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아닌 순간을 더 오래"...예술로 되찾는 어르신 일상

『집에서 치매 부모 돌보는 법』 펴낸 박창훈 연세케어센터요양원장

2026-10-07     이로운 기자

물망초 싱어즈·건강화폐 등 독창적 돌봄
가족 삶 지키는 현실적 치매 간병 지침

최근 방영된 교양·정보 프로그램 '해피라이프'에 치매 돌봄 전문가로 출연한 박창훈 연세요양원 대표원장(가운데). 이날 박 원장은 "치매라고 해서 어르신의 일상이 멈추는 것은 아니다"라며 스스로 해내는 경험과 가족들의 지혜로운 대처를 강조해 큰 공감을 얻었다. MBN '해피라이프' 방송 화면 캡처

[고양신문] 최근 MBN '해피라이프' 방송 출연과 신간 『집에서 치매 부모 돌보는 법』 출간으로 화제를 모은 치매 돌봄 전문가가 고양시 이웃이다. 일산동구 문봉동에서 연세케어센터 요양원(이하 연세요양원)을 이끄는 박창훈 대표원장 이야기다.
박 원장은 최근 가정 돌봄의 실전 지침을 정리한 책을 펴내며 현장의 생생한 경험을 사회와 나누고 있다. 이 책의 핵심 메시지는 '치매에 걸린 부모님을 지키면서 가족의 삶도 잃지 않는 법'이다. 

요양원에 입소하는 수많은 어르신과 그 가족들이 이미 집에서 지칠 대로 지쳐 죄책감을 안고 찾아오는 모습을 지켜봐 온 것이 집필의 계기가 됐다. 박 원장은 "가족이 간호사, 요양보호사, 사회복지사 역할까지 도맡아 모든 짐을 홀로 짊어지려다 보면 결국 번아웃에 빠지고 관계마저 무너진다"며 "지금 가족에게 필요한 것은 뒤늦은 자책이 아니라 가족 모두를 지켜낼 분명한 기준과 외부 도움을 나누는 지혜로운 대처"라고 강조했다. 

현장의 치매 돌봄 지침을 담은 신간 『집에서 치매 부모 돌보는 법』을 들어 보이고 있는 박창훈 연세케어센터 요양원 대표원장.

책에서 강조한 가족 간병의 지혜는 박 원장이 요양원 현장에서 실천하는 돌봄 철학과도 고스란히 맞닿아 있다. 장소가 가정이든 시설이든 핵심은 어르신을 수동적인 환자로 가두지 않고 스스로 삶의 주체가 되도록 돕는 데 있다. 박 원장은 "치매 어르신이라고 해서 24시간 내내 치매 상태에 머무는 것은 아니다"라며 "치매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순간들을 조금이라도 더 늘리고, 잔존 기능을 살려 일상을 이어가도록 돕는 것이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연세요양원에서는 어르신들의 잔존 능력을 깨우는 독창적인 프로그램들이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치매 어르신 합창단 '물망초 싱어즈'다. 물망초의 꽃말인 '나를 잊지 말아요'에서 착안했다. 박 원장은 "한 어르신이 '내가 기억을 잃는 것은 괜찮지만, 세상과 가족들이 나를 잊어버리는 것이 두렵다'고 말씀하셨다"며 "그 두려움을 덜어드리고 사회에서 계속 기억되는 존재로 남게 해드리고자 합창단을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합창단과 미술반은 입소 어르신들이 오디션을 거쳐 참여할 정도로 자발적인 열기가 뜨겁다.

연세요양원 어르신들이 동아리 활동을 통해 직접 만든 뜨개질 작품과 공예품들. 하단에는 어르신들이 내부 경제활동에 사용하는 가상화폐인 '건강화폐'가 놓여 있다.

요양원 내부 가상화폐인 '건강화폐'와 자체 개발한 생활동작 훈련 교구도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어르신들은 동아리 활동이나 물건을 판매해 건강화폐를 벌고, 이를 매점에서 간식을 구매하는 데 진짜 돈처럼 사용하며 경제활동의 주체성과 효능감을 되찾는다. 단추 채우기와 지퍼 잠그기, 신발끈 묶기 등을 연습하는 액자형 교구 역시 일상 자립 훈련을 돕는 실질적인 장치다. 박 원장은 이러한 문화예술과 일상 훈련이 실제 인지 기능 개선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체감하고 있다. 그는 "노래 한 곡 외우는 데 두 달 걸리던 분이 다음 곡은 훨씬 빠르게 익히고 사람을 더 또렷이 기억한다"며 "향후 국책 과제나 학술 연구를 통해 예술과 자립 활동이 치매 완화에 미치는 영향을 과학적 데이터로 입증해보고 싶다"고 밝혔다.

그가 그리는 궁극적인 목표는 치매 어르신들이 시설의 울타리에 갇히지 않고 지역사회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에이징 인 플레이스(Aging in Place)'다. 박 원장은 "일본의 '치매 카페'처럼 고양시 내 유휴 공공시설이나 거점 공간에 상설 갤러리를 조성해, 어르신들이 바깥으로 나와 미술 수업을 받고 시민들과 차 한잔 나누며 소통할 수 있기를 바란다"며 "초고령사회를 눈앞에 둔 고양시가 어르신들의 문화적 돌봄에 더 많은 관심과 행정적 지원을 보내주길 기대한다"고 당부했다.

일산동구 문봉동에 자리한 연세케어센터 앞에서 박창훈 대표원장이 미소를 짓고 있다.

 

『집에서 치매 부모 돌보는 법』 뒷표지. '치매에 걸린 부모님을 지키면서 가족의 삶도 잃지 않는 법'이라는 책의 핵심 메시지가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