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고등은 며칠째 켜져 있었다
박미숙의 그림책 세상 네팔 재난도 수십년 전부터 경고등 작고 힘없는 존재들 먼저 위험해져
[고양신문] 며칠 전부터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져 있었다. 그래도 차는 평소처럼 잘 나갔다. 급한 일만 끝내고 정비소에 가야지 했다. 그런데 오늘 오전, 차가 덜덜거리더니 화면에 문구가 떴다. 엔진에 문제가 있으니 차를 멈추라고. 놀라서 길가에 차를 세웠다. 견인차를 기다리며 계기판의 불빛을 보았다. 며칠 동안 저 경고등은 차를 봐 달라고 했다. 나는 그때마다 '지금은 바쁘니까', '아직은 괜찮은 것 같으니까', '내일 하자'며 미뤘다.
『100곰』(나비야씨 글·그림, 비룡소)은 숫자를 세는 그림책이다. '100곰'은 '백곰'으로도 읽힌다. 책장을 넘길수록 빙산 위의 곰은 늘어나고, 곰들이 딛고 선 빙산은 작아진다. 곰은 많아지는데 설 자리는 줄어든다. 숫자가 100에 이른 다음 장에서 이야기는 0으로 끝난다. 빙산도, 곰도 남지 않는다. 숫자를 세는 동안에도 얼음은 녹고 있었다.
마리아호 일러스트라호의 『도시에 물이 차올라요』(김지은 옮김, 위즈덤하우스)는 어느 아침 도시의 바닥이 조금 젖는 데서 시작한다. 동물들은 신경 쓰지 않는다. 장화를 신으면 그만이고, 어떤 동물은 물 위에서 서핑을 즐긴다. 물이 조금 더 차오르자 작고 힘없는 동물들이 먼저 위험해진다. 타마린 원숭이가 무슨 일이 생긴 것 같다고 외치지만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다. 힘센 동물들마저 움직이기 어려워진 뒤에야 모두 모여 이야기를 나눈다. 물이 빠지지 못하게 막고 있던 마개를 빼면 되었다. 다만 혼자서는 해낼 수 없었다.
책을 덮고 나서 타마린 원숭이가 자꾸 생각났다. 원숭이는 몸이 작아서 물이 차오르는 걸 가장 먼저 알았다. 큰 동물들이 괜찮다고 여긴 건 물이 아직 자기 무릎 아래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8월 26일, 네팔 랑탕 리룽에서 해발 5000미터가 넘는 곳의 암벽이 무너졌다. 암벽과 빙하가 함께 계곡으로 떨어졌고, 얼음과 돌과 물이 뒤섞인 흐름이 순식간에 아래 마을들을 덮쳤다. 수력발전소 공사 현장에서 일하던 한국인들도 연락이 끊겼다. 국제 연구진은 온난화 하나로 이번 붕괴를 설명할 수는 없다고 하면서도, 빙하가 얇아지고 바위틈의 얼음이 녹으면서 산이 더 불안정해졌을 가능성을 짚었다. 2015년 대지진으로 약해진 지반도 함께 작용했다고 보았다.
무너지는 데는 몇 분이면 충분했지만, 그 지역의 빙하는 수십 년 동안 얇아지고 있었다. 재난 직전 여름에는 이례적인 고온이 이어졌다. 이 소식을 읽으며, 빙하가 녹고 있다는 이야기를 나도 여러 번 들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때마다 걱정했지만 곧 다음 소식으로 넘어갔다. 당장 내 생활에 지장이 없으면 급한 일부터 끝내도 된다고 여겼다. 계기판의 불빛을 며칠 동안 바라보면서도 정비소에 가지 않았던 것처럼.
다만 이번 재난은 알아챘더라도 몸을 피하기 어려울 만큼 빨랐다. 강물의 높이를 살피는 기존 경보로는 높은 산 위에서 벌어지는 일을 미리 알기 어려웠다. 연구진은 빙하와 얼어붙은 땅, 산비탈의 변화를 더 면밀히 살피고, 국경을 넘어 정보를 나눠야 한다고 제안했다. 위험을 지켜보는 사람이 있고, 그 소식을 전할 방법이 있어야 경고도 들린다. 계기판의 불빛도 누군가 그 자리에 달아 두었기에 내 눈에 들어올 수 있었다.
내 차가 멈춘 일을 네팔의 재난에 직접 견줄 수는 없다. 내게는 견인차를 부르고 차를 맡길 정비소가 있었다. 네팔이 내보내는 온실가스는 산업화된 나라들에 비하면 아주 적다. 그런데도 산이 무너질 때 먼저 물에 잠긴 건 그곳 마을들이었다. 온난화를 키워 온 쪽과 그 피해를 먼저 겪는 쪽은 대개 같지 않다.
『도시에 물이 차올라요』에서 마개를 뺀 것은 모두의 힘이었다. 하지만 물이 차오른다는 걸 처음 알린 것은 타마린 원숭이였다. 지금 우리 곁에서 '무슨 일이 생긴 것 같다'고 말하는 이들은 누구일까. 아직 내 무릎 아래서 찰랑이는 물이 누군가에게는 이미 턱밑까지 차올랐을지도 모른다.
출처: World Weather Attribution(WWA), 「Rapid Warming in the Himalaya Exacerbates Geohazard Cascades Beyond Adaptation Limits」, 2026년 9월 17일.
한국인 연락 두절: 외교부 발표를 인용한 연합뉴스 보도, 2026년 8월 27일.
네팔 온실가스 배출: Al Jazeera, 「Climate change had major role in triggering Nepal floods, scientists say」, 2026년 9월 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