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 숙원 이룬 사회연대경제기본법 제정…고양시, 조례 정비 서둘러야
13년 표류 끝, 8월 국회 문턱 넘어 5개 부처로 흩어진 정책 일원화 사회연대금융 등 제도적 기반 마련 고양시도 기본계획·공공위탁 확대 시급
[고양신문] 지난 2년여간 대한민국 사회적경제 생태계는 유례없는 ‘칼바람’을 견뎌야 했다. 2023년 9월 고용노동부가 ‘제4차 사회적기업 기본계획’을 발표하며 직접 육성 기조에서 물러선 이후 관련 예산은 60% 가까이 삭감됐고, 기획재정부의 협동조합 지원 예산은 90% 이상 깎여나갔다. 예비사회적기업 신규 지정 지원이 중단되고 창업·성장을 돕던 중간지원조직마저 잇따라 통폐합되면서 지역 현장의 기업들은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고사 위기에 처했던 현장에 반전의 계기가 마련됐다. 지난 8월 20일, 2014년 제19대 국회에서 처음 발의된 이래 13년 동안 정쟁 속에 묶여 있던 ‘사회연대경제기본법’이 마침내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었다. 공포 후 6개월 뒤 본격 시행을 앞둔 지금, 현장에서는 “지자체 재정이 바닥난 상황에서 이 법마저 없었다면 풀뿌리 생태계는 완전히 무너졌을 것”이라는 안도와 함께 향후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13년 표류 끝에 제정된 기본법은 무엇을 바꾸며, 재정자립도 저하와 지역경제 침체라는 이중고를 겪는 고양시에는 어떤 과제를 던지고 있을까.
행안부 일원화, 5년 법정계획 수립
이번 기본법 제정이 가져온 가장 핵심적인 변화는 ‘정책 거버넌스의 일원화’다. 그동안 국내 사회적경제 영역은 개별 법률에 따라 5개 부처로 쪼개져 운영되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사회적기업은 고용노동부, 협동조합은 기획재정부, 마을기업은 행정안전부, 자활기업은 보건복지부, 소셜벤처는 중소벤처기업부가 각각 관할했다. 주무 부처마다 지원 기준과 평가지표, 사업 서식이 제각각인 탓에 현장 기업들은 공모 때마다 극심한 혼선을 겪었고 중복 수혜나 정책 사각지대 논란도 끊이지 않았다.
이에 기본법은 주무 부처를 ‘행정안전부’로 일원화하고 행안부 내에 정책을 총괄하는 ‘사회연대경제국’을 가동하도록 규정했다. 아울러 대통령 직속 ‘사회연대경제발전위원회’를 신설해 범정부 차원의 종합 조율 기능을 맡겼다.
정책의 영속성을 담보하는 법적 장치도 갖췄다. 과거에는 정권 교체나 단체장의 성향에 따라 육성 사업 예산이 하루아침에 깎이거나 사업 자체가 폐지되는 일이 빈번했다. 반면 기본법은 행안부 장관이 5년마다 ‘사회연대경제 발전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관계 중앙행정기관과 광역·기초지자체가 매년 연차별 시행계획을 의무적으로 마련하도록 규정했다. 단체장의 자의적인 판단이나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관련 정책을 임의로 축소하거나 백지화할 수 없도록 제도적 방파제를 세운 셈이다.
사상 첫 ‘사회연대금융’ 제도화
자금 조달 방식과 공공시장 접근성도 획기적으로 개선된다. 먼저 기본법은 현장 기업들이 겪어온 만성적인 자금난을 해소하기 위해 ‘사회연대금융’의 법적 근거를 최초로 명시했다. 행안부 장관이 사회연대금융 중개·전담기관을 지정하고, 재무적 성과뿐 아니라 사회적 가치를 종합 평가해 융자·보증·투자를 집행하는 금융 인프라가 조성된다.
실제로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2027년도 예산안을 살펴보면 행정안전부 사회연대경제 추진체계 구축 예산 449억원을 포함해 사상 처음으로 약 480억원 규모의 사회연대금융 예산이 본예산에 편성됐다. 기획재정부의 협동조합 지원 예산 역시 2026년 29억원 수준에서 2027년 818억원으로 무려 28배 급증했다. 중소벤처기업부 또한 ‘성장형 사회연대경제 활성화 방안’을 통해 성장 단계별 맞춤 지원과 모태펀드를 통한 임팩트 자금 공급 확대를 공식화했다. 과거 800~900개 팀 규모에서 중단됐던 청년 창업육성 사업도 연간 550개 팀 선발 규모의 '사회적기업 창업 지원 사업'으로 재개되며 중앙정부 차원의 정책자금 활로가 다시 열리고 있다.
