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안이 찾아왔다면, 몸의 후반전을 준비할 때다
유용우 한의사의 건강칼럼
[고양신문] 어느 날 책을 읽다가 고개를 들어 TV를 보았는데 화면이 선명하지 않았다. 잠시 바라보고 있으니 다시 또렷해졌다. 반대로 TV를 보다가 책으로 시선을 옮기면 이번에는 가까운 글씨에 바로 초점이 잡히지 않았다.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아, 나도 노안이 시작되나.’
이미 노안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고 있었고, 어떻게 관리하면 되는지도 나름대로 공부해온 터였다. 그런데 아는 것과 직접경험하는 것은 달랐다. 30대에 피곤하다고 말했던 것은 어쩌면 엄살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하룻밤 푹 자고 나면 다시 회복되었으니까. 그러나 40대 후반에 찾아온 노안은 달랐다. 잘 보이던 것이 예전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잠깐의 피로가 아니라 ‘나도 이제 늙어가기 시작한다’라는 몸의 통보처럼 느껴졌다.
누구에게나 비교적 공평하게 찾아오는 노안
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오감의 감각이 같이 늙어간다. 청력은 예전 같지 않고, 냄새와 맛을 느끼는 능력도 조금씩 떨어진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는 사람마다 차이가 상당히 크다. 반면 눈의 조절력 감소는 비교적 일정한 연령의 흐름을 따라 나타난다.
노안은 대개 40대 후반부터 느끼기 시작한다. 젊은 눈은 가까운 곳을 볼 때 수정체의 모양을 변화시켜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수정체가 점점 단단해지고 탄력성이 떨어진다. 가까운 곳에 초점을 맞추는 조절력이 줄어들면서 어느 순간 작은 글씨를 조금 멀리 떼어놓아야 편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처음부터 돋보기를 써야 할 정도로 갑자기 나빠지는 것은 아니다. 가까운 글씨에 초점이 늦게 잡히거나 책을 보다가 먼 곳을 바라볼 때 순간적으로 흐려지기도 한다. 평소보다 밝은 곳에서 책을 읽게 되고, 작은 글씨를 오래 보면 눈이 쉽게 피로해진다. 때로는 눈이 침침하거나 머리가 아프다.
근시가 있어 안경을 쓰던 사람에게는 조금 다르게 나타난다. 가까운 것을 볼 때 오히려 안경을 벗는 것이 편해지는 순간이 온다. 노안은 질병이라기보다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자연스러운 노화의 과정이다. 하지만 이 자연스러운 변화를 가볍게만 넘겨서는 안 된다.
노안은 몸이 보내는 첫 번째 경보
노안 때문에 갑자기 몸 전체가 늙는 것은 아니다. 우리 몸의 노화는 훨씬 이전부터 서서히 진행되고 있다. 근육량도 조금씩 줄고 혈관의 탄력도 변하며 호르몬과 대사, 자율신경의 조절능력도 예전 같지 않게 된다.
그중 우리가 가장 분명하게 알아차리는 것이 눈일 뿐이다. 노안은 노화의 시작이라기보다 노화를 처음으로 실감하게 만드는 이정표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이 무렵부터 우리가 중요하게 살펴야 할 또 하나의 변화가 있다. 바로 수면이다.
젊을 때처럼 깊이 자지 못하고 자다가 한두 번 깨기도 한다. 아침에 일어나도 개운하지 않은 날이 늘어난다. 실제 수면 연구에서도 나이가 들수록 깊은 수면은 감소하고 수면이 얕아지며, 밤중에 깨어 있는 시간이 늘어나는 경향이 관찰된다. 이러한 변화 가운데 상당 부분은 이미 젊은 성인기에서 중년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진행된다. 이러한 수면 질의 변화는 인생의 변곡점이라 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변화다.
중년 이후에는 회복을 관리해야
우리는 하루를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몸을 쓴다. 걷고 일하고 생각하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근육과 관절을 사용하고, 음식을 소화하고, 면역계와 신경계도 온종일 외부 변화에 대응한다. 그리고 밤이 되면 잠을 자면서 휴식과 회복의 과정을 통해 낮 동안 흐트러진 것을 정돈하고 다음 날을 준비한다. 젊을 때는 이 회복력이 좋다. 조금 무리해도 한숨 자고 나면 다시 일어설 수 있다. 하지만 중년 이후에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단순하게 설명하면 소모와 회복의 수지타산이 안 맞는다는 것이다. 하루 동안 100을 소모했더라도 밤사이 100을 회복한다면 몸은 다음 날 다시 출발할 수 있다. 그런데 회복력이 떨어져 98밖에 채우지 못한다면 하루의 부족분은 겨우 2다. 당장 병이 생기지도 않고 일상생활에도 문제는 없다. 그러나 그 작은 마이너스가 매일 쌓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래서 중년 이후 건강에서 중요한 것은 무조건 몸을 아껴 쓰는 것이 아니다. 쓴 만큼 제대로 회복할 수 있는 몸을 유지하는 것이다.
