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전 사람들의 길 따라걷다가 빚만 안고 돌아왔네요
나경호의 BOOK회귀선 (17) 이창희 기자(83년생) 상하이에서 충칭까지 11개 도시 23일간 걸으며 임시정부답사기 펴내 목숨을 걸었던 그들의 선택을 오늘의 언어로 함부로 소비해선 안돼 지금의 정치인 무엇을 걸고 행동하나 역사 훼손에 부끄러움 느껴야
[고양신문] 가을입니다. 어느새 아침저녁으로 바람이 달라졌습니다. 한여름의 뜨거운 날씨 속에서 맞았던 광복절이 지나고 나니, 오히려 그날을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기념일에는 너무 가까이 있어 보이지 않던 것들이, 계절이 바뀌고 나서야 조금씩 눈에 들어올 때가 있으니까요.
이번 달에는 최근 『붉은 벽돌에 독립을 새긴 사람들』이란 책을 펴낸 이창희 기자를 만납니다. 갖가지 사건과 사람을 취재해온 기자가 별안간 100년 전 사람들의 흔적을 따라 중국 대륙으로 길을 떠났습니다. 그가 만나고자 했던 임시정부의 사람들은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던 위대한 독립운동가의 모습만은 아니었습니다. 갈등하고 흔들리고 서로 다른 생각으로 부딪치면서도 완전히 갈라서지는 않으려 했던 사람들. 저는 그 모습이 이상하게 지금 우리의 삶과 닮아 있다고 느꼈습니다.
무엇이 옳은지 알면서도 쉽게 선택할 수 없고,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우리에게 그들의 이야기는 어떤 질문을 던질까요. 그리고 평생 다른 사람과 사건을 바라보던 기자는 왜 과거의 사람들을 찾아 길을 떠났을까요. 광복절이 지나고 계절이 바뀐 지금, 그가 걸었던 길과 그 길을 돌아온 한 사람의 시선을 함께 들여다봅니다.
❚요즘 하루는 어떻게 흘러가나요?
아침 일찍 일어나 스트레칭과 명상을 한 뒤 운동화 끈을 동여매고 조깅을 하면서 하루를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을 십수 년째 해오고 있습니다. 실상은 숙취에 시달리며 간신히 뜬 실눈으로 간밤에 나온 뉴스들을 훑으며 아침을 맞습니다. 기자란 직업의 특수성은 여전히 잘 모르겠고, 이 글을 읽는 수많은 직장인들과 마찬가지로 출근하고 퇴근하는 하루하루를 보냅니다. 굳이 차별점을 찾자면, 아침마다 그날 하루 동안 어떤 불확실성과 맞닥뜨리게 될지, 또 어떤 글을 써내게 될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오는 긴장감과 기대감 같은 감정들이 아직은 그리 불편하지 않습니다. 진득함과 인내심이라는 덕목을 타고나지 못한 천성을 가졌고, 그게 이 직업을 선택했던 원초적인 이유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오랫동안 기자로 일하면서 사람과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에도 변화가 있었을 것 같습니다. 사람을 취재하고 이야기를 들을 때, 예전과 달라진 점이 있을까요?
오랜 기간 시시각각 크고 작은 영향을 받고 그로 인해 달라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갖가지 위치와 상황과 장소와 타이밍 속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납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업적이든 흑역사든 무용담이든 자신만의 콘텐츠가 존재합니다. 거기엔 진실과 왜곡, 의도와 편견 따위가 뒤섞이곤 합니다. 그런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구조와 맥락을 짚어가는 과정은 제겐 늘 흥미롭습니다.
‘모든 만남은 인터뷰다’라는 유치한 좌우명 비스무리한 것을 갖고 있습니다. 술자리 친구녀석이든 오랜만에 명절에 만난 일가친척이든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대상은 예외 없이 인터뷰이가 됩니다. 질문을 만들어 던지고 대답을 듣는 과정은 초년생 기자 시절 개인적인 역량 향상을 위한 훈련법이었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몸에 밴 것 같습니다. 그렇게 사람과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끊임없이 달라지는 일상을 살고 있습니다.
❚ 현재의 사건이 아닌 100년 전 임시정부의 흔적을 따라 길을 떠나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책에서도 밝혔지만, 거창하고 원대한 그런 취지는 결코 아니었습니다. 2010년대 초중반부터 정치권을 취재하는 동안 역사란 것이 그들의 도구로 소비되는 과정을 수없이 목격했습니다. 모두가 기억하고 있듯 건국절 논란부터 위안부 합의, 국정교과서 추진, 반일 정서 확산까지 역사를 정치적으로 대하지 않는 정치인이나 정당은 지금껏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한번은 걷고 싶었습니다. 정치권에서 툭하면 소환되곤 하는 근현대사의 중요한 무대가 어떤 모습이고 그 길의 끝에서 느끼게 될 스스로의 감정이 궁금했습니다. 숭고함이나 비장함이 아예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사실 가장 핵심적인 요인은 호기심과 궁금함이었습니다. 100년 뒤 위정자들이 제멋대로 이용할 줄은 꿈에도 모른 채 무언가를 쟁취하기 위해 목숨을 던졌던 이들의 생각과 판단 같은 것들이 말입니다.
