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허브 유치, 자본 아닌 기획으로 승부해야”

UN 글로벌 AI 허브 유치 전략을 묻다 김유열 EBS 사장 고양의 킹핀은 한강 수변 친환경 UN타운 EBS 지식·AI 역량, 고양의 강력한 자산 AI 영화제·평생교육 등 4대 프로젝트 제안 “보여주기 아닌 전투적 자세·실행력 필요”

2026-09-30     박상준 기자

[고양신문] 정부가 추진 중인 ‘UN 글로벌 AI 허브’ 유치전이 전국 지자체의 각축전으로 번지고 있다. 고양시도 범시민추진위원회를 출범시키며 10만 서명운동에 돌입하는 등 유치에 발빠르게 나서고 있다. 하지만 막대한 자본과 산업 인프라를 앞세운 타 지자체와의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차별성 있는 기획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본지는 ‘UN 글로벌 AI 허브 유치 전략’ 릴레이 인터뷰의 두 번째 순서로, 고양시 일산동구 장항동에 위치한 한국교육방송공사(EBS)의 김유열 사장을 만나 현실 진단과 유치 해법을 들었다. 김 사장은 언론인 출신으로 과거 '노자와 21세기', '위대한 수업' 등 방송사의 굵직한 기획을 성공시킨 콘텐츠 기획 전문가다.

김유열 EBS 사장이 고양시 장항동 본사 집무실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김 사장은 고양시의 UN 글로벌 AI 허브 유치 전략에 대해 "물량 공세가 아닌 치열한 기획의 싸움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BS 제공

자본·물량 공세로는 한계…승부처는 ‘기획’

김유열 사장은 “성남(판교)의 IT 대기업 밀집도, 수원·화성의 반도체 자본, 광주 등 지방의 막대한 국비 지원 물량과 비교할 때 고양시는 물리적 리소스(자원) 면에서 뚜렷한 열세에 있다”라고 고양시의 현재 여건을 진단했다. “지금은 철저하게 기획의 싸움이지, 리소스의 싸움으로는 승산이 없다”는 것이다.

김 사장은 10개의 볼링 핀을 한 번에 쓰러뜨리기 위해 급소인 5번 핀을 노리는 ‘킹핀(Kingpin) 전략’을 유치전의 핵심으로 꼽았다. 국제기구의 의사결정권자들이 최종 입지를 선정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길 결정적 요소(Critical Point)를 찾아내 공략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는 “유네스코(UNESCO)나 세계보건기구(WHO) 같은 UN 산하 기구들은 이미 자체적인 AI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으며, 현대의 AI는 초고속 네트워크로 전 세계 어디서든 연결이 가능하다”며 “단순히 고양시에 데이터센터를 짓거나 관내 특정 기관의 기술력을 내세우는 것만으로는 국제기구를 움직일 수 없다”고 짚었다.

김유열 사장이 '킹핀(Kingpin) 전략'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그는 "국제기구 종사자들도 결국 쾌적한 주거와 근무 환경을 원하는 인간"이라며 정주 여건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EBS 제공

한강 수변에 ‘친환경 UN 타운’ 조성

김 사장이 지목한 ‘킹핀’은 기술적 명분 이면에 있는 인간의 본원적 욕망, 바로 ‘정주(定住) 여건’이다. 국제기구가 들어온다는 것은 세계 각국의 외교관과 전문가들이 고양시로 이주해 생활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는 “외국인 종사자들은 회색빛 빌딩 숲이 빽빽한 판교나 공장 중심의 산업도시보다는, 자연과 어우러진 쾌적한 주거와 업무 환경을 원할 것”이라며 “미국이나 유럽인들의 지리적 감각에서 고양시는 서울 도심과 별개의 도시가 아니라 사실상 ‘서울시 고양구’ 수준의 동일한 생활권”이라고 분석했다.