수면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수면은 단순히 피곤해서 쉬는 시간이 아니다. 뇌와 신체의 여러 회복·조절 과정이 이루어지는 중요한 생리적 시간이다. 즉 노안이 시작되는 시점에 수면의 질이 나빠지는 것을 자각할 즈음, 이전까지 건강에 대하여 자신 있고 아무런 문제가 없던 사람들도 차차 몸에 이상을 보이기 시작한다. 따라서 건강에 자신 있거나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이때부터는 스스로 몸에 대한 관리가 필요하다. 노안이 시작되는 40대 중후반이 건강관리의 분기점이 되는 이유다.
노안이 왔다면 눈만 관리하지 말자
노안이 시작되면서 눈의 기운이 떨어지면 눈이 침침해지면서 피로가 드러난다. 몸의 전체 피로도가 높거나 수면 부족이 병행되면 노안은 점점 더 심해지고, 눈의 여러 가지 불편함이 드러나면서 삶의 질은 점점 더 떨어진다.
노안을 없애고 젊은 눈으로 되돌릴 수는 없지만, 관리는 필요하다. 먼저 노안과 무관하게 눈의 피로나 침침함과 같은 불편함을 한·양방의 도움으로 해소하자. 필요한 사람은 돋보기나 다초점 안경 등의 도움을 받는 것이 현실적이다. 시력 변화가 갑자기 심하거나 한쪽 눈만 유독 흐리고 시야가 가려지거나 번쩍이는 빛이 보이는 등 평소와 다른 변화가 있다면 단순히 노안이라 생각하지 말고 안과 검진을 받아야 한다.
눈 자체를 편하게 사용하는 습관도 필요하다. 가까운 곳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면 가끔 먼 곳으로 시선을 돌려 초점 조절을 쉬게 해주자. 스마트폰이나 책을 장시간 쉬지 않고 보는 것도 피한다. 밝은 환경에서 읽고, 눈이 건조하다면 의식적으로 눈을 깜박이고 휴식을 취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눈 주위를 따뜻하게 하고 가볍게 마사지하는 것도 눈의 피로를 풀어주는 생활관리로 활용할 수 있다.
사실 노안이 시작된 사람에게 가장 권하고 싶은 것은 눈 관리 하나만이 아니다. 한의학에서는 눈만 따로 보지 않고 눈 주위의 기혈순환과 전신 상태, 수면과 피로 등을 함께 살펴 침과 한약 등의 치료를 적용하기도 한다. 이렇게 생활 전체를 다시 점검해야 한다.
현재 수면이 충실한가? 식생활이 건전한가? 규칙적이고 양질의 식품을 섭취하고 있는가? 적절한 활동이나 운동을 하고 있는가? 현재 생활이 몸이 회복할 정도의 피로인가? 과도한 피로로 다음에는 충분히 회복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등등 관심을 가지고 몸을 관리해야 한다.
나는 책에서 TV로 눈을 돌렸을 때 초점이 바로 맞지 않았던 그 순간을 아직도 기억한다. 당시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슬펐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은 이제부터는 젊을 때와 같은 방법으로 몸을 쓰면 안 된다고 내 몸이 보내준 꽤 친절한 신호였는지도 모른다.
노안은 피할 수 없다. 하지만 노안을 발견한 그 날부터 무엇을 할 것인지는 선택할 수 있다. 중년의 건강관리는 늙지 않기 위한 싸움이 아니다. 조금씩 줄어드는 회복력을 돌보고, 소모보다 회복이 뒤처지지 않도록 삶의 균형을 다시 맞추는 일이다. 가까운 글씨가 흐릿해지기 시작했다면 눈만을 생각해 돋보기나 안경만을 바꾸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내 몸의 후반전을 준비할 때가 되었다는 신호로 받아들이자.
유용우 유용우한의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