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고봉산 역사와 문화, 보존 책임과 과제
[고양신문] 고봉산은 오랜 세월 고양의 역사를 품어온 산이다. 그동안 명문와편을 비롯해 다양한 기와편과 토기편 등 역사문화 자료가 고봉산 일대에서 확인됐다. 그러나 고봉산의 역사적 가치가 얼마나 체계적으로 조사되고 기록됐으며, 발견된 유산이 실제 현장에서 어떻게 보호되고 있는지를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난 25일 고봉산문화예술보존회는 고봉산을 사랑하는 시민들과 함께 고양시 고봉산 일대에서 2026년 하반기 역사문화유산 현장답사를 진행했다. 이번 답사에는 이재준 전 충청북도 문화재위원을 비롯해 신인선 고양시의원, 이영아 전 고양신문 대표, 양진걸 고봉산문화예술보존회 부회장 등이 함께했다. 현장에서는 여러 종류의 토기편이 관찰됐으며, 이전 답사에 비해 다양한 청자편이 확인됐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토기 저부(底部·바닥 부분) 2점이다. 보존회가 8년 넘게 고봉산을 답사해 온 과정에서 토기 저부를 확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와 함께 선돌(입석·立石)로 추정되는 석재와 토제(土製) 벼루로 추정되는 유물도 확인됐다. 이재준 전 충청북도 문화재위원은 토제 벼루 추정 유물을 신라시대에 제작된 벼루로 보았다. 다만 해당 유물의 정확한 제작 시기와 용도, 선돌 추정 석재의 고고학적 성격은 향후 전문적인 조사와 학술적 검증을 통해 밝혀져야 한다. 이러한 발견은 고봉산의 역사문화적 가치를 다시 살펴보는 중요한 계기가 되고 있다.
발견 신고 과정에서 마주한 현실
답사 이틀 후인 27일, 필자는 이번 답사에서 확인한 토제 벼루 추정 유물과 선돌 추정 석재에 대한 발견 신고 절차를 문의하기 위해 고양시 담당 부서를 방문했고, 담당자로부터 “토제 벼루 추정 유물은 발견 신고가 가능하지만, 현장에 남아 있는 선돌 추정 석재는 현장 확인과 검토가 필요하다”는 안내를 받았다. 또한 “향후 현장 확인 과정에서 해당 석재를 함께 살펴보고, 고양시의 1차 검토 결과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관계 전문기관과 협의해 후속 조사와 보호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 이 과정에서 매장유산 유존지역에서는 발견물을 함부로 수습하거나 현상을 변경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도 안내받았다.
매장유산은 유물 자체뿐 아니라 발견 위치, 주변 토층, 다른 유물과의 관계 등 출토 맥락이 중요한 학술적 자료다. 따라서 발견 당시의 상태와 주변 환경을 보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오랫동안 고봉산 현장을 답사하고 기록해 온 시민 입장에서 한 가지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매장유산은 함부로 손대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현장에서 훼손될 위험에 놓인 유산은 누가,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법적 보호 원칙만으로 유산이 지켜지는가
「매장유산 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 제4조는 ‘매장유산 유존지역의 원형 보호 원칙’을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원칙은 실제 현장에서 어떻게 실현되고 있는가. 고봉산의 일부 탐방 구간에서는 산악자전거가 통행하고 있다. 필자는 자전거 바퀴가 바위에 반복적으로 충격을 가하는 모습도 목격했다. 이러한 통행이 지표면과 석재의 보존 상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현장 확인이 필요하다. 특히 이번에 확인한 석재가 고고학적 가치를 지닌 유구(遺構)나 유물로 밝혀진다면, 주변 환경과 훼손 위험에 대한 보다 세심한 검토가 요구될 것이다.
또한 고봉산에서는 강우와 토양 유실 등으로 지표면에 드러나는 기와편과 토기편을 지속적으로 관찰할 수 있다. 지표에 노출된 유물은 사람들의 통행과 자연적 풍화 작용에 의해 손상되거나 원래의 위치와 주변 맥락을 잃을 위험이 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발견자가 임의로 유물을 수습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기관이 현장을 확인하고 필요한 보호 조치를 검토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하는 일이다. 발견 위치와 분포 현황의 기록, 훼손 위험도 평가, 필요한 경우 전문가에 의한 지표조사와 정밀조사 등이 이어져야 한다. 매장유산의 보호는 법률에 규정된 원칙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 원칙이 현장의 실질적인 조사와 관리, 보존 조치로 이어질 때 비로소 유산을 지킬 수 있다.
