해 젊은 의료인들과의 소통과 교육에도 힘써왔다.
그의 국제적 안목을 넓힌 계기는 박근혜 정부 시절 출범한 사단법인 한국의료수출협회의 초대 회장을 맡으면서부터다. 그는 약 8년간 협회를 이끌며 중동 지역은 물론 중앙아시아와 러시아, 칼리닌그라드 등 해외 각지를 오가며 민간 외교관으로서 한국 의료의 해외 진출과 의료관광 활성화 등 의료 수출의 교두보 역할을 톡톡히 수행했다. 대한병원협회를 대표해 19년 이상 국제 업무를 전담하며 세계 각국의 병원 리더들과 탄탄한 네트워크를 형성해 온 이 이사장의 발자취는, 고양시가 글로벌 AI 허브 유치라는 중대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데 있어 참고할 만한 전략적 자산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