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 넘기듯 걷는 가을, 책의 도시에서 건축을 읽다

정미경 기자의 주말, 쉼표 (9)파주출판도시 가을 산책 담쟁이 덩굴로 뒤덮인 출판사들 건축물 자체가 작품인 미술관 골목마다 새로운 발견이 기다리는 곳 책 한권, 전시 한편으로 채우는 여행

2026-10-27     정미경 기자
높은 책장이 인상적인 지혜의숲에서 만나는 독서의 즐거움

[고양신문] 파주출판도시는 갈 때마다 새로운 매력을 드러내는 곳이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서점을 찾아,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은 전시를 찾아 이곳을 방문한다. 개성 있는 건축물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건물 사이로 이어지는 산책길에서 계절의 변화를 느낀다. 이곳은 책과 예술, 자연과 건축이 어우러진 도시다. 

책과 관련된 대형 축제는 1년에 두 번 열린다. 지난 10월 9일부터 18일까지는 ‘2026 파주페어 북앤컬처’가 열렸다. 책과 음악, 미술이 어우러진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이어지며 방문객들은 곳곳에서 문화예술을 향유했다. 책을 매개로 사람들이 모이고, 예술을 통해 감동을 공유하는 축제였다.

책으로 시작하는 여행, 지혜의숲
지혜의숲에서 파주출판도시 산책을 시작해 본다. 높은 책장에 빼곡하게 꽂힌 책들이 가득한 이곳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오래 머물고 싶은 공간이다. 수많은 책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인상적이다. 책장 사이를 거닐며 책 제목을 살펴보고, 생소한 분야의 책도 꺼내 보자. 책을 통해 무언가를 얻어야 한다는 부담은 내려놓아도 괜찮다. 서적으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잠시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일상은 풍요로워진다. 바로 옆 게스트하우스 지지향의 1층 카페 또한 둘러볼 만하다. 테이블 위에 커피 한 잔을 올려놓고 독서하는 풍경은 여유로움을 선사한다. 

담쟁이덩굴이 물드는 나남출판·안그라픽스·지식산업사
책 구경으로 여행을 시작했다면 이제 건축물로 다가갈 차례다. 파주출판도시의 건물들은 저마다 다른 개성과 독특한 디자인을 가지고 있다. 이 계절에 놓치지 말아야 할 풍경 중 하나는 담쟁이덩굴로 뒤덮인 건물들이다. 나남출판과 안그라픽스, 지식산업사 등에서는 담쟁이가 계절의 변화를 보여준다. 

나남출판사는 붉게 물들어가는 덩굴이 건물에 새로운 표정을 더하고 있다. 건축물의 구조와 자연의 색채가 어우러져 마치 자연이 그려낸 작품 같다. 안그라픽스는 한글 글꼴 안상수체로 잘 알려진 디자인 전문 출판사다. 주변은 여러 드라마의 촬영지로 알려진 곳이기도 해서 건축과 영상의 흔적을 함께 찾아보는 재미가 있다. 지식산업사 건물도 눈길을 끈다. 회색 콘크리트 벽면을 담쟁이덩굴이 뒤덮고 있다. 인공적인 건축 재료와 자연의 생명력이 만나 자신만의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담쟁이덩굴이 건물 외벽을 물들이며 가을빛을 더하는 나남출판 풍경

잠시 시선을 돌려 샛강 쪽으로 걸음을 옮기면 또 다른 가을 풍경이 펼쳐진다. 응칠교와 이석교, 심학교 아래로 이어지는 물길 주변에는 갈대가 무성하다. 볕을 쬐는 오리가족과 물속을 헤엄치는 물고기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들이 계절에 운치를 더하고 있다.

파주출판도시의 유일한 한옥으로 알려진 서호정사도 빼놓을 수 없다. 전북 정읍의 김명관 고택 별채를 옮겨와 조성한 공간으로, 현대적인 건축물이 이어지는 출판도시에서 전통 한옥 특유의 멋을 느낄 수 있다.

건물 자체가 작품이 되는 곳,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
파주출판도시에서 건축을 이야기할 때 빼놓지 않는 곳이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이다. 세계적인 건축가 알바루 시자가 설계한 이 미술관은 흰색 외벽과 유려한 곡선이 특징이다. 외곽의 부드러운 곡선은 건축물 자체가 하나의 작품임을 보여준다.

미술관 앞에서 외벽의 선을 따라 시선을 움직여 보자. 어디에서 시작해 어디로 이어지는지 한눈에 파악하기 어려운 곡선은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서로 다른 인상을 남긴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자연광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공간이 나온다. 빛의 방향과 공간의 형태가 조화를 이루면서 관람객들의 시선과 움직임을 이끈다. 현재 이준아, 정수정, 홍세진 작가가 참여하는 전시회 <SYMBOLIC 심볼릭>이 진행 중이며, 11월 1일까지 계속된다. 관람을 마친 뒤에는 북카페에서 출판사 열린책들의 서적과 예술 관련 출판물을 둘러보며 잠시 쉬어도 좋다.

갤러리에서 만나는 또 다른 풍경
파주출판도시에는 박영갤러리와 갤러리끼를 비롯한 여러 예술 공간이 산재해 있다. 갤러리마다 전시 주제와 공간의 성격이 각기 달라 다채로운 예술적 경험을 할 수 있다. 현재 어떤 작품이 전시되고 있는지 살펴보고, 작품에 담긴 작가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 감상의 폭이 넓어진다. 최근 문을 연 예술공간 서축도 둘러볼 만하다. 김윤신, 하종현, 이세현 등 31명의 작가가 참여하는 개관전 <사이 – 뿌리에서 꽃까지>가 12월 15일까지 이어진다. 

아름다운 고서들이 가득한 열화당책박물관

열화당책박물관은 고서와 양서, 희귀서적 4만 여권을 소장한 곳이다. 책과 예술, 그리고 출판문화가 집약적으로 모인 공간이다. 박물관에 들어서면 책 향기가 물씬 풍긴다. 마치 책들이 관람객들에게 말을 걸어오는 듯하다. 현재는 ‘정조와 괴테의 시대: 책으로 만나는 사람과 풍경’을 주제로 하여 관련 책들을 전시 중이다. 그냥 지나치기에 아까운 장소다. 

파주출판도시를 방문하면 언제든 책을 읽을 수 있고, 새로운 전시를 관람할 수 있으며,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이번 주말에는 책, 건축, 예술, 그리고 이것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파주출판도시로 떠나보자. 책 한 권을 펼쳐도 좋고, 건물의 곡선을 따라 시선을 움직여도 좋다. 마음에 드는 공간을 발견하게 되면 조금은 더 오래 머물러 보자. 

출판도시 갈대샛강을 따라 펼쳐지는 고즈넉한 가을 풍경
유려한 곡선과 흰색 외벽이 돋보이는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
게스트하우스 지지향 1층 카페에서 독서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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