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일본 숲속 ‘여야용(呂野用)의 묘’, 89년 지나 한일 시민을 잇다
구로3댐(黒三ダム)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 동료 유골 지켜낸 우정의 결실
[고양신문] “구로베(黒部)강의 전원(電源)개발에 조선 반도 출신 노동자를 비롯해 많은 분이 노동에 종사했고, 그 과정에서 귀한 생명을 잃은 것을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지난 9일 낮 11시, 일본 도야마현(富山県) 구로베시(黒部市) 우나즈키(宇奈月)에서 열린 조선인 노동자 여야용(呂野用)씨의 89주기 추도식에 가미사카 노부히로(上坂展弘) 구로베 시장이 보내온 메시지다. 시장은 추도식이 한일 양국의 상호 이해와 우호 증진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는 뜻도 전했다.
구로베는 웅장한 협곡과 온천으로 유명해 한국인 관광객도 많이 찾는 곳이다. 그러나 이곳의 전원개발 과정에서 조선인 노동자들이 일하고 희생됐다는 역사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이날 작은 숲속 묘비 앞에는 한국과 일본의 시민 15명이 모였고, 한국에서는 필자를 비롯해 4명이 참석했다. 꽃다발과 향, 초가 놓인 묘 앞에 우리는 한국에서 가져간 술을 올렸다.
조선인 동료의 유골 지켜준 두 일본인
여야용 씨를 비롯한 조선인들이 일했던 구로베강 제3댐 공사(1936~1940)에서는 암반 온도가 최고 섭씨 160도에 이르는 고열 터널을 뚫어야 했다. 그 과정에서 다이너마이트 폭발 사고와 눈사태 등으로 300명이 넘는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으며, 조선인 노동자들이 그중에서도 위험한 작업을 맡았다는 증언들이 남아 있다.
일본의 식민지 정책으로 땅과 쌀을 빼앗긴 조선인들은 이렇게 위험한 구로베강 공사장까지 흘러들었고, 1939년부터는 강제로 동원되어 일했다. 1937년 10월 9일 숨진 여야용 씨는 이곳에서 희생된 조선인 노동자 가운데 오늘날까지 묘가 남아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그의 묘가 남게 된 데에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
당시 구로베 협곡에서 일하던 일본인 다나카 세키지로(田中石次郎)씨와 나카야스 소토지로(中易外次郎)씨가 여야용 씨의 유골함과 소지금을 챙겨 산 아래 죠쇼지(常照寺)에 맡긴 것이다. 이 묘에는 모두 20명의 조선인 유골이 모셔졌다고 한다. 이 사실은 구로3댐과 조선인 노동자의 역사를 조사해 온 호리에 세쓰코(堀江節子)씨가 당시 죠쇼지 주지 히구치 요시노리(樋口恵昇)의 아들 히구치 카즈마루(樋口和丸) 주지를 취재하면서 밝혀졌다(호리에 세쓰코 외 공저 『黒部・底方の声』 1992년; 한국어판 『구로베 저편의 목소리』).
두 일본인이 유골을 옮겨 온 길은 한 발만 헛디뎌도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 있는 위험한 절벽 길이었다. 그뿐 아니라 조선인에 대한 경찰의 감시와 사회적 차별이 존재하던 시대였다. 그럼에도 그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조선인 동료의 유골과 소지금을 사찰에 전한 것이다.
이번 추도식에서 츠루조노 유다카(鶴園裕) 전 가나자와대학(金沢大学) 교수는 “여야용씨의 유골을 가져다준 일본인이 없었다면 이 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조선인 노동자를 공양하고 추도하고 싶어 했다는 것을 기억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잊혀진 역사를 이어가며 새로운 우정으로
여야용씨의 묘비에는 ‘조선 경북 대구부 명치정(朝鮮慶北大邱府明治町)’이라는 주소와 사망일이 새겨져 있다. 오랜 세월에 글씨는 희미해지고 있지만, 구로베강 전원(電源)개발에 조선인 노동자들이 참여하고 희생되었다는 역사적인 증거다.
2020년 여야용씨의 묘가 언론에 공개된 이후에는 역사 연구가 무라카미 구니오(村上邦夫)씨가 지역 주민들과 함께 추도식을 꾸준히 기획해 개최해 오고 있다. 스기모토 마스미(杉本ますみ)씨는 묘비에 새겨진 주소를 끈질기게 추적한 끝에 2021년 여야용씨의 고향 주소가 오늘날 대구 계산동(桂山洞)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필자 역시 한국에서 여야용씨의 흔적을 찾고자 했으나, 아직 구체적인 기록은 발견하지 못했다.
