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267년간 잊힌 겸재 정선의 묘소...쌍문동서 찾았다
문헌 고증, 현장 분석, 고지도 복원으로
잊혀진 겸재 묘 위치 구체적으로 ‘특정’
9년 전 고양신문 ‘청담동 답사’에서 인연
산서연구자-미술사학자 연구 성과 하나로
“겸재 정선 탄생 350주년 기리는 쾌거”
[고양신문] 2017년, 고양신문 유경종 기자가 작성한 기획기사를 통해 고양시 북한산 자락 사기막골 청담동(淸潭洞)과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 고증 현장이 지역 독자들에게 깊은 울림으로 전달된 적이 있다. <묵객과 화가들 사로잡은 사기막골의 숨은 비경, 청담동(淸潭洞), 2017년 9월 15일자 기사 참조> 당시 겸재가 남긴 청담동 일대 그림의 학술적 고증을 위해 현장으로 모셨던 분이 바로 미술사학자 이태호 교수였다.
당시만 해도 나는 이태호 교수께서 수십 년 전부터 겸재의 묘소를 찾으려 답사해 오셨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운명처럼, 내가 2018년에 발표했던 겸재 묘소 추적 글(『와운루』 2호)을 2025년에야 서로 공유하게 되면서 비로소 두 사람이 동일한 역사적 과제를 품고 발로 뛰어왔음을 극적으로 확인하게 되었다.
올해 2026년은 거장 겸재 정선(謙齋 鄭敾, 1676~1759) 선생이 태어나신 지 35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다. 84세로 세상을 떠나신 후 267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의 그림은 한국 회화사의 최고 봉우리로 우뚝 섰지만 정작 그가 영면한 묘소는 세월 속에 잊혀져 있었다.
이야기의 시작은 1979년 이태호 교수가 「광주정씨세보」에서 ‘양주 해등촌면 계성리 간좌(艮坐)’라는 한 줄의 지명을 최초로 찾아내면서부터였다. 그러나 급격한 도시화로 연구는 오랜 정체기를 겪었고, 2025년 나와 이 교수와의 재회가 계기가 되어 호전겸재문화재단(이사장 김병희)의 첫 학술 현창 사업으로 선정되면서 마침내 40년 묵은 고증 연구의 마침표를 찍게 되었다.
도시화로 사라진 옛 ‘계성리(鷄城里)’의 공간적 범위를 확정하기 위해 2018년 『와운루』 2호 기고 당시 조선 후기 「호구총수」(1789)부터 「양주군 각면 호구실수성책」(1907), 「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1912·1932), 조선총독부 지형도(1917·1927), (1964), 내시 족보 「양세계보」(1805) 등 행정 및 지적 문헌을 샅샅이 추적했다. 그 결과 덕성여대, 효문고부터 쌍문교에 이르는 구릉지를 포함한 영역이 원래의 계성리 범위였음을 밝혀냈다.
이러한 문헌 고증과 현장 분석을 바탕으로 2018년 글 앞부분에서 정립했던 5가지 핵심 조건은 다음과 같다.
첫째, 손자 정황의 양주송추도는 장흥 송추가 아닌 도봉산 아래 겸재 가문의 묘역도이다. 둘째, 그림 속 둥근 묘 4기는 겸재 정선, 장남 만교, 차남 만수, 손자 정재의 묘이다. 셋째, 해등촌면 계성리는 현 덕성여대·효문고~쌍문교 부근이다. 넷째, 묘 4기 좌측 물줄기는 105m봉에서 발원해 우이천으로 흐르는 지류 수계이다. 다섯째, 정선 등의 묘는 서남향인 '간좌(艮坐)'이다.
결과적으로 이 5가지 가설 조건에 완벽히 부합하는 유일한 공간이 바로 ‘동익미라벨아파트 1동 뒤편 산줄기’였다.
특히 네 번째 수계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 발로 뛰는 실증 조사를 감행했다. 「준용하천 정기기본계획보고서」(1983) 등 하천 관리 문서를 대조하며, 아파트 단지와 골목길 바닥에 파묻힌 우수관 뚜껑과 하수관로 암거(暗渠) 구조를 하나하나 따라가며 복개된 물길의 동선을 찾아냈다. 또한 2017년 박기성 현 한국산서회 회장, 이충직 『사람과 산』 현 발행인 등 동지들과 흙더미 속 비석을 바로 세우며 ‘가의대(嘉義大)’ 비편과 파묘 흔적을 확인하여 유력 후보지로 최초 제안했었다.
그리고 겸재 탄생 350주년을 맞아 출간된 「겸재 정선의 묘소위치 고증 조사보고」(2026년 9월)에서는 1915년 일제강점기 지형도(1:25,000)와 현대 GIS 수치지도(1:5,000)를 레이어로 중첩(Overlay)하는 수치지형학적 분석 기법을 정식 도입했다. 100년 전 원지형과 수치지도를 중첩하여 양주송추도 속 산줄기와 대조한 결과, 그림 속 여러 봉우리 중 핵심 봉우리인 ‘105m봉’(수치지도상 103.3봉)을 정확히 특정하고, 좌측 옛 고갯길인 ‘해등로’의 동선과 겸재 가문 묘역의 정밀한 좌표 위치를 수치상으로 완전하게 규명해 냈다.
이 정밀한 GIS 과학적 실증 결과를 바탕으로, 이태호 교수께서는 특유의 회화적 안목과 필치를 더해 옛 계성리 일대와 겸재 묘역의 공간 배치를 일목요연하게 감상할 수 있는 멋진 추정도로 재현해 주셨다.
이로써 2018년의 문헌 고증과 5가지 조건, 그리고 2026년 최종 보고서의 1915년 고지도 GIS 중첩 복원이 하나로 결합하여 겸재 정선 가문의 묘역 위치는 ‘서울특별시 도봉구 쌍문동 동익미라벨아파트 뒤편 산줄기(105m봉 동남 지능선 사면)’로 최종 확정되었고, ‘쌍문동 동익미라벨아파트 인근 산책로 입구(우이천 계성교 동북쪽 인근)’에 역사 안내판 설치를 정식 제안하기에 이르렀다.
겸재를 기억한다는 것은 그가 남긴 명작을 감상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그가 거닐었던 복한산 청담동의 골짜기, 그가 바라보았던 산세, 그리고 마침내 안식에 든 자리까지 복원해 낼 때 비로소 한 위대한 예술가의 삶은 우리 곁에 완전하게 살아 숨 쉬게 된다. 9년 전 고양신문과 함께 했던 북한산 청담동 답사 현장에서 시작되었던 작은 인연이 열매를 맺어 탄생 350주년이 되는 올해, 267년 동안 잊혀졌던 겸재의 진짜 안식처를 역사 앞에 온전히 되돌려주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