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돌과 초기 백제 돌무덤…임진강변서 만나는 옛 흔적들

유경종 기자의 역사문화탐방 ⑪ 연천 학곡리 지석묘와 적석총

2026-10-10     유경종 기자

장남~백학~미산, 연천 서남쪽 강변 3개면 
경순왕릉부터 숭의전까지, 역사 유적 곳곳
한국 전쟁 ‘마지막 격전지’ 각인된 사미천 
둑방과 벽화가 반겨주는 정겨운 마을 산책

학곡리 제방길에서 바라본 임진강. 아프리카돼지열병 차단용 펜스를 타고 올라간 덩굴이 꽃을 피웠다. 멀리 보이는 산은 감악산이다. 

[고양신문] 경기도 연천군의 서북쪽은 군사분계선 너머 북녘땅과, 동쪽은 강원특별자치도 철원군과 경계를 맞대고 있다. 수도권에 있지만, 심리적 거리가 멀게 느껴지는 이유다. 하지만 막상 찾아가보면 연천 아래쪽 동네는 고양에서 꽤나 가깝다. 장남면, 백학면, 미산면 등 서남쪽으로 길게 이어진 3개 면이 임진강을 경계로 파주시와 이웃하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장남과 백학 주민들은 사실상 연천군 중심지보다 파주시 파평면, 적성면과 더 밀접한 생활권을 이루고 있다. 임진강을 가로지르는 장남교, 비룡대교 두 다리가 양쪽 도시를 이어준다. 고양에서 한 시간 남짓 달리면 탁 트인 풍광과 한적한 여유를 선물해주는 마을, 연천군 서남부 3개 면으로 가을 나들이를 떠나보자.

연천읍보다 파주가 더 가까운 마을들 

먼저 아래 지도를 살펴보자. 이번 코스의 시작점인 ①경순왕릉과 도착점인 ⑨숭의전은 앞선 역사문화탐방 연재에서 이미 다뤘던 곳이다. 각각 신라 천 년, 고려 오백 년의 유구한 역사가 마지막 장을 닫은 장소다. 삼국시대 국경을 맞댄 고구려와 신라가 뺏고 뺏기는 각축을 벌였던 군사 요새 ③연천호로고루는 추후 ‘임진강변 고구려성’이라는 별도의 주제로 다룰 계획이다. 또한 ②고랑포구역사공원과 ④임진강 황포돛배는 나들이 일정에 함께 둘러보면 좋을 만한 장소로 덧붙였다. 사실 여기까지는 관광지로서도 꽤 알려진 곳들이다. 

하지만 지도 중간에 표시된 ⑤사미천, 그리고 학곡리마을의 ⑥고인돌 ⑦벽화 ⑧적석총은 거의 알려지지도 않았고, 찾는 이도 드물다. 연천을 방문하는 이들이 대부분 임진강 남쪽을 따라 뻥 뚫린 37번 국도(율곡로~동서로)를 이용하기 때문에 강 북쪽의 마을들은 별로 지나갈 일이 없다.
어쩌면 그래서 더 매력적이기도 하다. 아주 먼 옛날 임진강가에 터 잡고 살았던 사람들의 흔적, 그리고 오늘날 강변 농촌마을을 지키는 주민들의 소박한 정취를 천천히 만나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사미천교에서 바라본 사미천. 북한땅에서 발원해 임진강으로 흘러드는 지천이다.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모래톱 하천 

장남면에서 372번 지방도를 따라 백학면을 향해 가다 보면 사미천교가 나타난다. 다리 건너 작은 쉼터에 차를 세우고 내려다보면, 제법 골이 깊은 하천이 다리 아래를 흐른다. 휴전선 너머 황해북도 장풍군에서 발원해 연천으로 내려와 장남면과 백학면의 경계를 가르며 흐르다가 임진강에 합류하는 지천, 사미천(沙尾川)이다. 

길게 열린 물줄기를 따라 푸르른 녹지가 이어진 풍광이 멋지다. 천변에 우뚝 세워진 취수장 건물을 제외하면 인공적인 건물이 거의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멀리 감악산 능선도 조망된다.

