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단보도에서 운전자와 눈을 마주쳐야 하는 이유
이광수의 교통안전 칼럼
[고양신문] 횡단보도 앞에 섰는데 차가 다가온다. 운전자가 속도를 줄이는 것 같기는 한데, 정말 멈추려는 걸까. 건너도 될 것 같다가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발걸음을 멈춘다. 반대로 운전자는 보행자가 횡단보도 앞에 서 있는 모습을 보고도 고민한다. 지금 건너려는 건지, 휴대전화를 보며 잠시 서 있는 건지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서로 말은 하지 않지만, 이 짧은 순간에 운전자와 보행자는 같은 질문을 하고 있다. ‘상대방이 나를 발견했을까.’ 횡단보도에서 눈을 마주치는 일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운전자와 보행자가 서로를 바라보면 상대방의 존재를 확인하고 행동을 예측하는 데 도움이 된다. 보행자는 운전자가 자신을 발견했는지 살펴볼 수 있고, 운전자는 보행자가 길을 건너려는 상황임을 알아차릴 수 있다. 짧은 눈맞춤이 서로의 의사를 확인하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특히 차량이 계속 오가는 도로에서는 상대방이 자신을 인식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성급한 행동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눈을 마주쳤다는 이유만으로 안전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운전자가 보행자를 바라보는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다른 곳을 확인하고 있을 수 있다. 눈이 마주쳤더라도 운전자가 차량을 완전히 멈추지 못할 수도 있다. 젖은 노면에서는 제동거리가 길어질 수 있고, 차량이 예상보다 빠르게 접근하고 있을 수도 있다. 눈맞춤은 안전을 확인하는 하나의 방법이지 차량이 반드시 멈춘다는 약속은 아니다.
따라서 보행자는 횡단보도에 들어서기 전 차량의 속도와 움직임을 함께 살펴야 한다. 운전자가 자신을 바라보는지 확인하는 데 그치지 말고 차량이 실제로 멈추는지 확인한 뒤 건너는 것이 안전하다. 특히 왕복 여러 차로가 있는 도로에서는 가까운 차로의 차량이 멈췄다고 안심해서는 안 된다. 한 차량에 시야가 가려 반대편 차로에서 접근하는 차량을 보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쪽 차량이 멈춰 길을 양보하더라도 다른 차로의 상황까지 확인해야 한다.
운전자도 보행자와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보행자가 횡단보도 앞에 서 있거나 건너려는 움직임을 보인다면 속도를 줄이고 상황을 살펴야 한다. 「도로교통법」 제27조 제1항은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통행하고 있거나 통행하려는 경우, 운전자가 보행자의 횡단을 방해하거나 위험을 주지 않도록 횡단보도 앞에서 일시 정지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정지선이 설치된 곳에서는 그 앞에서 멈춰야 한다. 보행자가 건너려는 상황인데도 먼저 지나가려고 속도를 유지하거나 차량이 멈출 것이라고 믿게 한 뒤 갑자기 진행하는 행동은 위험하다.
이때 운전자가 주의해야 할 것은 보행자가 횡단보도에 발을 내디뎠는지만 확인하는 것이 아니다. 보행자가 횡단보도 앞에서 주변을 살피며 건너려는 상황인지도 살펴야 한다. 보행자가 차량을 바라보며 기다리고 있다면 운전자는 그 모습을 가볍게 지나쳐서는 안 된다. 보행자가 실제로 길을 건너기 시작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법에서 정한 상황에 맞춰 미리 일시 정지하고 안전한 통행을 보장해야 한다.
야간이나 비가 오는 날에는 눈맞춤과 주변 확인이 더욱 중요해진다. 어두운 옷을 입은 보행자는 운전자의 눈에 잘 띄지 않을 수 있고, 가로등이나 차량 전조등의 빛 때문에 사람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보행자 역시 어두운 도로에서는 차량의 속도와 거리를 가늠하기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운전자가 보행자를 늦게 발견하거나 보행자가 차량의 접근을 잘못 판단하면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보행자는 휴대전화에서 눈을 떼고 좌우를 살피며, 운전자는 횡단보도에 접근할 때부터 속도를 줄이고 주변을 확인해야 한다.
어린이나 고령자처럼 차량의 접근을 판단하거나 위험에 대응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 보행자에게는 운전자의 세심한 주의가 더욱 중요하다. 어린이는 갑자기 방향을 바꾸거나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움직일 수 있고, 고령자는 보행 속도가 느려 횡단에 시간이 더 걸릴 수 있다. 운전자는 보행자의 행동을 미리 단정하지 말고 충분한 안전거리를 확보해야 한다. 보행자 역시 차량이 양보할 것이라고 짐작해 서둘러 건너기보다는 차량이 멈춘 것을 확인하고 차분하게 이동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횡단보도는 운전자와 보행자가 서로의 눈치를 보며 통행 순서를 정하는 곳이 아니다. 보행자의 안전한 통행이 우선되어야 하며, 운전자는 법에 따른 보호 의무를 지켜야 한다. 눈맞춤은 이러한 안전을 보장하는 법적 의무 자체는 아니지만, 서로를 발견하고 위험을 미리 알아차리는 데 도움이 되는 행동이다. 보행자는 운전자가 자신을 보았는지 확인하고, 운전자는 보행자의 존재와 횡단 의사를 살펴 안전하게 건널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횡단보도에서의 사고는 때로 몇 초의 방심과 잘못된 판단에서 시작된다. 운전자는 보행자가 멈춰 있으리라 생각하고, 보행자는 차량이 당연히 멈출 것으로 생각하는 순간 위험이 커질 수 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상대방의 행동을 짐작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확인하는 습관이다. 눈을 마주치고, 차량의 움직임을 살피고, 실제로 멈췄는지 확인하는 작은 행동이 사고를 예방하는 출발점이 된다. 횡단보도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몇 초의 여유, 그 짧은 순간이 누군가의 안전한 귀갓길을 지킬 수 있다.
이광수 일산서부경찰서 경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