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몸과 움직임에서 세계의 질서를 읽어내다

이갑수의 예술한자(4) -儿(어진 사람 인), 入(들 입), 八(여덟 팔)에 관한 명상 하늘과 땅, 사물의 구조를 지나 대뜸 사람을 앞장세우는 옥편 儿, 入, 八에 새겨진 삶의 기본 원리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의 두 눈 세상속으로 들어가는 사람의 두 발 세상을 읽어내는 사람의 마음

2026-10-12     이갑수 궁리출판 대표
사람은 가만 제자리에만 있지 못하고 세상의 비밀을 찾아 나선다. 직관적으로 인(ㅅ)은 사람이 어디로 적극적으로 걸어가는 모습이다.

[고양신문] 둥근 지구가 납작한 네모로 보이는 것, 태양이 뜨고 달이 지는 것. 인간의 눈은 두 개이면서도 진실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하고 늘 풍경한테 속는다. 그런 간격과 거리를 감안하면서, 짐짓 착각인 줄 알고도 착각 속에 살아가야 하는 게 또한 사람의 재미난 운명이다. 이런 객관적 사실을 밀착해서 담아내야 하는 언어로서의 한자는 단순한 기호가 아니다. 마구잡이로 그린 그림은 더더구나 아니다. 이 세상의 물질이 만드는 물체, 그 물체들이 모여 만드는 개념과 사연들. 그 사이 빈틈이 품고 있는 말 없는 말들까지도 포착하여 신통(神通)한 문자를 만들어낸다. 여기에는 인간이 살아가는 기본 원리가 무척 깊숙하게 들어 있다. 이러니 한 글자마다 귀신도 울고 갈 그런 경지가 아닌가. 부수를 배열한 옥편은 하늘과 땅, 사물의 구조를 지나 어느 대목에 이르면 대뜸 사람을 앞장세운다. 어찌 되었든 사람의 눈, 사람의 마음을 통해서 이 세상을 파악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10. 儿(어진 사람 인) : 사람 人을 옆에 세우면 변(亻)이 되고, 아래에서 두 다리로 받치는 꼴이 儿이다. 별똥별이 떨어지며 붙박이별로 반짝이는 밤하늘을 휘휘 젓듯, 사람은 가만 제자리에만 있지 못하고 세상의 비밀을 찾아 나선다. 우리말도 한 글자가 힘이 세다. 리을 받침의 말들을 보라. 글, 달, 돌, 물, 불, 별, 말 등등. 세상으로 부드럽게 흘러들고 섞여든다. 자동차가 바퀴를 달고 활발히 교통(交通)하듯, 사람 儿을 발처럼 달고 전개하는 글자들을 본다. 元/兄/光/先/充/兒.
*元(으뜸 원) = 사람 몸에서 머리를 특히 강조한 글자. 兀(우뚝할 올)에 一(한 일)을 얹은 모양이다. 사람의 머리, 곧 위쪽에 있는 것에서 처음, 시초는 물론 근원과 바탕을 나타낸다. 1등의 의미도 있다. 주역의 元·亨·利·貞에서는 만물이 시작되는 근원적 생명력으로 해석되며, 중국의 화폐인 위안화를 표시하는 글자.
*兄(맏 형) = 口(입 구)에 儿이 결합한 모습이다. 갑골문에서는 하늘을 향해 입을 크게 벌리고 축문(祝文)을 읽는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본다. 兄은 본래 제사를 주관하는 연장자를 뜻하다가 '형'이나 '맏이'로 넓어졌다. 말과 밥이 드나드는 입(口)을 받드는 모습.
*光(빛 광) = 火(불 화)와 儿이 결합했다. 사람의 머리 위에 불이 있어 빛이 나는 모습을 그린 것. 이 세계에서 변하지 않는 건 딱 두 가지다. 변한다는 사실과 빛의 속도. 상대성이론에 따르면 빛의 속도만 일정하며, 공간과 시간은 그 관계 속에서 변한다. 머나먼 허공을 달려온 빛은 힘의 근원이기도 하고, 모든 물질의 최종 모습이기도 하다. 단단한 것들은 모두 지나가고 사라진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사라질까. 먼지를 거쳐 다시 지구로 돌아와 세상을 비추는 빛에 힌트가 있지 않을까.
*先(먼저 선) = 止(발 지, 갑골문에서는 '가다'의 뜻)와 儿의 결합. 발끝이 몸의 가장 앞에 있기에 먼저, 앞이라는 뜻으로 이어진다. 너무 많이도 말고 한 발짝만 앞서라는 말을 듣고 자란다. 先生(선생)이란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인데, 공부뿐만 아니라 행동에서도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하기에 많은 어려움을 자처(自處)하신 분들.
*充(채울 충) = 育(기를 육)의 윗부분, 곧 거꾸로 선 갓난아이의 모양에 儿이 붙은 글자로 풀이한다. 사람의 몸이 잘 자라 속이 단단히 차오른다는 뜻이고, 여기서 내용이 가득하다는 뜻으로 발전했다. 모든 게 넉넉하다는 충분(充分)도 여기에서 나온다.
*兒(아이 아) = '아이'나 '젖먹이'를 뜻하는 글자로, 儿 위에 아직 덜 아문 두개골의 숨구멍(정수리)을 그린 모양이다. 아직 천문(天門)이 열려 있는 아이의 머리를 표현한 것. 인간은 직립하면서 언어가 가능해졌다고 한다. 옹알이를 하다가 이(齒)가 나고 발음이 또렷해지는 과정을 헤아려보면, 열린 머리를 인 채 두 다리로 선 이 글자가 새삼 예사롭지 않다.