사미천은 모래를 많이 실어나르기 때문에 이름에 모래(沙)가 들어갔다. 전체 길이가 62㎞에 이른다고 하니, 고양시 창릉천(22㎞)보다 세 배 가까이 길다. 문헌을 보면, 상류 산지에 숲이 우거지고 여러 지류들이 합류하는 덕분에 예로부터 ‘큰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시내’였다고 한다. 동네마다 장수내, 와룡천, 지곡천, 임강개울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는 사실은 사미천이 지나는 마을마다 요긴한 물길이었음을 방증한다.

비룡대교가 조망되는 임진강변. 한국전쟁 전적지 안내보드가 세워져있다. 

하지만 오늘날 사미천에 각인된 기억은 ‘한국 전쟁의 마지막 격전지’다.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1953년 여름, 임진강변은 서부전선의 가장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다. 특히 사미천을 사이에 두고 국군과 유엔군(미국·영국·오스트레일리아 등)이 중국인민지원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여 오늘날의 휴전선을 사수했다. 양측 모두 수많은 희생을 치렀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천변 둑방길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너무도 평화로워서 비극적 역사를 회고하는 마음이 더 먹먹하다.

하늘을 떠받고 있는 현무암 고인돌 

국도를 따라 백학면(百鶴面) 전동리와 노곡리를 지나면 학곡리(鶴谷里)다. 주소 표기에 학(鶴)자가 두 번이나 들어가는 걸 보아, 예부터 임진강변을 따라 흰 깃 눈부신 학들이 찾아오는 동네인가보다. 물론 과거에는 백로와 두루미를 구분하지 않고 백학(白鶴)으로 표기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학곡리 마을 안쪽에는 삼면이 이웃집 담장으로 둘러싸인 작은 공터에 ‘연천 학곡리 고인돌’(경기도기념물)이 서 있다. 과거의 자료사진을 보면, 고인돌이 아예 담장 한가운데에 꼼짝없이 갇혀 있었는데, 그나마 국가유산정비를 하며 지금처럼 최소한의 보전·관람 공간을 확보한 것 같다. 크기는 가로·세로 각각 2.6m, 높이는 1m 남짓이라 ‘아담하고 친근하다’는 느낌을 준다. 덮개돌은 구멍이 숭숭 뚫린 현무암인데, 연구자들은 “돌을 다듬고 곳곳에 성혈(性穴)을 판 흔적이 완연하다”고 말한다. 

화강암을 다듬은 굄돌 위에 현무암 판석을 얹은 학곡리 고인돌.

오각형 형태로 다듬어진 굄돌은 가운데가 움푹하게 들어갔다. 기자가 방문한 날 오전에 마침 비가 내려 물이 고였다. 검은 현무암 수반에 담긴 물이 거울처럼 하늘을 반사시키고 있다.    

한자로는 지석묘(支石墓)로 표기하는 고인돌은 형태에 따라 또다시 탁자식과 기반식, 개석식 등으로 나뉜다. 학곡리 고인돌은 나란히 세워진 두 개의 굄돌(支石)이 평평하고 넓은 덮개돌을 떠받치고 있는 탁자식(卓子式)이다. 반면 고양시민들에게 친근한 ‘지렁산 고인돌’(국사봉 지석묘군)은 굄돌 없이 지하의 묘실을 덮개돌이 누르고 있는 개석식(蓋石式)이다. 나란히 비교해 보면 형태적 차이가 확실하다. 

잘 알다시피 고인돌은 청동기시대 정치권력을 지닌 지배층의 무덤이다. 한반도의 청동기시대가 기원전 1500년 경에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으니, 적어도 300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사람 살기 좋은 강변 마을을 지킨 셈이다. 

움푹 패인 판석에 물이 고여있는 고인돌. 마치 하늘을 떠받드는 거대한 수반처럽 보인다. 

