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신화 속 ‘마늘’의 정체는?
김경훈의 풀꽃이야기 -서부민통선 식물 (12)산부추와 산달래 지금의 마늘은 기원전 2세기 무렵 도입 냄새 비슷한 산부추나 산달래일 가능성
[고양신문] 우리나라 사람들의 마늘 사랑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직접 마늘을 먹지 않더라도 어지간한 음식에는 마늘이 들어 있으니까요. 농촌진흥청에 의하면 한국인 1인당 연간 마늘 소비량은 6~7kg이라고 하니 굉장히 많은 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중국이 한국보다 마늘을 더 많이 소비한다고는 합니다만, 우리 밥상은 이미 마늘을 빼놓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이런 마늘의 역사는 우리 민족의 건국신화에도 등장할 정도입니다. 마늘과 쑥만 먹으며 100일을 버티라는 상황에서 육식동물인 범이 애초부터 불리했다는 둥, 한국인이 마늘을 먹지 않으면 곰이 된다는 식의 농담도 있습니다.
마늘의 원산지는 중앙아시아로 추정되는데, 기원전 2세기 무렵 중국을 통해 도입되었다는 견해가 있어 단군신화의 시대와는 맞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마늘은 한자로 산(蒜)이라고 기록하는데, 여기서 산은 지금의 마늘을 뜻하기도 하고 달래와 같은 식물을 가리키기도 했습니다. 과거에는 마늘이라는 이름이 달래를 비롯해 산부추, 산달래, 산마늘 등 비슷한 냄새가 나는 식물을 폭넓게 가리켰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마늘은 산달래나 산부추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명이나물로 불리는 산마늘은 주로 산지의 숲속에서 자라는 식물이라 서식 환경이 비교적 제한적인 편입니다. 반면 산부추나 산달래는 보다 개방된 환경에서도 자라므로 옛사람들에게 더 친숙한 식물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산부추와 산달래에 붙은 접두사 '산'이 마늘을 의미하는 산(蒜)이라면 이야기가 조금 더 쉬웠겠습니다만, 일반적으로는 산(山)에 자라는 부추와 달래라는 의미로 이해됩니다. 결국 단군신화의 마늘이 산부추나 산달래를 뜻하는지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두 식물의 서식 환경을 살펴보면 이름과 실제 자라는 장소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산부추는 주로 산지의 햇볕이 잘 드는 곳에서 자라는 반면, 산달래는 산지보다는 인가 주변이나 밭둑, 하천변 등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산보다는 인가 주변이나 밭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산달래의 이름에 '산'이 붙어 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원래 산달래와 달래는 생활 속에서 혼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는데, 식물 분류학적으로 서로 다른 종을 구분하는 과정에서 산달래라는 이름이 정착한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산부추도 강가나 하천변에서 확인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천변에는 강부추라는 별개의 식물도 자라므로, 부추처럼 생긴 식물을 발견했다면 조금 더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산부추와 산달래는 꽃이 피지 않았을 때 얼핏 비슷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꽃이 피는 시기에는 뚜렷한 차이가 있습니다. 산부추는 주로 가을에 꽃을 피우고, 산달래는 늦봄에서 초여름에 꽃을 피웁니다. 꽃 색깔도 산부추는 보라색이나 자주색을 띠는 반면, 산달래는 연분홍색에서 자주색 계열로 나타납니다. 따라서 꽃이 피어 있다면 두 식물을 구별하기가 한결 쉬워집니다.
그런데 두 식물의 차이 가운데 더욱 재미있는 것은 번식 방법입니다. 산부추는 꽃을 피운 뒤 종자를 만들어 번식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산달래는 종자번식과 주아(살눈)를 이용한 번식을 동시에 이용합니다. 참나리나 마가 잎겨드랑이에 살눈을 만드는 것과 달리, 산달래는 꽃이 피는 자리에 주아를 만든다는 점이 특이합니다.
종자번식과 주아번식은 각각 장단점이 있습니다. 종자번식은 유전적으로 다양한 자손을 만들어 낼 수 있어 환경 변화에 대응하는 데 유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꽃을 피우고 수분과 수정을 거쳐 종자를 만드는 과정에는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곤충에 의존하는 식물이라면 꽃가루 매개자를 유인하기 위한 꽃이나 꿀에도 자원을 투자해야 합니다.
반면 주아를 이용한 번식은 일종의 자기복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전적 다양성을 확보하는 데는 불리하지만, 수분과 수정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새로운 개체를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산부추는 가을에 꽃을 피우고 종자를 만들어 다음 세대를 준비하지만, 산달래는 꽃이 피는 자리에 작은 주아를 만들어 새로운 개체를 준비하기도 합니다. 같은 부추속 식물이지만 살아가는 방식에는 차이가 있는 셈입니다.
사람들은 이들을 그저 마늘 냄새가 나는 나물로 기억하지만, 식물의 입장에서 보면 저마다 다른 생존 전략을 가진 존재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