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혜 칼럼] 좌표 찍기

2026-10-08     신지혜 기본소득당 최고위원
신지혜 기본소득당 최고위원

[고양신문] 노이즈마케팅이 제대로 통했다. 적어도 일 년에 극장가는 일이 한 손에 꼽히는 내게는 그랬다. 세간의 화제인 <암살자(들)>을 직접 보고 싶었다. 출연 배우의 집까지 쫓아가고, 감독을 국정감사 자리에 부르려 하고, 상영 중단을 외치게 만든 이유를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고 나니 질문이 더 늘었다. ‘역사 왜곡’을 부르짖는 사람들은 과연 영화를 보긴 했을까. 이 영화는 이전에 제작된 시사 프로그램과 다큐멘터리에서 나온 자료를 근거로 창작했음을, 영화 말미에 밝힌다. 논란을 예상하고 미리 증거를 남기는 것처럼 말이다. 

영화 속 한 경찰은 억울하게 누명 쓴 동료를 구명하기 위해 진실을 좇았다. 진실을 사명 삼아 국민에게 투명하게 정보를 제공하려 한 기자들은 수사 기관의 발표와 일본 정부의 발표가 다른 현실을 질문했다. 이들이 진실을 파헤치려 할수록 겁박당하고 심지어 물리적 폭력 피해도 겪었던 당시의 상황을 그린 영화였다. 시사 프로그램과 다큐멘터리가 나왔어도 여전히 알려지지 않았던, 정의와 진실을 향해 고군분투했던 사람들의 여정을 담은 그런 영화였다.

그런데 당시 자료를 근거로 질문을 던진다는 이유로 영화에 ‘패륜’ 꼬리표를 붙이고, 출연한 배우에게는 ‘북한상’이라는 낙인을 찍는다. 심지어 한 마디의 영향력이 일반 국민과 다른 국회의원이 말이다. 그 댓글은 마치 ‘이 사람을 공격하라’는 좌표 찍기처럼 작동해, 배우 집 앞에서 집회가 열리게 했고 각종 위협에 시달린 배우는 스마트워치마저 착용하게 됐다. 정작 그 국회의원은 자신의 말 한마디가 낳은 폭력을 보며 자신의 영향력을 뿌듯해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경솔했다는 유감의 표현 한마디 없이 여전히 영화가 역사 왜곡하고 있다며 큰소리치고 있으니 말이다.

‘좌표 찍기’ 자체도 문제지만, ‘좌표 찍기’가 가리고 있는 것에 주목한다. 한 배우에게 모든 공격이 집중되는 탓에 주연급 배우들이 대거 특별출연해 영화의 흥미를 높였다는 소소한 사실이 묻혀 아쉽다. 무엇보다 영화 속 1989년 국정감사 장면이 시사하는 의미를 곱씹게 한다. 

이 장면에서 당시 감식계장이 국정감사에서 당시에는 밝히지 못했던 탄환의 의문을 제기한다. 그러자 당시 감식계장에게 자신의 입맛대로 보고서를 작성하라며 겁박했던 검사가 15년이 지나 국회의원이 되어 다시 한번 감식계장에게 큰소리를 친다. 이 장면에서 두 가지 생각이 스쳤다. 하나는 당시에 밝히지 못했던 진실을 마음에 품고 있다가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이들이 물러난 뒤 그것을 밝히려 애쓴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군부 독재의 입맛대로만 수사 결과를 발표했던 이들이 이후에도 승승장구하며 진실을 가로막는 일에 일조했으리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역사 왜곡’이라 울부짖는 이들에게 묻고 싶은 질문이 남는다. 암살자가 하나였는지, 여럿이었는지는 차치하더라도 질문하는 사람을 겁박하고 폭행하며 고문했던 군부 독재의 역사는 ‘자유민주주의’였다고 보느냐고, 거기에는 왜곡이 없었다고 보느냐고. 적어도 내게는 암살에 누가 어디까지 가담했는지보다, 진실을 좇는 사람들을 향한 폭력과 억압의 역사가 더 쓰라리게 다가왔다. 신격화된 이의 치부였던 독재의 아픈 역사는 아랑곳하지 않느냐는 질문이 좌표 찍기에 가려진 채 여전히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