11. 入(들 입) : 사람 人은 두 사람이 서로 기댄 것이라고 흔히 말한다. 중국 인민일보(人民日報)의 활달한 제호를 보라. 한 사람이 두 발로 성큼성큼 걷는 모습도 人에는 있다. 직관적으로 보면, 人은 사람이 어디로 적극적으로 걸어가는 모습이다. 이 人을 구성하는 두 획의 방향을 슬쩍 반대로 맞바꾼 듯한 글자가 入이다. 본래 入은 동굴이나 천막의 입구를 본뜬 글자로 본다. 밖으로 나가던 방향을 안으로 들어오도록 되돌린 듯 절묘하다. 入/內/全/兩.
*入(들 입) = 우리말 '들다'는 '밖에서 속이나 안으로 향해 가거나 오다'라는 뜻이다. 안과 밖. 몸을 밑천으로 살 수밖에 없는 사람은 자신을 기준으로 안팎을 구분한다. 사실 이 세상이란 중간에 무슨 벽이라도 있어 안팎이 단호히 구별되지 않는다. 차라리 그것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아닌 듯 그런 듯 유연하게 이어진다. 둘 사이에 있는 건 오로지 '나'뿐 아닌가. 24절기의 하나인 입춘은 入春이 아니라 立春이다. 사람이 봄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봄이 우리 곁에 나란히 서서 시작한다는 것. 자연과 시절(時節)을 인간 위주가 아니라 그 자체로 독립적으로 대우한다는 생각이 저 한자에는 담겨 있다.
*內(안 내) = 冂(멀 경, 덮개)과 入(넣다)이 합친 글자. 덮개 속에 넣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어느 공간이나 범위 안에 들어감을 말한다. 그러나 그렇기만 할까. 많은 사람으로 붐비는 다방. 지금 문을 열고 들어가는 어떤 이는 세상 속의 한 내실이 아니라 세상 바깥에 매달린 한 난간으로 나간다는 느낌을 가질 수도 있으리라.
*全(온전할 전) = 入과 玉(불순물이 없는 구슬)이 결합한 글자. 오늘날에는 入 아래에 王을 쓰는 꼴이다. 온전하다, 갖추어지다, 흠이 없다라는 뜻을 가졌다. 귀한 보물을 삿갓 같은 入으로 덮어 안에서 안전하게 보호하는 모양이다. 이러니 완전히 전부 온전한 것.
*兩(두 량) = 같은 것 둘이 나란한 모양에서 비롯된 글자로, 두 마리 말을 매는 멍에를 본뜬 것. 대등한 관계의 '둘'이나 '짝'을 뜻한다. 세상의 사물들은 대칭을 통해서 좌우 균형을 이룬다. 결코 일방적이지 않다. 옛날 지배계급이었던 양반은 兩班이다. 문반(文班)과 무반(武班)의 둘 아우르는 말이기에. 