❚임시정부 사람들의 선택을 따라가면서 자신의 삶이나 선택을 돌아보게 된 순간도 있었을까요?
100년이라는 시공간적 간극은 생각보다도 컸습니다. 그럼에도 할 수 있는 여러 시도들이 있었습니다. 일부러 선택한 낡은 기차와 숙소 그리고 초라한 식사. 임정 요인들에 빙의해 상하이 뒷골목과 류저우 공습대피 경로를 직접 내달려보기도 했습니다. 유치한 노력들이었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그저 겉만 핥는 여행이 될 것만 같았습니다.
그런 시도들은 백범과 약산 같은 주요 인물들에 갇혀 있던 저의 좁은 시선을 이름이 남지 않은 많은 이들에게까지 닿게끔 이끌어줬습니다. 문서를 수발하고 정보를 수집하며, 자금을 운반하고 부엌에서 음식을 준비하는 모든 과정 동안 자신의 목숨을 걸어야 했던 이름 모를 사람들. 처음에는 역사 속에서 이름을 가진 인물들의 주변부에 있던 사람들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현장을 직접 걷고 그들의 흔적을 따라가다 보니 오히려 그런 사람들이 더 궁금해졌습니다.
❚임시정부 내부의 갈등과 분열을 바라보면서 오늘의 우리 사회를 떠올린 순간도 있었을까요?
임시정부뿐만 아니라 독립운동사 전체로 보더라도 다양한 세력과 인물 사이에서 갈등과 분열은 상당했습니다. 서로가 자신의 방식이 옳다고 믿었고, 그것을 관철하기 위해 때로는 동지에게 총구를 겨누는 것까지도 불사했던 기록들이 남아 있습니다. 해방 이후의 권력을 염두에 둔 이들의 전략적인 판단과 움직임들도 쉽게 발견됩니다. 갈등이 폭력적이고 이기적인 형태로 분출된 사례도 적지 않았습니다.
100년 전 사람들의 갈등을 보면서 오늘을 이해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오늘의 갈등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사람들은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사실을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실패하면 감옥에 가거나 죽을 수도 있었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을 마쳤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정당과 정치인들은 무엇을 걸고 행동하고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흔해빠진 정치 혐오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정치는 원래 갈등하고 부딪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자신과 진영을 위한 정치적 공방에 역사를 서슴없이 동원하면서도, 그 과정에서 역사를 훼손하고 있다는 사실에는 얼마나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상하이에서 충칭까지 23일 동안 그들의 흔적을 직접 찾아다니셨는데요. 그 여정에서 지금까지도 가장 선명하게 남아 있는 장면은 무엇인가요?
방문했던 11개 도시 어느 하나 빼놓을 수 없을 정도로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리고 10차례의 이동 역시 기억에 남습니다. 머물렀던 도시를 떠나는 아쉬움, 새로운 도시에 당도했을 때의 막막함 같은 기분들은 100년 전 그들의 심정과 숨결을 조금이나마 더듬어볼 수 있게 해 줬습니다.
그럼에도 굳이 한 곳을 꼽아 보자면 충칭의 연화지 청사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백범을 비롯한 임정 요인들이 광복 소식을 접하고 고국으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으로 단체 사진을 촬영한 곳입니다. 사실 상하이 청사 못지않게 유명한 곳인 데다, 사진으로 수없이 보아왔던 터라 아주 대단한 감상을 기대하진 않았었습니다.
하지만 그 익숙할 것만 같았던 계단에 직접 두 발을 딛고 서자, 일정 내내 제멋대로 쌓여있던 갖가지 감정들이 일거에 폭발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임정의 마지막 도시, 그리고 마지막 순간을 맞은 곳에서 이번 여정의 의미를 한참 동안 곱씹어볼 수 있었습니다.
나아가 단순히 나라를 되찾기 위한 투쟁을 넘어 해방된 조국의 체계와 토대를 마련하기 위한 노력이 이뤄졌던 것도 충칭에서 발견하고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공공의 공간에 글을 써내던 자로서 남모를 부채감을 털고자 시작한 여정이었습니다만, 오히려 빚을 한가득 떠안고 돌아오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이 책을 쓰기 전과 지금을 비교했을 때 시선에 달라진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역사는 과거를 통해 미래를 비추는 등불,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따위의 말을 신봉해왔습니다. 역사를 가벼이 여기는 말과 행동에 눈살을 찌푸리고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그런 교조적인 태도들이 모여 오늘날의 역사적 논쟁에 일조하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역사에 대한 관심은 필요하지만 그 자체가 우월감의 원천이나 타인에 대한 손가락질의 근거가 되는 것에는 결단코 반대합니다. 숭고함은 숭고하지만 숭고함이 없다고 해서 비천하게 여기는 것은 비천한 일입니다.
독립운동가들에게 존경심을 갖는다는 것은 그들을 우리보다 높은 곳에 올려놓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그들을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 내려놓는 것입니다. 배고프고 무섭고 망설이고 실수하고 갈등했던 사람들.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다만 그들 앞에 놓인 어느 한순간 자신의 목숨을 걸어야 하는 선택의 순간이 찾아왔고, 그들은 그 선택을 했습니다. 그렇게 바라볼 때 비로소 그들의 선택이 얼마나 대단했는지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순간 100년 전의 이야기는 더 이상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