유물 발견, 학술연구로 이어져야
고봉산에서 확인된 기와편과 토기편은 단순한 흙조각이 아니다. 기와에 남아 있는 문양과 명문(銘文), 토기의 기형(器形), 태토(胎土), 제작기법과 소성 상태 등은 당시의 제작 기술과 생활문화, 유적의 성격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특히 명문와편은 새겨진 문자와 서체, 제작 특성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함으로써 관련 유적의 역사적 배경을 연구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
그러나 개별 유물의 발견만으로 고봉산의 역사를 온전히 설명할 수는 없다. 유물의 분포 양상을 확인하는 지표조사와 문헌 연구, 유사 유물과의 비교분석, 필요한 경우 정밀한 고고학적 조사와 전문가들의 학술적 논의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고봉산문화예술보존회가 지속적인 학술연구와 학술세미나의 필요성을 강조해 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고봉산의 역사문화적 가치를 밝히는 일은 일회성 현장답사나 한 차례의 학술행사로 끝날 수 없다. 지속적인 조사와 연구를 통해 자료를 축적하고, 그 결과를 시민들과 공유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시·도 예산 사이에서 멈춰선 학술사업
고봉산문화예술보존회는 당초 고양시민과 함께 고봉산의 역사문화적 가치를 공유하고 학술적으로 조명하기 위한 시민 참여형 학술세미나를 기획했다. 그러나 사업 추진 과정에서 경기도 공모사업으로 방향이 변경되면서 역사문화유산 학술조사 사업으로 전환됐다. 해당 사업은 경기도 공모사업에 접수됐으나, 최근 경기도의 예산 부족으로 관련 사업이 일몰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고양시는 경기도에 신청한 학술조사 사업과 중복된다는 이유로 관련 사업을 2027년도 본예산에 반영하지 않았다. 결국 고양시에서는 경기도 사업과의 중복을 이유로 예산이 반영되지 않았고, 경기도 사업마저 중단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고봉산 학술사업의 추진 기반이 불확실해진 상황이다.
그렇다면 고봉산의 역사문화유산에 대한 학술조사와 연구는 어디에서, 어떤 방식으로 이어가야 하는가. 이미 현장에서는 새로운 역사문화 자료가 지속적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조사와 연구를 추진할 기반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중요한 자료에 대한 학술적 검토와 기록은 계속 늦어질 수밖에 없다.
경기도 사업이 사실상 중단될 위기에 놓인 지금, 고양시는 고봉산의 학술조사와 연구를 이어가기 위해 어떤 대안을 마련하고 있는가. 예산 편성의 어려움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예산이 편성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역사문화유산의 조사와 보존에 관한 논의까지 멈춰서는 안 된다. 당초 시민과 함께하는 학술세미나를 준비했던 취지를 살려 2027년에는 세미나를 개최할 수 있는 새로운 방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나아가 일회성 학술행사에 그치지 않고 체계적인 조사와 학술연구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고봉산 역사문화공원’ 조성돼야
고봉산문화예술보존회는 앞으로 고봉산 역사문화공원 조성에 관한 시민 의견 수렴 활동도 확대할 계획이다. 고봉산을 단순한 등산이나 휴식 공간을 넘어 역사와 자연, 문화가 함께하는 공간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역사문화유산에 대한 조사와 보존이 선행되어야 한다. 시민들이 고봉산의 자연을 즐기는 동시에 그 안에 담긴 역사적 가치를 이해하고 향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지역 곳곳에서 시민들과 직접 만나 다양한 의견을 듣고, 역사문화공원 조성에 대한 시민 참여 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다.
고봉산 역사, 현수막만으로 지킬 수 없다
고봉산에는 고양시가 설치한 현수막이 있다. ‘고양시의 매장유산을 지키기 위해 눈으로만 봐주세요’ 현수막에는 매장유산의 무단 반출에 대한 처벌 규정도 안내돼 있다. 필자는 이 현수막의 취지에 동의한다. 매장유산은 함부로 가져가거나 훼손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고양시에 묻고 싶다. 고양시는 시민들에게 매장유산을 지켜달라고 요구하면서, 정작 그 유산을 보호하기 위해 무엇을 해왔는가. 현수막이 설치된 이후 고봉산에서 이루어진 매장유산 조사와 현장 점검은 무엇이며, 훼손 위험에 대한 관리 대책은 어떻게 마련되어 있는가. 그동안의 조사와 보존 실적을 시민들에게 공개하고 설명할 수 있는가.
고양시가 설치한 현수막은 단순한 경고문이 아니다. 이곳의 매장유산을 보호해야 한다는 사실을 행정기관 스스로 시민들에게 알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고양시는 그동안의 조사와 관리 현황을 밝히고, 앞으로 어떤 보존 대책을 마련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시민들에게 설명해야 한다. 고봉산의 매장유산 보호가 현수막의 문구에 머무르지 않도록 현장 관리와 학술조사, 중장기 보존계획이 함께 검토돼야 한다.
고양의 뿌리이자 미래의 문화
우리가 지금 고봉산의 역사적 가치를 밝히고 보존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과거의 흔적을 확인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그 안에 담긴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고 기록해 미래 세대에 전하기 위해서다. 역사문화유산은 시간이 흐른다고 저절로 보존되는 것이 아니다. 지금 조사하지 않고 기록하지 않는다면 훗날 그 가치를 밝힐 수 있는 중요한 단서마저 잃을 수 있다.
고봉산에서 확인되는 역사문화 자료들이 학술적으로 충분히 검토되지 못한 채 훼손되거나 사라진다면, 그 책임을 단순히 시간의 흐름이나 자연환경의 변화로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오늘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조치를 취하느냐에 따라 미래 세대가 마주하게 될 고봉산의 모습은 달라진다.
고양시는 오늘의 시민들에게 매장유산을 지켜달라고 당부하면서, 미래 세대에게는 고봉산의 역사를 얼마나 조사하고 보존해 물려주었다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매장유산을 손대지 말라는 원칙만큼, 손대지 않고도 지킬 수 있는 현장 보호체계를 마련하는 일이 중요하다.
고봉산의 역사는 현수막만으로 지켜지지 않는다. 이제 고양시는 고봉산의 매장유산을 어떻게 조사하고 보호할 것인지, 그 구체적인 계획과 실천으로 답해야 한다. 고봉산의 역사는 고양의 문화적 뿌리이며, 그 뿌리를 지키는 일이 곧 미래의 문화를 만들어가는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