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빌리듯 식물을 나누다...노르웨이 도서관의 특별한 풍경
[북유럽특파원 생생통신] 초록빛 생명과 역사 공존하는 트론하임 시립도서관 식물 가지나 줄기 잘라 가져와 다른 식물과 교환 식물교환소에서 돈 대신 식물로, 소유 대신 나눔으로 식물 한 줄기가 생명 전하는 행복한 나눔으로 이어져
[고양신문] 11월, 북유럽의 가을은 어느새 겨울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차가워진 공기와 짧아진 햇살, 그리고 낙엽이 떨어진 뒤 도시 곳곳에 스며든 할로윈의 으스스한 분위기 속에서도, 강가에 늘어선 알록달록한 집들은 따뜻하고 아늑한 북유럽의 풍경으로 마음을 포근하게 감싸주고있다.
오래된 역사의 흔적이 남아 있는 노르웨이 천년고도 트론하임(Trondheim)에서 조금은 특별한 시민들의 공간을 만났다. 바로 트론하임 시립도서관(포크비블리오테크, folkebibliotek) 식물교환소다.
책을 읽고 빌리는 평범한 도서관을 생각했다면 이곳에서는 조금은 다른 풍경을 만나게 된다.
할로윈 시즌을 맞아 한쪽에는 으스스한 해골 장식과 공포소설이 놓여 있고, 다른 한쪽에는 유리병마다 초록빛 생명을 담은 식물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책과 식물, 오래된 역사와 새로운 나눔이 한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곳이다.
도서관 내부를 둘러보다 발걸음을 멈추게 한 곳이 있다. 갈무리한 종자를 나누고, 가꾸던 반려 식물을 나누고, 함께 겨울 먹거리를 준비하는 노르웨이인들의 지혜를 알아차릴 수 있는 곳이다.
특히 식물교환소에는 검은색 철제 선반 위에 유리병과 작은 화분들이 놓여 있다. 병 안에는 물이 담겨 있고, 그 안에는 다양한 식물의 줄기와 잎이 자라고 있다. 어떤 것은 뿌리가 제법 길게 자라 있고, 어떤 것은 이제 막 새로운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듯했다.
그 옆에는 'STIKLINGBYTTE(Stikling: 식물의 줄기나 잎을 잘라 뿌리를 내리게 하는 삽수, 꺾꽂이용 가지, Bytte: 교환, 바꾸기, 물물교환)'라고 적힌 안내문과 함께 식물들이 병에 담겨 세워져있다. 노르웨이어로 '삽수 교환' 또는 '꺾꽃이용 식물 나눔'이라는 뜻이다. 이곳은 시민들이 집에서 키우던 식물의 가지나 줄기를 잘라 가져와 다른 식물과 교환하는 식물나눔 공간이다.
도서관 식물교환소 안내판에 소개된 식물 나눔 방식은 매우 간단명료하다.
첫째, 집에서 키우던 식물의 삽수(揷穗 꽂을 삽, 이삭 수: 꺾꽂이를 위해 일정한 길이로 잘라 낸 식물의 싹)를 가져온다. 그리고 도서관에 놓인 다른 삽수 중 하나와 바꿔 간다.
둘째, 가져가는 삽수의 수는 자신이 가져온 삽수의 수를 초과해서는 안 된다. 식물의 가치가 높든 낮든, 선반에 몇 개가 놓여 있든 상관없이 반드시 같은 수만큼 돌려놓아야 한다.
셋째, 삽수를 담아놓은 유리병과 용기는 도서관의 소유물이므로 집으로 가져갈 수 없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지만, 누구나 지켜야 할 약속도 분명하다. 더 많이 가져가려는 욕심 대신 서로에게 공평한 나눔, 그리고 공동체가 함께 관리하는 공간에 대한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식물 한 줄기를 가져오고 다른 식물 한 줄기를 데려가는 작은 행동이지만, 그 안에서 시민들은 자연스럽게 자원순환과 생명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식물 교환 선반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저마다 다른 식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싱그러운 잎을 길게 늘어뜨린 식물, 누런 잎을 드러낸 식물, 뿌리가 유리병 바닥까지 자란 것도 있다. 어떤 식물은 작은 물병에 담겨 있고, 또 어떤 것은 재활용한 유리병에 담겨 있다.
새로운 식물을 키우고 싶다면 굳이 화원에 갈 필요가 없다. 집에서 키우던 식물 한 조각을 가져오면 된다. 누군가에게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작은 가지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반려식물이 될 수 있다.
이런 식물 교환에는 가격표도 판매대도 복잡한 절차도 없다. 식물의 희귀성이나 시장 가격을 따지기보다는 서로가 가진 것을 공평하게 나누는 데 의미를 둔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이 활동이 시립도서관이라는 공공장소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도서관은 지식을 나누는 곳이다. 한 사람이 읽은 책이 다음 사람에게 전달되고, 한 사람의 경험이 다른 사람의 배움과 지혜로 이어진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책뿐만아니라 식물도 나눈다. 책 한 권이 지식을 전하듯 식물 한 줄기가 생명을 전하는 행복한 나눔으로 이어지길 기원한다.
다음편에 계속...
<트론하임 이색도서관 방문기>
#1 책장 아래 잠든 천년의 역사… 시간을 품은 트론하임 도서관을 가다
#2 도서관에서 식물을 나누다... 트론하임 시립도서관 식물교환소
#3 도서관에서 씨앗을 나누다. ... 트론하임 시립도서관 씨앗도서관
<노르웨이 트론하임 여행 & 도서관 정보>
트론하임 시립도서관 (Trondheim folkebibliotek) : https://biblioteket.trondheim.kommune.no/
트론하임 여행정보 (비지트 트론하임) : https://visittrondheim.no/en/
노르웨이 여행정보 : https://www.visitnorway.no/reisemal/trondelag/trondheim/
노르웨이 성지순례길 : https://www.pilegrimsleden.no/en/
트론하임 니다로스대성당 : https://www.nidarosdomen.no/