추도식을 마친 뒤에는 야쿠시지(藥師寺) 묘지의 ‘만령지탑(萬靈之塔)’으로 발길을 옮겼다. 1987년에 세워진 이 탑에는 일제의 전쟁 시기 구로베강의 전원·온천 개발 과정에서 희생된 일본인과 조선인 무연고자의 유골 41구가 모셔져 있다. 건립을 주도한 것은 스기모토씨의 부친 사토 요시카즈(佐藤喜一)씨다. 국적을 불문하고 개발의 역사 속에서 희생된 사람들을 위로하려는 마음은 세대를 넘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화려한 구로베 협곡의 온천과 전원개발 역사에 대한 기념관과 지방자치단체의 간행물에서는 조선인 노동자의 존재는 보이지 않는다. 이는 구로베 강 전원개발 역사 서술이 기술적 성취를 부각하는 한편, 조선인 노동자의 희생에 대해서는 선택적 ‘침묵’을 해왔기 때문이다.(류리수 「구로베(黒部) 제3댐 공사와 조선인 노동의 기억」 일본연구 2026.6.) 세계유산 잠정 후보 목록에 오른 구로베에서 뛰어난 토목 기술만 기억하고 그 그늘에서 희생된 노동자들을 외면 한다면 구로베의 온전한 역사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번 방문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스기모토씨를 비롯한 일본 시민들의 진심 어린 배려였다. 이들은 숙소와 교통편을 마련하고, 손수 만든 음식으로 따뜻하게 맞아 주는 등 여러모로 세심하게 마음을 써 주셨다. 일본 방문 내내 이어진 환대는 단순한 손님 접대가 아니었다. 조선인 노동자의 희생을 기억하고자 하는 한국인과 일본 시민들이 함께 새로운 우정을 만들어 가는 시간이었다.
구로베 숲속에 울려 퍼진 아리랑
이날 추도식에서 필자는 조선인 노동자들의 희생을 기리고 묘를 지켜온 일본 시민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89년 전 위험을 무릅쓰고 조선인 동료의 유골을 모셔준 두 일본인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지금 여야용씨와 그 친구들은 가고 없지만, 이곳을 중심으로 일본인과 한국인들이 새로운 우정과 연대의 싹을 틔우고 평화를 향해 나아가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추도식 뒤 한국인 참석자들은 아리랑 악보를(국민대 작곡과 유지윤씨 제작) 일본 시민들에게 나눠주고 아리랑을 불렀다. 숲속에 울려 퍼진 노래가 오랜 세월 고국을 떠나 이곳에서 숨진 조선인 노동자들에게 위로가 됐으리라 믿는다.
스기모토씨는 추도식을 마친 뒤 이렇게 말했다. “여야용씨의 묘를 방문할 때마다 일본이 가장 소중한 이웃 나라인 한국인들에게 얼마나 큰 죄를 지었는지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그래서 숲속에 아리랑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을 때 여야용씨와 함께 묻힌 조선인들이 얼마나 기뻤을까 생각했습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기도가 담긴, 무엇보다 소중한 추도였습니다.”
추도식에 참석한 안현미씨도 “일제강점기에 조선인으로 구로베 협곡까지 가서 그 힘든 노동과 외로움을 견뎌야 했던 분들의 심정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늦게나마 여야용님께 그리운 고국의 아리랑을 불러드릴 수 있어서 무거운 마음을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여야용씨의 묘에는 두 가지 역사가 담겨 있다. 하나는 전시 일본의 전력 시설 개발을 위해 일하다 희생된 조선인 노동자들의 고통스러운 역사, 또 하나는 식민지 지배와 차별의 시대에도 조선인 동료의 죽음을 외면하지 않았던 일본 서민들의 소중한 우정의 역사다.
89년이 지난 오늘, 여야용씨의 묘는 한국과 일본의 시민들을 만나게 하고 있다. 가미사카 구로베 시장이 추도 메시지에서 전했듯 과거의 희생을 잊지 않고 서로의 역사를 함께 기억하는 일, 그곳에서 시작된 우정과 연대가 평화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 여야용(呂野用)씨의 묘 찾아가는 길
일본 도야마현 구로베시 우나즈키마치 우치야마(富山県黒部市宇奈月町内山)에 있다. 도야마 지방철도 우치야마역(内山駅)에서 하차하거나, 자가용 이용 시 우치야마 공민관(内山公民館, 옛 우나즈키초등학교 터)에 주차하면 된다.
공민관에서 숲 쪽으로 약 1분 걸으면 우치야마역이 나온다. 역 철길을 건너 수돗물이 있는 비닐하우스를 끼고 왼편 길을 따라 산기슭으로 약 50m 올라간 뒤 오른쪽으로 약 20m 이동하면 삼나무들 사이에 여야용씨의 묘가 있다.
류리수 박사(한국외국어대학교 한일비교문학 전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