판로 지원과 인프라 접근성 역시 대폭 확대된다. 공공기관은 사회연대경제기업 제품과 용역의 ‘우선구매 목표 비율’을 구매계획에 의무적으로 반영해야 한다. 특히 돌봄·환경·보건 등 복합 공공서비스를 민간에 위탁할 때 사회연대경제기업을 우선 고려할 수 있는 조항과 함께 국·공유재산 사용료 감면 및 수의계약 근거가 법률로 보장되면서 공공시장 진입 문턱이 한층 낮아졌다.
고양형 조례 정비와 위탁 전환 시급
이러한 제도적 변화는 사회연대경제와 관련된 고양시 행정에도 전환점이 될 전망이다. 현재 지방정부의 곳간이 전례 없는 한파를 맞고 있는 가운데, 고양시 또한 자체 세수 기반 부족과 경기도의 긴축 재정 기조로 어려움을 겪는 중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본법 제정은 고양시 사회적경제 정책의 지속성을 담보할 ‘법적 안전판’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우선 기본법에 따라 기초자치단체의 육성 책무가 명문화된 만큼, 고양시는 법 시행 시점(공포 후 6개월)에 발맞춰 관내 조례를 기본법 체계에 맞춰 전면 개정해야 한다. 기존의 분절된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마을기업 지원 조례를 '사회연대경제 육성 및 지원에 관한 조례'로 통합·정비하고, 시 단위 5개년 발전 기본계획 수립에 시급히 나서야 하는 상황이다.
아울러 단순 시비 보조금 지급에 머물던 관행에서 벗어나, 고양시정의 주요 난제를 사회연대경제와 결합하는 구조 전환도 요구된다. 급속한 인구 고령화에 따른 통합 돌봄 수요, 초등 늘봄학교 서비스 확충, 생활폐기물 감축 및 자원순환 체계 구축 등을 행정이 막대한 혈세를 들여 직접 해결하기보다, 관내 사회연대경제 주체에 과감히 공공위탁을 열어줘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제도적 안전망이 복원되고 대규모 예산이 다시 편성된다고 해서 장밋빛 미래가 저절로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현장에서는 정책자금의 단순 수혜에 안주하던 과거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사회적경제 영역에서 21년간 활동하며 이재명 정부 국정과제 수립 및 현장 인큐베이팅을 주도해 온 서경준 대표는 지난 6일 고양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가 주최한 특강에서 뼈아픈 진단을 내놓았다. 서 대표는 “물이 다시 들어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현장의 배가 튼튼하게 준비되어 있지 않다면 그 물은 우리를 띄우는 것이 아니라 덮쳐서 침몰시킬 것”이라며 “역량과 준비 없이 받는 지원금은 성장의 기회가 아니라 독이 된다”고 지적했다.
때문에 서 대표는 2027년도 대규모 정책자금 집행을 앞두고 관내 기업들이 점검해야 할 3대 생존 원칙으로 △소셜 미션의 선명성 △비즈니스 모델(수익 구조) 확립 △‘점-선-면’으로 이어지는 로컬 네트워크 구축을 제시했다.
“IT 혁신 분야를 제외하면 하늘 아래 완전히 새로운 아이템은 없다. 한 해 80만개 이상의 기업이 문을 닫는 냉혹한 시장에서 ‘우리 기업이 누구의 어떤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가’라는 소셜 미션이 뾰족하지 않으면 지원 사업 심사는 물론 시장에서도 살아남을 수 없다. 특히 사회적경제 기업 10곳 중 7~8곳은 가치만 앞세울 뿐 ‘어떻게 지속적으로 돈을 벌 것인가’라는 현실적 수익 모델을 제시하지 못한다. 고객, 가치, 수익원, 전달 채널이라는 비즈니스의 4대 뼈대가 서지 않은 기업에 지원금을 줄 심사위원은 더 이상 없다.”
서경준 대표가 지목한 위기 극복의 핵심 열쇠는 ‘연대(네트워킹)’다. 이날 강의에서 서 대표는 2011년 고용노동부의 사회적기업 인건비 재정 지원이 처음 종료되던 당시를 회고했다. 당시 언론은 ‘지원금이 끊기면 80~90%가 폐업할 좀비기업’이라고 혹평했으나, 실제 전수조사 결과 인증 사회적기업의 생존율은 85%에 달했다. 개별 기업이 고립되지 않고 지역 안에서 서로의 자원을 나누고 밀어주는 풀뿌리 연대망이 작동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서 대표는 “사업은 개별 기업의 외로운 분투로 완성되지 않는다. 한 기업이 찍은 '점'이 다른 협동조합의 역량과 연결되어 '선'이 되고, 관내 대학(라이즈 사업 등)과 행정 인프라가 결합해 '면'을 이룰 때 대형 공공 프로젝트를 수주하고 자립할 수 있다”며 “위기 때마다 일감을 나누고 손을 잡아줄 수 있는 촘촘한 지역 네트워크가 구축되어야만 외부 정책 풍파에 흔들리지 않는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