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 물이 전하는 네 가지 얼굴
조창현의 물따라가보는고양 (15) 물로 보는 영화 ‘기생충’에서 ‘트루먼쇼’ ‘그랑블루’ '흐르는 강물처럼'까지 계급‧공포‧생명‧포용으로 읽는 영화속 물의 상징
[고양신문] 날 물로 보지마. 1999년 당시 롯데칠성의 ‘2% 부족할 때’ 라는 음료 광고에 나온 대사이다. 자신을 하찮게 보지 말라는 뜻의 말을 이용해 음료에 과즙이 들어갔다는 것을 강조한 광고 카피는 당시 히트를 쳤다. 이 글에서 나는 영화를 물로 보려고 한다. 물은 영화에서 절대 하찮지 않고 핵심적인 상징이나 메시지를 주는 주요 소재이기 때문이다. 지구 표면의 70%가 물이고 물이 없으면 생명도 없으니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영화에서 물이 자주 나오는 건 어찌보면 매우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제작비라는 관점에서 들여다보면 수중촬영이나 수상촬영은 훨씬 비용이 많이 들고 후반작업도 많이 필요한 힘든 촬영이기에 감독이 그것을 감행한다는 것은 그만큼 물을 통해 꼭 보여주고 싶은 것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이라는, 지구상에서 가장 보편적이면서도 독특한 물질이 주는 영화 속 상징이나 메시지에 관한 이야기이다.
먼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은 계급을 상징한다. 이를 가장 극명하게 드러낸 영화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다. 영화 속에서 쏟아지는 비는 계단을 타고 흘러내려가서 결국 반지하인 송강호의 집을 침수시킨다. 영화는 수직적인 구조를 강조하여 보여주며 반지하 집으로 흘러들어 이들의 터전을 휩쓸어버리는 물을 통해 계급적 차이가 초래하는 비극을 느끼게 해준다. 이 영화의 홍수 장면은 고양아쿠아촬영 스튜디오에서 찍었는데 수중촬영 전문스튜디오에서 많은 비용을 쓰며 공들여 찍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신이 영화의 주제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중요한 장면임을 알게 해준다.
두 번째로, 물은 사람들에게 공포이기도 하다. 풍랑이 몰아치는 바다, 거대한 해일, 둑을 무너뜨리고 밀려드는 강물,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 등은 인류에게 두려움을 안겨주었다. 그래서 풍랑이나 홍수에 대한 두려움이 큰 바닷가, 섬, 강가에는 예로부터 하늘과 신에게 비는 주술적 행사가 많았다. 고양시의 주요 전통무형문화유산인 송포호미걸이의 경우도 한강 하구인 송포지역이 예로부터 한강의 범람으로 큰 홍수 피해를 입어 농사를 망치기기 쉬운 곳이라 신에게 풍년을 기원하는 의식으로 발달했다고 한다.
물이 주는 여러 가지 공포 중 사람이 깊은 물에 빠지는 것은 수영을 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죽음의 공포를 안겨준다. 이러한 물이 주는 공포를 영화 내에서 잘 활용한 작품이 짐 캐리가 열연한 <트루먼 쇼>이다. 영화 속 완벽한 세트장을 트루먼이 빠져 나가지 못하게 하기 위해 연출자는 트루먼이 어릴 때 아버지가 바다에 빠져 죽는 장면을 만들어낸다. 결국 트루먼은 바다에 대한 공포에 맞서 작은 돛단배를 타고 항해를 시작한다. 사람들이 가진 한계에 대한 두려움을 물을 통해 효과적으로 보여준 작품이었다.
세 번째로 물은 자연(생명)과 근원을 상징하며 편안함을 준다. 엄청난 공포를 주기도 하는 물은 일상적인 공간에서는 편안한 휴식을 준다. 새로 짓는 아파트 단지에 실개천이 흐르고 작은 연못이 있는 친수공간이 필수적인 요소로 등장한 것은 이 때문이다. 인간이 물을 통해 편안함을 느끼는 것은 물이 만물의 근원이자 생명의 원천이라는 것과 뗄 수 없을 것이다. 어머니의 뱃속에서도 우리는 모두 물속에 있지 않았는가. 물이 주는 편안함과 근원적 생명의 이미지를 잘 표현한 영화가 바로 1988년 작품 <그랑블루>이다. 이 영화는 산소공급없이 심해로 내려가는 프리다이버들의 도전과 우정을 통해 물(바다)에 대한 동경과 자연과 마침내 하나가 되고자 하는 근원적인 열망을 보여주고 있다.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 될 깊은 바다가 다이버들, 특히 주인공인 자크에게는 고요하고 평온한 어머니의 자궁과도 같은 곳으로 느껴진다. 돌고래처럼 심장 박동마저 변한 자크는 그 자신이 자연화되는 과정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내가 아는 스쿠버다이버들도 물속에서 세상 근심이 다 사라진 것 같은 편안함을 느낀다고 했다.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에서 여울지는 강물 속에서 플라이피싱을 하는 동생 폴(브래드 피트)을 보는 형 노먼은 “그 순간 나는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완벽함을 목격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동생은 강둑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술품처럼 떠있었다”라고 말하며 강물과 하나가 된 동생을 묘사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비 맞으며 달리기를 할 때 자연과 하나됨을 느낀다. 그러고 보니 비도 물이 아닌가.
마지막으로 물은 모든 것을 포용한다. 해불양수(海不讓水)라는 말이 있다. 바다는 어떤 물이든지 사양하지 않고 다 받아준다는 뜻이다. 물론 요즘엔 환경오염으로 바다도 받아줄 여력이 없으니 방사능 폐수나 미세 플라스틱은 사양해야 마땅하다. 물의 포용성을 잘 보여주는 영화가 <셰이프 오브 워터>다. 말을 못하는 장애인과 괴상한 수중 생물이 만나 언어와 생김새를 초월하여 서로를 포용하게 하는 매개체가 바로 물이다. 또한 온갖 더러운 것을 다 받아주던 강의 오염을 상징하는 오물신을 목욕시켜 돌려보내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물이 가진 포용력 즉, 자연정화능력에도 한계가 있음을 인간들에게 경고하고 있다.
영화 속 물이 주는 상징은 사실 우리 인간들이 물에 비추어 본 자신들의 모습과 감정에 다름아니다. 계급도, 공포도, 안식도, 포용도 모두 사람의 일이니 우리는 결국 영화 속 물의 이미지를 통해 우리 스스로를 들여다 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