이에 대한 구체적 해법으로 그는 한강 수변을 활용한 ‘북유럽형 친환경 UN 타운’ 조성을 제안했다. 한강과 일산호수공원 등 고양시의 빼어난 자연환경을 무기로 삼아, 환상적인 디자인의 인텔리전트 빌딩과 최고급 레지던스, 생태 공원이 결합된 매력적인 복합 타운을 기획하자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공간적 매력을 파격적인 조건으로 제안하는 조감도를 제시한다면 국제기구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다”며 “만약 UN 기구 유치에 차질이 생기더라도, 이처럼 잘 기획된 매력적인 타운은 국내외 유수의 다른 글로벌 기업들을 끌어들이는 강력한 영구 자산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디어 혁신과 EBS의 선제적 AI 도입

고양시 장항동에 자리한 EBS 본사는 지역의 거대한 지식 아카이브이자 강력한 AI 협력 파트너다. 김 사장은 미디어 산업 내에서 EBS가 선도적으로 추진 중인 AI 비즈니스 성과를 공개하며, 고양시와의 시너지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최근 EBS는 국내 방송사 최초로 100% 생성형 AI 기술을 활용해 『AI 고전, 역사를 바꾼 100책』 시리즈 등 정규 프로그램을 주 12회 편성하며 ‘융단폭격’식 노출 전략을 펼치고 있다. 특히 AI의 고질적 문제인 환각(거짓 정보)을 막기 위해 고문헌의 원문을 논문 각주처럼 삽입하는 엄격한 팩트체크를 거친다. 그 결과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 편은 유튜브에서 170만 뷰를 기록하는 등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또한 생성형 AI를 애니메이션 제작에 도입해 기존 외주 제작 대비 원가를 15분의 1에서 최대 40분의 1 수준으로 대폭 절감하는 내부 검증을 마쳤으며, 향후 글로벌 오픈형 AI 애니메이션 플랫폼 구축까지 구상 중이다.
 

고양시 맞춤형 4대 문화·교육 프로젝트 제언

이러한 막강한 인프라에도 불구하고 고양시와 EBS의 실질적 협력은 다소 아쉬운 실정이다. 김 사장은 포천시가 EBS와 협력해 140억원 규모의 폐교 리모델링 사업을 추진하고 10곳의 자기주도학습센터를 유치한 사례를 언급하며, 고양시가 행정적 칸막이를 허물고 실행에 옮길 수 있는 4가지 실전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첫째, 고양 국제 AI 영화제 창설이다. 매년 봄 열리는 꽃박람회와 균형을 맞추기 위해 가을철 일산호수공원을 무대로 AI 상업 영화제를 개최한다. 23년 역사의 EBS 국제다큐영화제(EIDF) 노하우와 AI 영상 기술을 결합하고, 시의 마중물 예산과 외부 투자를 연계해 UN AI 허브 유치의 랜드마크 축제로 육성할 수 있다.

둘째, EBS 평생교육 오픈 스튜디오(10시 광장) 활용이다. 카이스트 김정호 교수를 비롯한 국내 최고 석학들의 EBS 평생교육 강좌를 고양시 관내 공공시설에 조성된 상설 세트에서 정기적으로 공개 녹화한다. 외부 강사 섭외 비용의 4분의 1도 안 되는 예산으로 고양시민들에게 최상급 교양 강좌를 무상 제공할 수 있다.

셋째, 일산호수공원 유리관 도서관 및 사계절 황톳길 조성이다. 호수공원 숲속에 자연과의 교감을 상징하는 튜브식 투명 유리관 형태의 북카페·도서관을 건립한다. 또한 기존 황톳길의 겨울철 결빙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바닥에 온수 파이프를 매설한 ‘사계절 맨발 걷기 코스’와 ‘산상형 입체 미로’를 구축해 수도권 청년과 노년층을 모두 아우르는 체류형 명소로 탈바꿈시킨다.

넷째, EBS 자기주도학습센터 확대다. 고양시 내 교육 인프라 소외 지역을 중심으로 전자책(e-Book)과 디지털 교육 자원을 무료로 제공하는 EBS 자기주도학습센터를 전격 도입해 지역 내 사교육비 경감과 학부모 정주 여건을 개선한다.

김유열 사장은 “할리우드 액션식의 보여주기 행사로는 국제기구를 유치할 수 없다”며 “진짜 고양시가 유치하겠다는 전투적 자세와 확고한 목표 의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AI 허브 구축에 필수적인 여러 난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국회 과방위 소속 지역 정치인들과의 전략적 공조가 필수적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