다양한 유물·전설 전해준 거대한 돌무지

고인돌에서 불과 약 700m 떨어진 곳에는 또 다른 유적인 ‘연천 학곡리 적석총’(漣川 鶴谷里 積石塚, 경기도기념물)이 자리하고 있다. 지석묘의 우리말 이름이 고인돌이듯, 적석총의 우리말 이름은 ‘돌무지무덤’이다. 무덤의 원래 크기는 길이가 무려 25m 정도로 추정되지만, 지금은 상당 부분 파괴되어 축소된 형태로 남았다고 한다. 그래도 생각했던 것보다 꽤 규모가 크다. 

삼엄한 접경지역인 탓이었을까. 임진강변 돌무지무덤들의 본격적인 발굴·조사는 꽤 늦게야 진행됐다. 2000년대 초 발굴 당시 이곳 학곡리 적석총에서는 총 4기의 무덤방과 함께 낙랑계 토기와 다수의 유리 구슬, 철제 낫, 청동 방울 등이 발견됐다고 한다. 학자들은 초기 백제와 관련된 무덤일 것으로 추정한다. 한강과 임진강으로 이어지는 한반도 중원을 고대국가 삼국 중 백제가 가장 먼저 차지했었다는, 좀처럼 실감나지 않는 아득한 옛 역사를 잡풀에 뒤덮인 돌무지들이 들려주고 있다.

초기 백제시대의 흔적을 보여주는 학곡리 돌무지무덤(적석총).

돌무덤이 있는 마을 이름은 돌마돌 마을이다. 설명문에는 ‘마을에는 마귀할멈이 치마폭에 돌을 날라 적석총을 쌓았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으며, 주민들은 이 적석총을 ’활짝각담‘으로 부르며 신성하게 여겨왔다’고 적혀있다. 활짝각담이 무슨 뜻인지 호기심이 일었지만, 더 이상의 정보는 찾기 어려웠다.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마을, 학곡리 

이왕 왔으니 학곡리 마을도 천천히 둘러보자. 마을 산책 포인트는 두 가지다. 하나는 적석총 앞뒤로 임진강을 따라 1㎞가량 이어진 제방도로다. 차들은 조금 떨어진 큰길로 달리기 때문에 초지와 모래톱, 현무암 절벽이 번갈아 나타나는 시원한 강풍경에 온전히 한눈을 팔고 제방도로를 걸을 수 있다. 앞서 사미천에서 멀찍이 조망되던 감악산 능선이 정면으로 다가와 듬직한 실루엣을 자랑한다.

학곡리 둑방길에서 바라본 임진강의 고즈넉한 풍경.

두 번째 포인트는 학곡리 마을 곳곳에서 만나는 예쁜 벽화다. 골목을 빼곡히 채색한 도시 구도심 벽화와 달리, 담벽에 그림이 그려진 농촌 가옥이 띄엄띄엄 등장하는 풍경이 재미도 쏠쏠하고 운치도 있다. 특히 긴 창고 건물을 캔버스 삼아 그린 학곡리 마을지도와 마을갤러리 벽화는 여러 장의 사진을 찍게 만들 정도로 멋졌다. 

아득한 옛날 한반도에 살았던 인류가 가장 먼저 정착생활을 시작한 ‘명당’이 바로 임진강변이었지만, 전쟁과 분단은 이 일대를 시간이 가장 천천히 흐르는 마을로 묶어버렸다. 그러니 학곡리를 산책하려면 그 땅의 시간에 내 걸음의 속도를 맞추는 게 좋다.  

임진강과 학곡리마을을 창고 건물의 정면과 측면에 이어 그린 멋진 벽화. 
학곡리 창고갤러리에 그려진, 평화를 염원하는 그림. 
도로변에 놓여있는 학곡리 마을 표지석.
평화누리길 코스가 학곡리를 지난다. 
평화누리길, 경기둘레길, DMZ평화의길 안내 리본이 사이 좋게 걸려있는 임진강 둑방길.
사미천변의 유일한 인공 건물인 취수장 시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