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AI 허브 유치…시민 열망 넘어 전략·실행력 입증해야

고양시·고양연구원 주최 고양 글로벌 AI 허브 포럼 시민 제안·10만 서명으로 유치전 본격화 의료·바이오 AI 특화 전략으로 차별화해야 외국인 정주 여건·AI 수용성 개선 과제로 도시계획·재정 분담 청사진 마련 시급

2026-10-09     박상준 기자
8일 성사동 창조혁신캠퍼스성사에서 열린 '고양 글로벌 AI 허브 포럼' 전경. 고양시 제공

[고양신문] 정부의 ‘UN 글로벌 AI 허브’ 입지 선정 공청회를 앞두고 고양시가 본격적인 유치전에 돌입했다. 고양시와 고양연구원은 지난 8일 덕양구 성사동 창조혁신캠퍼스성사에서 ‘고양 글로벌 AI 허브 포럼’을 개최했다. 이날 포럼은 지역사회의 유치 열망을 확인하는 자리였지만, 다른 광역지자체와의 치열한 경쟁에서 앞서기 위해 고양시가 풀어야 할 과제도 드러났다.
포럼에는 민경선 고양시장, 신인선 고양시의회 환경경제위원장 등 지자체 관계자와 이왕준 국제병원연맹(IHF) 차기 회장(명지의료재단 이사장), 허희영 한국항공대학교 총장 등 학계·전문가, 시민 100여 명이 참석했다.

상향식 유치 운동의 명암

환영사를 하고 있는 민경선 고양시장. 고양시 제공

고양시의 글로벌 AI 허브 유치 추진은 관 주도가 아닌 시민들의 제안과 범시민 10만 서명운동에서 촉발됐다. 민경선 시장은 환영사에서 “글로벌 AI 허브 유치운동은 시민 제안에서 출발해 국회, 시의회, 지역 기관의 뜻을 모아 범시민추진위원회 출범과 서명운동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공직사회의 수동적 태도를 지적하며 “시민들이 열심히 하는데 공무원들은 그만큼 안 하냐며 쓴소리를 했다”고 밝혔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는 고양시의 강점이지만, 유치라는 실질적인 성과를 거두려면 열망을 뒷받침할 구체적인 논리와 실행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의료·바이오 AI’로 차별화해야

'AI 시대의 글로벌 리더십과 국제협력'을 주제로 기조연설 중인 이왕준 명지의료재단 이사장.

기조연설에 나선 이왕준 국제병원연맹(IHF) 차기 회장은 고양시의 전략 부재를 지적하며 ‘선택과 집중’을 통한 차별화를 주문했다. 이 회장은 “고양시가 모든 분야를 다 가져갈 수는 없다”며 “고양시 내 국립암센터,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명지병원 등 검증된 의료 인프라를 지렛대 삼아 글로벌 AI 허브 중에서도 보건의료 분야를 우선 선점하는 앵커링 전략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이 회장은 오는 10월 하순 서울에서 국제병원연맹(IHF)이 주관하는 세계병원대회와 정부·세계보건기구(WHO)가 공동 주최하는 월드바이오서밋이 잇따라 열린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글로벌 AI 헬스케어 서울 선언’이 채택될 예정인 만큼, 고양시가 선도적으로 글로벌 AI 병원 리더십 센터를 구상하고 WHO 보건 AI 기능을 유치해 국제적 규범 설정에 나서야 한다”고 구체적인 전략 방향을 제시했다.

전문가들 “현실 직시하고 경쟁력 입증해야”

이어진 패널토론에서는 고양시 외부의 시각에서 바라본 도시 경쟁력의 한계와 개선 과제가 제기됐다.

홍진욱 전 대사가 좌장을 맡아 진행된 패널 토론. 강성진 교수, 김종엽 단장, 문형렬 대표, 안준선 학장 등이 고양시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있다.

강성진 고려대 교수(한국경제학회장)는 고양시 내부의 시각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강 교수는 “고양시의 인프라가 훌륭하다고 자부하지만, 막상 외국인 학생이나 연구자가 고양시에 오면 현금 없는 버스를 타지 못하고 외국 신용카드로 기차표조차 끊기 힘든 것이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경쟁 도시인 송도국제도시 등을 언급하며 “단순히 인프라가 조성돼 있다는 수준을 넘어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외국인 정주 여건 개선 방안을 지자체 차원에서 선제적으로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종엽 건양대 의료데이터연구단장은 AI 기술 도입에 대한 시민들의 저항, 이른바 ‘러다이트(기계파괴) 비율’을 핵심 평가지표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김 단장은 “실리콘밸리조차 AI 도입 저항 비율이 85%에 이른다”며 “현재 고양시민들이 유치 운동에 적극적인 만큼, 실제 고양시민의 AI 수용성(AX) 수준이 얼마나 높은지 평가 자료로 확보해 설득의 근거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문형렬 AI뮤직픽처스채널 대표는 국내 AI 인재 기반의 한계를 지적하며 주변 산업·연구 인프라와의 연계 필요성을 강조했다. 문 대표는 “우수한 인재들이 해외 빅테크로 유출되는 상황에서, 고양시는 일산에 밀집한 EBS, SBS, CJ ENM 등 미디어 인프라와 인접한 마곡의 LG전자 연구 인력 등을 연계해야 한다”며 “저작권 문제 등을 실험할 수 있는 실질적인 AI 미디어 테스트베드 구축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최영준 경남대 교수(전 통일부 차관)는 단순한 유치를 넘어 고양시만의 문제 해결 역량을 입증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최 교수는 “국제기구가 입지할 때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은 자신들의 고유 임무를 완수할 수 있는 여건”이라며 “고양시가 가진 접경지역이라는 한계를 역이용해, 남북 간 감염병 대응이나 환경 문제 등을 AI로 시뮬레이션하고 해결하는 평화도시의 비전을 구체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도시계획안과 재정 분담 청사진은?”

이날 객석에 자리한 시민들은 전문가 못지않은 날카로운 질문으로 고양시 행정의 준비 부족을 지적했다.

객석에서 자료를 검토 중인 참석자들. 이날 포럼에서는 시민들의 날카로운 질의가 쏟아졌다.

이영아 전 고양신문 대표는 “올해 하반기에서 내년 상반기면 입지가 선정되는데, 현재 고양시에는 킨텍스 주변 어디에 건물을 짓고, 주거 대책을 위해 어떤 주택을 공급할 것이며, 재정은 어떻게 분담할 것인지에 대한 기본적인 도시계획안조차 없다”고 비판했다. 또한 “경쟁자가 광역지자체인 만큼, 경기도가 나서서 추진 주체가 돼야 하는 것 아니냐”며 기초지자체 차원의 대응이 갖는 한계를 지적했다.
이에 대해 패널로 나선 강성진 교수는 “아직 중앙정부 차원에서도 AI 허브의 실체가 완전히 구체화되지는 않은 상황”이라며 “시민의 지적대로 고양시 차원에서 제공할 수 있는 인프라와 공간 계획을 빨리 마련해 유치 의지를 구체적으로 밝히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답변했다.
고양시는 오는 14일 정부의 입지 선정 공청회에서 공개되는 기준에 따라 공모 준비에 속도를 낼 계획이다.

포럼이 끝난 후 주요 내빈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고양시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