12. 八(여덟 팔) : 양편으로 갈라져 서로 등진 모양. 본래는 '나누다'라는 뜻이었으나, 그 뜻은 分(나눌 분)에 넘겨주고 八은 여덟이라는 숫자(가차)로 쓰인다. 부수로서의 八은 겨드랑이에서 양쪽으로 나란히 나온 팔이라기보다는 두 발이 되어 좌우를 튼튼히 받드는 형국이다. 公/六/共/兵/其/典.
*八(여덟 팔) = 일(1)부터 구(9)까지 아라비아 숫자를 발음할 때, 팔은 가장 시원하고 단호한 맛이 있다. 어디로 팍 터지는 듯한 소리. 단일 숫자로는 가장 큰 수인 구(9) 앞에서 바람이라도 잡는 듯 한번 큰소리치는 걸까. 七顚八起(칠전팔기)란 '여러 번 실패하여도 굴하지 아니하고 꾸준히 노력한다'는 뜻. 사실 일곱 번 넘어지면 일곱 번 일어나는 게 맞지만, 일어나는 것을 한 번 더 강조했기에 말맛이 더 살았다.
*公(공평할 공) = 八(여덟 팔)자와 厶(사사로울 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厶는 사사로운 것을 나타내는 글자로, 公에 사사롭다는 뜻이 들어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공평, 공공 등의 공적인 것을 뜻하는 公에 사사로운 사적인 뜻이 이리도 가까이에 있다니, 놀랍다. 厶를 위에서 꼼짝하지 못하도록 가두고 누르면서 공평함을 구현하려는 것일까.
*六(여섯 륙) = 집이나 양손의 손가락을 펴 보인 모양이라고 한다. 六을 직관적으로 보면 어떤 뚜껑 아래로 두 발이 성큼 들어가는 듯한 기운이 느껴진다. 여섯이란 무엇일까. 국어사전에는 이처럼 밋밋하고 궁색하게 풀이한다. '다섯에 하나를 더한 수'.
*共(함께 공) = 공손하다, 정중하다, 함께라는 뜻을 표현한 글자다. 두 손으로 정중하게 한 폭의 울타리(龷)를 같이 받들고 있는 모양이다. 함께 지키고 가꾸어야 할 저 공공의 기준선을 함부로 넘지 말자는 뜻일까. 
*兵(군사 병) = 斤(도끼 근)과 廾(두 손으로 받들 공)이 합친 글자. 무기를 손에 들고 적과 맞붙는 모양. 병사, 무기, 싸움을 뜻한다. 살벌한 단어지만 부엌의 칼로 훌륭한 요리를 하듯 도끼는 문학적인 은유로도 쓰인다. "한 권의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라고 카프카가 말할 때의 그것.
*其(그 기) = 곡식을 고르는 도구인 ‘키’를 양손으로 잡고 있는 모습을 본뜬 상형문자. 무엇을 한정하고 그것을 지시하기도 하는 대표적인 허사(虛辭)이다. 모자가 얼굴은 아니지만 사람의 인상에 영향을 미치듯, 없는 듯 있으면서 문장에서 주요한 기능을 담당한다. 어쩌면 한문의 고수일수록 其를 정말 잘 부리고 다룬다.
*典(법 전) = 목간으로 만든 책(冊)을 두 손으로 굳건히 받드는 모습. 법이나 책을 뜻한다. 말은 휘발유 같아서 글로 붙잡지 못하면 금방 도망가 버리고 만다. 이렇게 글을 모아 편집한 책을 책상 위에 차곡차곡 배열한 모양. 영상은 흘러가도 글과 책은 고전(古典)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